21.04.18 18:24최종 업데이트 21.04.1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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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있었다. 그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 생존과 꿈의 경계에 섰다. 같은 경계선을 무난히 혹은 우여곡절을 거쳐 넘은, 같은 시대에 던져진 다른 많은 이들과 달리 그는 경계선을 넘지 못했다. 세계의 폭력에 의해서든, 피하고 싶었지만 피하지 못한 불운에 의해서든 그의 죽음은 역사의 기록이자 시대의 고발이다. 

해방을 앞두고 이역에서 숨을 거둔 윤동주부터 2020년의 어느 청년에 이르기까지, 지속가능바람 저널리스트들은 청죽통한사(청년의 죽음으로 통찰하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청년의 죽음을 취재했다. 청년의 시각에서 새롭게 작성한 '청년의 죽음'은, 그 죽음의 애도이자 더 나은 세상의 모색이다.[편집자말]
2011년 7월 2일 황승원이 죽었다. 쇼핑센터는 낮에는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새벽에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황승원은 새벽에 쇼핑센터 지하실에서 숨졌다.

여름이었다. 다른 쇼핑센터처럼 이마트 탄현점은 실내온도를 쾌적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에 신경 썼다. 냉방설비에 이상이 감지됐다. 에어컨이 멈추면 큰일이었다. 이마트는 고객의 쇼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토요일 새벽 시간에 사람을 불러 보수작업을 시켰다.

야간작업을 하러 간다며 집을 나간 황승원은 아침이 돼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고생하고 있겠구나, 생각했다. 날이 밝고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의 휴대전화에 아들의 번호가 떴다. "너 안 들어오고 뭐 해, 어디야?" 걱정 반, 반가움 반인 어머니의 목소리에 답한 건 아들이 아닌 경찰이었다. 어머니는 몸을 벌벌 떨며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2011년 7월 2일 경기도 고양시 이마트 탄현점 지하 기계실에서 냉동기 점검·보수작업을 하던 중 작업자 4명이 숨졌다. 사진은 당시 사건을 보도한 mbc 뉴스.mbc 뉴스 화면 캡처
 
"승원이가 죽었대"

황승원은 이날 경기도 고양시 이마트 탄현점 지하 기계실에서 냉동기 점검·보수작업을 하던 중 동료 작업자 3명과 함께 숨졌다. 22살이었다. 이마트 탄현점은 지하 기계실 냉동기에서 이상 소음이 발생하자 냉동기 설치 회사인 트레인코리아에 수리를 요청했다. 트레인코리아는 다시 자그마한 냉동기 수리업체 오륜이엔지에 하청을 줬다. 황승원은 오륜이엔지에 소속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죽은 4명의 노동자를 부검한 뒤 사인을 '산소 결핍에 의한 질식사'라고 확인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과 가스안전공사의 조사 결과도 '환기가 안 된 상태에서 작업자들이 다량의 냉매 유출로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으로, 국과수의 결론과 거의 같다. 죽은 4명은 트레인코리아 직원 1명, 트레인코리아의 하청업체인 오륜이엔지 사장과 직원 1명 그리고 황승원이었다. 지하 기계실의 출입문은 죽은 황승원이 발견된 지점으로부터 겨우 열 걸음 거리였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던 황승원은 중학생 때 아버지가 사업에 잇따라 실패하고 집을 나가면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그러나 가난은 그의 꿈을 막지 못했다. 주말마다 대학생인 사촌 형을 찾아다니며 영어와 수학을 배웠다. 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치렀고 2008년 세종대에 이어 2009년 서울시립대에 입학했다.

