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원씨가 신다임씨에게 보낸 짧은 편지
지속가능바람
안치용= 이혜원은 필자 중 유일하게 글에 자신이 등장한다. 자신의 경험과 글을 쓰는 경험은 아주 다르지 않은가?
이혜원= 그때 고등학생이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몇 개월이 지난 2014년 7월 어느 날이었다. 단원고 희생자 아버지 두 분이 십자가를 메고 진도까지 간 일이 있었는데, 전주를 지나가는 시점에 전주에 살았던 내가 그분들과 함께 하루 종일 걸었던 적이 있다. 마음이 아팠고 내가 그 사건의 희생자가 됐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책감이 있었다.
내가 단원고 사고 학생들보다 한 학년 아래였었는데, 사건 당일 국어 수업시간에 모든 학생을 포함해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을 듣고 담임교사와 농담을 했다. "얘네는 수학여행 가는 날 구명조끼까지 입어보고 찐한 추억이네." 그런데 다음 날 그 소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개인적으로 죄책감이 들었다. 광주 민주화운동 편을 썼는데, 요즘 미얀마 사태를 보면서 광주가 떠올랐고, 역사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안치용= 여러분은 아무래도 세월호에 제일 공감이 되나 보다.
송휘수= 필진을 모집했을 때 처음엔 지원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 수업을 들으며 너무 힘들고 피로감이 컸던 기억이 있어서였다. 필요한 만큼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이 프로젝트 글을 쓰면서 많이 느꼈다.
윤금이 편은 내 첫 글이었는데 기사를 쓰기 전까지 그 사건을 아예 몰랐다. 잊히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이주노동자 사건을 쓰고 나서는 이 시점에서 당연히 해결됐어야 하는 문제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고, 직시해야 할 것들을 핑계를 대며 외면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서너 명의 친구로부터 기사를 보고 연락이 왔다. 자신이 몰랐던 것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고맙다, 다른 글을 더 읽고 싶다는 말들을 해줘서 이 일의 의의를 느꼈다.
글쓰기와 관련해서는 대학생에게 요구되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해보았다. 교열 도중 안치용 소장이 내가 논문에서 인용한 정보가 정확한 것인지를 물어보았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것까지 지적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이후에는 무엇인가 자료를 찾으면 공신력 있는 원출처를 찾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은 훨씬 책임감 있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안치용= 송휘수는 자료를 잘 모았고 주석량이 제일 많았다. 신뢰할 만한 많은 주석을 찾은 것이 칭찬할 만하다.
강우정= 윤동주 편을 쓰면서 느꼈던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연구가 많이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교과서나 역사서에서 배우는 것보다 입체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윤동주가 실제로 독립운동을 한 것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