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방송된 < PD수첩 > '변희수, 그녀에 대한 오해' 편의 한 장면
MBC
여전한 정체성 혼란 속에서 변희수는 2017년 40:1의 경쟁률을 뚫고 육군 부사관이 되었다. 그러나 변희수의 믿음과 달리 그는 군대에서도 지속해서 성별 불쾌감을 느끼며 정체성 혼란을 겪었고 그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갔다. 결국 우울증 증세가 점점 심각해져 오랜 꿈이었던 군 복무를 더 할 수 없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MSD 매뉴얼에 따르면 성별 불쾌감은 불안·우울증·과민성 등을 동반할 수 있다. 이러한 정서적 고통이 동반되는 원인을 사회적 낙인과 사회의 부당한 대우 때문으로 판단한다. MSD 매뉴얼과 미국 심리학회는 성별 불쾌감에 따른 부정적 감정의 치료법으로 심리 상담, 호르몬 치료, 성별 정정 과정 등을 제시한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우울증 증세로 변희수는 국군수도병원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았고 2019년 6월 같은 병원에서 '젠더 디스포리아' 진단을 받았다. 변희수는 군 생활 중 커밍아웃을 할 생각이 없었으나, 그의 담당 간호장교는 소속 부대에 성 정체성을 밝힐 것을 추천했다. 우울증이 심화하여 국군수도병원 폐쇄병동에 입실했을 때였다.
성별 불쾌감 진단을 받은 지 두 달 후인 8월 변희수는 폐쇄병동을 퇴원하기 직전에 면회 온 소속 부대 간부들에게 커밍아웃했다. 우려와 달리 그의 소속 부대는 현역 부적합심의를 진행하기보다 군인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갖춘 변희수의 결정을 응원해주었다.
"제 주특기인 전차 조종에서도 기량이 늘어 19년도 초반 소속 대대 하사 중 유일하게 전차 조종 A 성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보직이 참모부서 담당으로 변경된 후에도 참모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였고, (공군이 주최하는 UCC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해) 공군참모총장 상장을 받는 성과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 변희수 기자회견 내용중에서(트랜스젠더 A하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군인권센터, 2020.01.22)
폐쇄 병동 퇴원 후 변희수는 성별 불쾌감을 동반한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수도병원에서 정신과 상담과 호르몬 요법을 병행했다. 하지만 이런 치료 요법에 한계를 느껴 그는 성별 정정 수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트랜스젠더는 심리적 성별 정정과 신체적 성별 정정을 할 수 있다. 심리적 성별 정정은 커밍아웃하거나 이름을 바꿔 정체화를 하는 것이고 신체적 성별 정정은 성 확정(성전환) 수술을 받는 것이다.
변희수의 소속 대대는 신체적 성별 정정 결정을 응원해 주었고 2019년 10월 8일 성 확정 수술을 위한 국외여행 허가를 승인해주었다. 2019년 11월 26일 군의 승인 아래 태국으로 떠난 변희수는 11월 29일 성 확정 수술을 받았고, 12월 20일에 정상 복귀하여 한국군 최초의 트랜스젠더 부사관이 되었다.
군은 알고 있었다
변희수는 소속 부대의 지지를 받으며 성 확정 수술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2019년 12월 23일부터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절차에 따라 국군수도병원은 변희수의 심신장애 정도를 조사하고 판정하기 위한 의무조사를 진행했다. 의무조사는 현역으로 복무 중인 군인의 신체에 변화가 있을 때 자동으로 실시되며 이후 전역심사위원회에서 해당 군인이 군 복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추가로 심사한다.
국군수도병원은 변희수에게 남성의 심신장애 기준을 적용해 '양측성 고환 결손', '완전 귀두부 상실 및 음성발기력을 완전히 상실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조사 결과를 육군본부에 보고했다.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육군본부는 군인사법 시행규칙 제 53조 제1항의 2호에 따라 변희수를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했고 심사일은 2020년 1월 22일로 결정됐다.