안간힘을 다해 대학에 진학했지만 한 학기 수백만 원의 등록금은 황승원에게 높은 벽이었다. 식당과 공장을 오가며 한 달 100만 원을 벌어 자신과 여동생을 뒷바라지한 어머니에게 등록금을 기댈 형편이 아니었다. 등록금은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그 때문에 친구를 거의 사귀지 않았다. 돈이 들까 봐 동아리 활동도 접었다. 모꼬지나 축제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등록금과 생활비 걱정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기에 서울시립대 학생 중에 황승원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나마 그런 대학 생활도 겨우 6개월 만에 중단했다. 황승원은 한 학기를 마친 뒤 휴학하고 입대해 의무경찰로 복무했다. 2008년에 세종대에 입학해서 1년을 다니다가 다시 수능을 보고 2009년 서울시립대 입학한 황승원에겐 세종대 다닐 때 생긴 학자금 대출 약 800만 원이 있었다. 서울시립대 1학년 1학기 입학금과 등록금은 어머니가 모은 돈으로 해결했지만, 2학기 등록금을 낼 형편이 못 돼 입대한 것이다.

그는 군 복무 중에 월급 5만 원을 집으로 부쳤고 휴가를 나와서는 인력사무소를 찾아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머니가 건넨 용돈 3만 원을 책상 위에 그대로 남겨두고 부대로 복귀하는 속 깊은 아들이었다. 하루는 어머니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보고서 "엄마 돈 필요해? 돈 줄까?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담배도 안 피우니 군대에서 돈을 좀 모았어"라며 군대에서 모은 적금을 깨 선뜻 건넸다.

황승원은 전역 직후에도 분주했다.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를 살펴보다가 동네에 있는 냉동기 수리업체에 지원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걱정되어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며칠 쉬었다가 시작하라고 했다. 황승원은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게 편하다"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면접에 합격하자 황승원은 "월급이 150만 원이나 된다"고 기뻐했다. 2011년 5월 18일이 첫 출근일이었다. 처음 며칠은 온몸이 아프다며 끙끙댔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걱정하면 "월급 150만 원 벌 수 있는 데가 흔하지 않다"며 복학할 때까지 넉 달 동안 일하면 학자금 대출을 일부 갚고 등록금도 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첫 월급을 받아 여동생에게 용돈으로 5만 원을 건넸다.

아르바이트는 머리보다 몸을 쓰는 일이었다. 오륜이엔지는 직원이 다섯 명밖에 되지 않는 영세한 회사였다. 주로 하청을 받아 설비 고치는 일을 했다.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황승원이 이곳저곳 현장에 투입됐다. 선임자를 따라 나사를 조이고 망치질을 했다.

그러다 냉동기 보수 작업을 위해 투입된 곳이 이마트 탄현점이었다. 황승원과 동료 작업자 3명은 냉동기의 이물질을 제거하려고 냉매 가스를 빼내는 작업을 하다가 가스가 유출되면서 참변을 당했다. 방독면 등 제대로 된 안전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10일 오후 3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이마트 탄현점 앞에서 고 황승원군 등 사고 희생자 유가족들과 서울시립대 학생들이 신세계 이마트쪽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기자 회견을 열고 있다. 2011.7.10김시연
 
죽어서도…

제대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나설 만큼 절박했던 황승원의 시련은 죽어서도 계속되었다. 원청업체인 트레인코리아와 이마트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이마트는 "우리는 냉방 설비를 구입했을 뿐이고, 고장이 나서 애프터서비스를 신청했을 뿐"이라고 했다. 트레인코리아는 미국 본사의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면서도 사고가 작업 중 과실로 일어났다며 하청업체 오륜이엔지에 책임을 전가했다.

그사이 황승원의 장례는 40여 일이나 지연됐다. 사고의 책임 소재를 가려줄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유족, 이마트, 트레인코리아 사이에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탓이었다. 사고의 진상규명과 이마트 등 관련 기업의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하며 발인을 미룬 유족들은 결국 기다리다 못해 장례를 치렀다. 대학생들이 시위에 나서고 국회의원들이 진상규명과 책임 보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시간을 오래 끈 경찰은 보잘것없는 결론을 내놓았다. 사건을 담당한 경기도 일산경찰서는 황승원의 발인이 있기 3일 전, 트레인코리아의 안전관리자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수사 결과 현장의 작업환경 관리 책임은 트레인코리아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하청업체이자 황씨가 소속돼 있던 냉동설비 보수업체 '오륜이엔지'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되지만, 대표가 사망해 공소권이 없다"고 밝혔다.

열악한 기계실 작업 환경에 대해 이마트에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환기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었다면, 창문만이라도 활짝 열 수 있었다면 인부들이 질식사하지 않지 않았겠냐는 의문에는 답이 없었다.

