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5월 20일 자 <경향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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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일본에서 유행한다는 이른바 '노빤다방' 소식이었다. 노빤다방은 노팬티다방의 일본씩 표현이었다. 동경에서는 여종업원들이 팬티를 입지 않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남자 손님들을 유혹하는 이른바 노빤다방이 성행함으로써, 일본 경찰이 단속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을 <동아일보>와 <매일경제>에서 4월 24일에, <경향신문>에서는 5월 20일에 크게 보도하였다.
보도 내용은 동일하였고, 동일한 수준으로 외설적이었다. 이들 여종업원들은 다방 앞에 서 있다가 남자들이 지나가면 살짝 치마를 들어 '아찔한 구경'을 시켜주고는 다방으로 유혹해 들어가는데, 커피 한 잔 값은 무려 1500엔이었다. 긴자 거리 등 동경에만 당시 경찰 추산으로 노빤다방이 173개나 되었다고 한다. 당시 언론을 위축시키려던 전두환 정권이 확장시키려 했던 것 중 하나가 외설 문화였다. 이런 류의 자극적인 외신 보도는 적극 권장되는 분위기였고 언론은 이에 부응했다.
넷째는 커피 드립용 커피여과지 사용금지 소식이었다. 보건사회부는 1981년 10월13일 가정과 다방에서 사용하는 커피여과지에서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됐다고 밝히고, 이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도록 지시했다. 고려대학교 김강진교수팀이 국산품 4점과 수입품 4점 등 8점의 여과지를 수거하여 국립보건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커피 1잔에서 1백 마이크로그램의 폼알데하이드가 검출되었다는 소식은 모든 신문에 동일한 내용으로 빠짐 없이 보도되었다.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는 10월 13일 자에, 조선일보는 10월 14일 자에 일제히 보도하였다. 이 지시를 받은 전국의 모든 시와 도에서는 수입품이든 국산이든 모든 커피여과지의 사용을 일제히 금지시켰다. 드립식으로 내린 원두커피를 제공하던 업소들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소식이었다.
종이여과지의 원조인 서독의 멜리타여과지를 수입 시판하고 있던 미주산업에서는 항의를 하고 나섰다. 일본 식품위생협회와 연세대학교 환경공해연구소의 실험 결과 멜리타 제품에서는 폼알데하이드 등 발암물질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제히 판매 금지를 시켜서 판매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12월 5일 보건사회부는 국립보건원의 검사 결과 안정성이 입증된 미주산업과 한국특수제지에서 수입 판매하는 여과지에 한해 사용을 허용한다고 발표하였다. 커피와 함께 발암물질 폼알데하이드가 유명해졌다.
문제는 여론이었다. 받아쓰기식 보도는 받아쓰기 문장을 읽어주는 사람들의 의도에 맞는 여론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국산커피에 대한 호평 기사와 드립용 여과지의 폼알데하이드 검출 뉴스가 대비되면서 국산 인스턴트커피의 판매는 약진했다. 커피가 췌장암의 원인이라는 보도는 커피에 대한 일시적인 기피와 국산차의 일시적인 유행을 가져왔다. 정부 주도로 시작된 국산차 애용 운동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일본식 노빤다방 뉴스는 티켓다방의 출현 등 마침 불기 시작한 다방의 퇴폐화를 부추기는 데 일조하였다.
9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모든 뉴스는 "전두환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하던 땡전뉴스의 시대가 열렸고, 커피에 관한 대부분의 기사는 새로 등장한 '기레기'들이 누군가 불러주는 글을 받아쓰기 시작하면서 점차 획일화, 저급화되었다. 커피에 관한 신문 기사 수준이 당시 유행하던 인스턴트커피 수준보다 낮았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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