2019년 12월 26일 청주지방법원에 성별 정정 허가를 신청한 변희수는 2020년 1월 16일 육군참모총장에게 해당 지방법원의 등록부 정정 허가신청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전역심사위원회 심사일을 연기해 달라고 신청했다. 육군은 1월 20일 연기 신청을 반려하며 심사일을 유지한다고 답변했다.
변희수는 답변을 받은 그날 인권위원회에 진정서와 함께 부당한 전역심사를 중지할 것을 요청하는 긴급구제 신청을 제기했다. 진정의 취지는 "성 확정 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별 정정신청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성 군인을 대상으로 하는 심신장애 기준을 적용하여 본인의 의사에 반한 전역 심사를 진행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라는 것이었다.
당시 인권위는 사안의 긴급성을 인정하여 이례적으로 하루 만에 긴급구제 결정을 내리고 1월 21일 "전역심사위원회 개최를 3개월 연기할 것과 성별 정정신청이 확정되지 않은 시점에 변희수 하사를 남성으로 규정하여 심신장애로 전역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육군본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육군은 예정대로 1월 22일 전역 심사를 강행했다.
이런 사태에도 변희수는 군에 복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담당 군의관이 자신에게 성 확정 수술을 권유한 순간부터 그는 모든 사안을 부대에 보고해서 승인받았기 때문이다. 여단장에게 수술과 치료 일정이 명시된 사적 국외여행 계획을 보고해서 군단장의 승인까지 받았고 군단장은 변희수와 관련된 상황을 육군참모총장에게 대면 보고까지 했다. 모든 보고가 승인되었고, 변희수는 아무 문제없이 수술을 받으러 출국했다.
성전환 수술 후에 변희수의 소속 대대는 그의 (계속) 복무를 상급 부대인 군단에 권유했고 군단에서도 역시 육군본부에 같은 의견을 제출했다. 즉 육군은 변희수가 성별 정정을 고민하는 상황을 알았고 그의 성별 정정 과정 전반을 승인했다. 변희수의 소속 부대 또한 그가 수술 이후에 복무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군대는 2020년 1월 22일 변희수를 강제로 전역 처분했다. 전역 일자는 같은 날(22일) 24시였다. 변희수는 다음 날인 23일 입원 중인 국군수도병원에서 퇴원할 예정이었다. 전역 처분일부터 최대 3개월까지 여유를 두고 전역 일자를 정하는 상례와 달리 군은 소속 부대 전우들과 마지막으로 인사할 시간도 주지 않고 변희수를 병원 퇴원과 동시에 집으로 가도록 조치했다.
전역 처분 이유는 군인사법 37조 1항 1호에 의거하여 성전환 수술을 한 변희수가 음경‧고환 결손의 심신장애 3급에 해당하므로 현역 복무가 부적합한 자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징병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따르면 '음경 훼손'과 '고환 적출'은 각각 5급 장애이고, 5급 장애가 두 개면 심신장애 3등급으로 분류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질병분류에서 성 확정 수술 여부와 무관하게 "트랜스젠더는 정신장애가 아니라는 점이 명백하다"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군은 비수술 트랜스젠더에 관한 인식이 없을뿐더러 변희수처럼 수술을 택한 트랜스젠더(트랜스 섹슈얼)에 대해서 '고의로 심신장애를 초래한 자'로 판단한다.
변희수는 전역심사위원회로 출발할 때 성전환 수술의 모든 단계에서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그저 형식상의 절차일 것으로 생각하며 "육군을 믿었다." 또한 군인사법 시행규칙 제53조에 따르면 군인은 국군수도병원에 의해 심신장애가 있다고 판정된다 해도 무조건 전역하지 않는다. 해당 법규에 따르면 군인은 심신장애에도 불구하고 현역 복무를 원할 경우 전역심사위원회의 추가 심사 단계에서 규칙이 정한 예외를 제외하고 건강 상태 등을 심의하여 현역으로 복무하게 할 수 있다.
군인권센터 방혜린 팀장은 "전역심사위원회는 국군수도병원의 진단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증언 및 본인의 의사 등을 고려하여 전역 판정을 내려야 하지만 변희수의 경우 이러한 과정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고 전역심사위원회는 단지 '심신장애'만을 이유로 전역 처분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