이마트는 처벌을 피해 갔다. 다만 고용노동부가 이마트에 특별감독을 실시해 다른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탄현점 지점장과 이마트 법인에 각각 1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한 게 전부다.

황승원이 죽고 1주일이 지나지 않은 2011년 7월 8일 서울시립대는 황승원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 죽어서야 그렇게 원하던 대학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아마 황승원은 대학만 졸업하면, 괜찮은 직장을 얻어 어머니를 호강시키고 여동생을 넉넉하게 공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 터다. 날마다 지하실 작업장으로 내려가면서 그런 희망을 품었을 터다. 그는 어머니에게 "나이를 먹으면 자식이 자존심"이라며 "5년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22살 황승원에게는 그 5년이 허락되지 않았다.

구의역에서 진 또 하나의 청춘

황승원이 죽고 5년이 지난 2016년 5월 28일 또 다른 비정규직(파견노동) 청년 노동자 김군이 죽었다. 이날 오후 4시 58분에 지하철 2호선 구의역의 스크린도어가 오작동했다. 1분 뒤 서울메트로 본부에 있는 전자 운영실이 외주업체인 은성PSD에 수리를 요청했다.

김군은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체인 은성PSD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였다. 연락을 받은 김군은 오후 5시 52분 승강장에 도착했다. 그는 스크린도어를 열고 작업을 시작했다. 이때 차단벽의 선로 쪽 좁은 공간에서 작업하는 김군을 보지 못한 듯 열차는 그대로 승강장으로 진입했다. 김군은 들어오는 열차와 차단벽 사이에 끼여 숨졌다. 그의 나이 19살이었다.

김군은 만 20세 생일 하루 전날 사망했다. 가족이 모여 생일을 축하해주기로 했다. 그는 특성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5년 10월에 은성PSD에 실습생 신분으로 취직했고 이듬해 봄에 직원이 되었다. 가정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친구들보다 취직이 늦어 마음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입사가 결정되자 기뻐한, 평범한 청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대학에 진학하려는 꿈을 놓지 않았다. 그는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대접 받고 살 수 있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듣고 한 달에 100만 원을 적금에 쏟았다. 144만 원의 월급에서 적금과 기본 생활비를 빼면 남은 돈은 30만 원 안팎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였지만 김군은 많지 않은 용돈 중 일부를 동생에게 건네는 책임감 강한 맏이였다.

김군은 늘 '파김치'가 되어 퇴근했다. 먹는 것보다 자는 게 낫겠다며 먼지 범벅이 된 채 씻지 못하고 잠에 빠졌다. 퇴근길에 편의점에서 사 온 빵과 우유는 비닐봉지에 든 그대로 잠든 김군 근처에 놓여 있기 일쑤였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군은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직장생활은 원래 다 힘든 거지? 3개월 지나면 더 괜찮아지고, 1년 지나면 더 괜찮아지는 거지?" 어머니는 괜찮아질 거라고 대답한 걸 후회했다.

5월 28일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된 날이었다. 서울메트로와 은성PSD가 맺은 계약에 따르면 은성PSD는 고장 신고 접수 1시간 이내에 사고 현장에 도착해야 했다. 1시간 안에 도착해서 해당 역무원에게 '작업확인서 사인'을 받지 못하면 회사가 배상금을 물었다. 따라서 은성PSD 직원은 오후 5시 58분까지 구의역 현장에 도착해야 했다. 당시 작업이 가능한 정비직원은 김군뿐이었다. 작업지시를 받은 김군은 혼자서 고장 현장에 출동했다.

그사이 오후 5시 20분, 을지로4가역에서 또 다른 스크린도어 고장 신고가 들어왔다. 김군은 구의역 수리를 마친 후에, 시간제한 규정에 따라 6시 20분까지 을지로4가역에 도착해야 했다. 안전 수칙에 따르면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은 2인 1조로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구의역에서 을지로4가역까지 지하철로 약 20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직원을 기다렸다 작업할 시간 여유가 없었다. 결국 김군은 혼자 수리를 진행했다.

5시 54분에 김군은 9­4지점 스크린도어를 수동 개방한 다음 장애물 검지 센서 청소작업을 하였다. 당시 장애물 검지 센서는 적외선 센서로, 스크린도어 뒤쪽 양옆 차단벽에 달려있었다. 따라서 고장이 나면 스크린도어를 개방한 다음 승강장에서 선로 쪽으로 몸을 내밀고 수리해야 했다. 김군이 그렇게 수리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제2350 열차가 구의역에 진입했다. 55분, 김군은 진입하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옆의 차단벽 사이에 끼여 숨졌다.

수리하던 구의역 9­4지점 스크린도어 뒤쪽에서 김군이 꼼짝없이 생을 마감하고, 그 앞에는 김군의 공구 가방이 덜렁 남겨졌다. 가방 안에는 기름때 묻은 장갑과 마스크, 스패너와 드라이버 따위의 공구 등과 포장을 뜯지 않은 농심 육개장 사발면 한 개와 나무젓가락이 들어 있었다. 짬이 날 때 먹으려고 공구 가방 안에 넣어둔 육개장 사발면은 포장을 뜯지 못한 채로 그대로 김군의 유품이 되었다. 김군의 어머니는 "컵라면(육개장 사발면)이라도 배불리 먹고 갔으면 한이라도 없지"라며 통곡했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씨(19)의 소지품. 컵라면과 나무젓가락, 작업 공구 등이 들어있다.유가족 제공
 
19살 청년에게 떠넘겨진 위험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는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를 외주업체 두 곳에 맡겼다. 그중 은성PSD는 전체 121개 역 중 97곳을 관리했다. 사고가 일어난 5월 28일, 김군이 속한 은성PSD 강북지사 주간반(오후 1시∼밤 10시) 직원 11명 중 출근자는 6명이었다. 교대로 쉬어야 하는 휴무자가 5명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실 상주 인원 1명과 대기 인원 1명을 빼고 4명이 강북지사 담당 49개 역을 전부 맡아야 했다. 한 사람당 12개 역을 맡은 셈이었다. 이날 은성PSD는 강북지사 가용 인력 4명을 1∼4호선에 한 명씩 투입했다. 인력이 배치된 순간부터 2인 1조 작업은 불가능했다.

위험한 현장에 김군 등이 홀로 내몰린 이유는 비용 절감 때문이었다. 서울메트로는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특정 업무를 외주화했다. 승강장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라는 안전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은성PSD가 설립되었다.

서울메트로는 퇴직자를 은성PSD에 내려 보내 고용을 보장해주었다. 은성PSD의 임직원 143명 중 정비 관련 자격증을 보유한 직원은 전체의 41%인 59명이고, 자격증이 없는 나머지 84명 중 상당수가 서울메트로 퇴직자였다. 이들은 다수가  대표이사·상무·감사 등 관리직이었고, 현장직이어도 임금과 기타 근로조건에서 특혜를 받았다. 또한 서울메트로에서 받은 임금의 60~80%를 보장받았다.

서울메트로 퇴직자가 은성PSD의 임직원으로 들어가 받는 급여는 서울메트로 정규직보다는 적었지만, 그럼에도 은성PSD 노동자의 두세 배에 해당하는 상대적으로 큰 액수였다.

서울메트로 출신 임직원이 월급으로 약 434만 원을 받는 동안 목숨을 걸고 정비 업무를 수행한 김군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월급 144만 원을 받았으며, 김군과 동일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180~220만 원을 받았다. 실제 위험에 노출되지 않은 서울메트로 퇴직자 출신 임직원이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보장받은 반면 스크린도어 정비에 나선 김군과 같은 현장 노동자는 저임금을 받으며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리는 구조였다.

가장 큰 문제는, 임직원의 급여를 우선적으로 보장하는 반면 최저입찰가로 이루어지는 서울메트로의 용역을 따내려고 파견노동자의 인건비를 최소로 책정했다는 점이다. 현재 인력의 인건비를 쥐어 짜내는 형편에 인력 충원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생긴 문제는 더 있다. 서울메트로의 용역업체 관리·감독은 최소화·형식화하였고, 사전 승인 없는 '선로 측'(스크린도어 안쪽) 작업 등 안전 매뉴얼 미준수는 일상이었다. 서울메트로는 작업통제 측면에서 제기된 여러 방침을 지키지 않고 사실상 방치하였으며 심지어 스크린도어 외부위탁 관리업무에 대해서 현장 확인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제출 서류로만 확인했다.

또한 용역업체에서 제출한 수행 내역 서류를 검토하면서 2인 1조 작업의 준수 여부나 허위작성 여부는 확인 또는 검토한 바가 없었다. 안전교육(안전문 안전수칙 교육, 신규자 특별교육), 매월 교육 결과 수합관리, 비상복구훈련, 승강장 스크린도어 안전수칙 교육, 교육실시 결과 현장 실제 점검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도중 사망한 19살 김모씨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2일 오후 사고 현장인 구의역 9-4 승강장에 모여 고인의 분향소가 차려진 인근 건국대병원 장례식장까지 행진을 벌일 예정인 가운데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시민들의 추모 메모지가 빼곡하게 붙어있다. 2016.6.2권우성
 
외주화 권장하는 중앙정부의 공공기관 정책

그렇다면 과연 서울메트로와 외주업체만의 책임일까. 서울메트로의 안전업무 외주화는 정부와 서울시의 공공부문 경영 효율화 정책에 따라 추진된 결과였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교육기관, 공공기관에서는 IMF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1998년부터 구조개혁 등 다양한 명분을 내세우며 '경영혁신'을 본격적으로 진행하였다. 여기에는 인력 감축, 조직체계 개편과 더불어 주요 업무·기능의 민간위탁 또는 외주화가 포함되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경영혁신 추진 명분은 기능축소·기관 통폐합 등을 통한 핵심 업무와 주변 업무의 선별, 핵심 업무의 인력감축, 주변 업무의 외주화 등이었다.

서울시는 중앙정부의 공기업 경영 혁신 방침에 부응하여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경영혁신 추진계획」(2007년 6월 4일)을 통해 "자율적으로 경영진단을 실시하고 이에 따른 조직·인력 개편을 추진하며, 아웃소싱 확대로 조직슬림화를 추진하고 단순 반복 업무, 비핵심 업무 중심의 아웃소싱뿐만 아니라 모든 업무를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할 것"을 천명했다.

이런 기조에 따라 서울시 산하 4개 투자기관(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농수산식품공사, SH공사)이 외주화 추진 방침을 수립해 실행하였다. 특히 서울메트로에서는 2008년 당시 사장 김상돈이 서울시 방침에 발맞추어 인력감축을 중심으로 한 조직슬림화를 '창의·혁신 구조조정'이라고 부르며 업무 분사를 통해 외주화를 진행했다. 모범사용자로서 역할을 해야 할 정부와 서울시가 안전 업무 외주화를 정책적으로 독려하고 확산해 외주화 업무를 하는 간접고용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한 것이다. 김군의 사고는 이런 상황에서 일어났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서울메트로는 김군의 사망 직후 "2인 1조 원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며 사고의 원인을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개인의 부주의로 돌렸다. 이후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인력의 부족 사실이 드러나면서 서울메트로는 "지키지 못할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책임을 회피한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자 사고 발생 3일 만에 "고인의 잘못이 아닌 관리와 시스템의 문제가 주원인"이라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김군이 떠난 지 5년이 되어 가지만 그의 죽음에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19년 8월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 1부(재판장 유남근)는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스크린도어 정비용역업체 은성PSD 대표에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서울메트로 전 대표 이정원은 대법원에서 벌금 1000만 원이 확정됐다. 김군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 중 실형을 받은 이는 없다.

사고 이후'위험의 외주화'비판과 함께 생명안전업무를 직영화 하라는 요구가 거셌지만, 정규직화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긴 투쟁 끝에 직영화와 완전 정규직화가 이뤄진 것은 2018년 3월, 김군이 숨지고 1년 9개월이 지나서였다.

두 청년은 어디에나 있다

황승원과 구의역 김군은 모두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였다. 비용 절감을 내세워 벌어지는 무분별한 비정규직화, 외주화,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는 책임과 안전에 공백이 생긴다. 하청 및 파견 노동자는 산업재해 위험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사고 발생 이후 책임 주체가 특정되지 않아 배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두 청년 노동자는 이 구조의 희생양이었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일을 거부할 수 없던 하청업체 노동자 황승원은 방독면 하나 요구하지 못했고, 김군은 혼자서 선로에 들어섰다.

누군가는 여전히 황승원으로, 김군으로 대한민국 어딘가에 존재한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이 운송설비 점검을 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2019년 4월에는 수원의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 김태규가 화물용 승강기 5층에서 떨어져 숨졌다. 알려진 이름 외에 수많은 청년이, 수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 에어컨 실외기를 점검하다가, 제련소를 정비하다가, 음식을 배달하다가 수없이 다치고 죽었다. 반복되는 사고는 더는 '사고'가 아니다.

글쓴이

- 신다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졸업. 살아있는 모든 것에 애정이 있지만 요즘은 특히 식물에 빠져 몬스테라 키우기에 열심이다. 글로써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는 기자 지망생이다.

- 안치용: 청년협동조합지속가능바람 이사장. 사회책임과 지속가능성 의제화와 영화·문학·신학 공부가 관심사다. 바람저널리스트들과 '청죽통한사'를 함께 진행한다.

- 노수빈: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 영화와 소설을 좋아하며 무엇이든 읽고 보고 쓰는 것에 열심이다. 요즘은 늦은 밤 홀로 걷는 것에 빠져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다음 자료를 참고해서 썼습니다. 

1. 논문
이수원, 「구의역 PSD사고는 메피아만의 책임인가?: 안전한 도시철도경영을 위해서」, 『전문경영인연구』53, 한국전문경영인학회, 2018.

2. 단행본
임지선, 『현시창(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알마, 2012.
양정호, 『하청사회, 지속가능한 갑질의 조건, 생각비행, 2017.

3. 언론
박태우, 임지선, "오빠 숨막히게 한 학자금대출 1천만원", <한겨레>, 2011.7.17.
박태우, 임지선, "갑갑한 현실같은 기계실 출입문서 
불과 열걸음…22살 청춘은 질식했다", <한겨레>, 2011.7.17.
박경만, "일산 탄현 이마트서 냉동기 점검 중 사망 제대뒤 바로 일터로 '등록금 알바생' 비극", <한겨레>, 2011.7.3.
이상호, "20대 알바 대학생의 죽음", <경향신문>, 2011. 07.03.
김소연, "하청노동자 숨져도 기껏 벌금뿐 
원청업체 사업주 '솜방망이' 처벌", <한겨레>, 2013.03.17.
심희정, 허경구, "스크린도어 또… 똑같은 사고 3번째, 바뀐 게 없었다", <국민일보>, 2016.05.30.
박현정, "구의역 김군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10가지 배후", <한겨레>, 2016.08.03.
이효석, "'구의역 김씨' 대학 가려고 월급 144만원서 100만원씩 적금", <연합뉴스>, 2016.06.03.
홍석재, "19살 청년에게 홀로 떠넘겨진 위험", <한겨레21>, 2016.06.06.
송지혜, "엄마, 직장생활은 원래 다 힘든 거지?", <시사인>, 2016.06.13.
조원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3년, 우리가 찾았던 '악당'", <한국일보>, 2019.05.26.
탁지영, "오늘도 세워진 '추모의 벽'이 묻는다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경향신문>, 2020.05.28.
전광준, "'구의역 김군' 4주기…"책임자 중 실형받은 이 없어"", <한겨레>, 2020.05.23.
정성조, "'구의역 김군' 동료들 "정규직 되니 일터가 안전해졌다"",<연합뉴스>, 2020.05.27.
이지윤, "[취재후]스크린도어 고장 30%는 '센서고장'…모호한 표준규격", , 2017.03.07.
박은하, "진짜 문제는 '메피아' 품은 '외주화'", <경향신문>, 2016.06.04.

4. 기타
구의역사고진상규명위원회,「구의역 사고 조사보고서 총설(叢說)」,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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