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월 20일 자 <조선일보> 1면 기사 "물고문 중 질식사 - 경찰, 서울대 박종철군 사망사건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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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죽고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죽고 모든 것이 변화했다. 1987년은 '탁 치니 억 하며 죽었다'는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시작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연세대생 이한열의 죽음을 딛고 시민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 해였다.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헌법을 여야 합의로 만들고, 국민투표로 확정했고, 15년 만에 국민이 직접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게 되었다.
12월 16일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는 역대 그 어떤 선거보다 뜨거웠다. 노태우,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이 출마했다.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은 6월 항쟁이 한창이던 6월 24일 오전 전두환과 영수회담을 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했다. 만나자마자 전두환이 "차를 한잔하실까요?"라고 물었고, 김영삼은 "아침에 벌써 커피를 몇 잔 마셔서 인삼차를 마시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당시 손님 접대 문화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집이든 사무실이든 손님이 오면 커피, 프림, 설탕을 두 스푼씩 넣은 '둘둘둘 커피'를 내놓던 시절이었다.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한강의 소설 <몽고반점>에서도 주인공 격인 채식주의자 영혜의 형부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는 후배 J와 만나서 커피 마시는 장면이 몇 번 나온다. 한번은 자판기 커피였고, 또 한번은 둘둘둘 커피였다.
대통령 선거 열기가 한창이던 이해 11월에 발표된 통계를 보면 전국에는 다방이 3만 7815개 있었고, 이 해에 서울의 다방 개수가 처음으로 1만 개를 넘겼다. 국민 1인당 1년에 커피를 200잔 이상 마시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물론 시민들이 마시는 대부분의 커피는 둘둘둘 커피였다.
커피 제2의 물결
1987년은 국내적으로는 6월 항쟁과 대통령 직선, 국제적으로는 냉전 종식으로 이어진 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된 해였다. 이 해는 국내외 정세뿐 아니라 세계 커피의 역사에서도,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에서도 몇 가지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났던 격동의 시간이었다.
세계 커피 역사에는 하워드 슐츠라는 멋진 분이 나타났다. 텀블러 세일즈를 하던 슐츠가 스타벅스에 합류한 것이 1982년이었다. 잠시 스타벅스에서 일하던 슐츠는 시애틀 다운타운에 카페 '일 지오날레'를 열었다. 이탈리아식 카페였다. 그리고 1987년, 스타벅스의 매각 소식이 전해지자 자금을 모아 스타벅스를 인수했다. 자신이 창업한 카페 '일 지오날레'라는 간판을 떼 버리고 스타벅스라는 간판을 남겼다.
이후 스타벅스는 미국의 오래된 커피 문화, 카페 문화와 뜨거운 경쟁을 시작하였다. 스페셜티 커피라는 새로운 커피를 등장시켰고, 세계의 커피 문화가 이 해부터 송두리째 바뀌기 시작했다. 커피 제2의 물결 속에 세계가 빠져들었다.
1987년은 커피 가격의 하락으로 국제 커피 시장이 매우 혼란스러웠던 해였다.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커피 산지의 풍년으로 커피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1987년도 들어 불과 4~5개월 동안 국제 시장에서의 커피 생두 거래 가격은 50% 정도 폭락하였다.
파운드당 2달러 이상이던 것이 1.03달러로 떨어졌고, 커피 수출 의존도가 높았던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온두라스 등 중미 국가들의 경제가 내려앉고 있었다. 국제커피기구(ICO)도 내분으로 인해 가격 조정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국내 커피 업체들의 커피 원료 가격 인하 조치는 커피 소비자들을 즐겁게 했다.
다방과 카페의 경쟁
우리나라 커피 역사에서도 1987년에는 몇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첫째는 일시적인 변화였다. 정부 주도와 애국 시민들의 참여로 국산 차의 판매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커피의 시장 점유율이 급격하게 낮아졌다. 1987년 중반 서울시의 조사에 따르면 국산 차의 점유율이 47%를 차지해서 커피를 위협하기에 이르렀고, 그 선두에는 율무차가 있었다. 율무차 다음으로는 유자차, 인삼차 등의 인기가 높았다.
보건사회부가 '국산 차 및 코피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산 차를 마시는 이유는 57.7%가 '건강에 좋다고 해서'를 꼽았다. 21%는 '국산품을 애용하기 위해'를 들었다. '맛이 좋아서'를 택한 시민은 16%에 불과했다. 반면,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52%가 '기호성'을 이유로 들었고, 이어서 '남들이 마시니까'와 '습관성'을 꼽았다.
커피 업체 간 경쟁이 심화된 것도 1987년이었다. 이해 9월 10일 두산식품이 신청한 스위스 네슬레사와의 합작을 인가했다. 일본의 UCC커피를 생산하던 한국커피가 해태식품에 이해 7월에 합병됐고, 커피 전문기업 씨스코는 샘표식품 계열인 조치원식품에 넘어간 상태였다. 두산의 커피 산업 진출에 대해서는 시장 점유율 8%를 차지하고 있던 MJC의 반발이 심하였다. 순 국내 기업인 MJC와 조치원식품의 반발에도 두산-네슬레 합작 회사인 '한국네슬레'는 이해 10월 21일에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하였다.
1987년에 본격화된 경쟁 중 하나는 다방과 카페의 경쟁이다. 커피와 차를 파는 전통적 다방과는 달리 분위기를 파는 카페가 우후죽순 등장하여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 서울올림픽을 1년 앞둔 1987년 즈음이었다. 구기터널 앞은 '학사촌', 방배동은 '새벽촌', 압구정동은 '만국촌'이라는 은어가 유행할 정도로 색다른 카페들이 모여 있는 카페 거리도 속속 등장했다. 압구정동이나 방배동에는 200개 이상의 카페가 밀집해 있었다.
이즈음에 카페도 체인점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였다. 스타벅스 등 외국 프랜차이즈의 등장 이전이었다. 내부 설계나 실내 장식, 음악 등을 통일시키는 등 독특한 이미지를 내세운 카페 체인점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등장하였다.
서울, 수원, 안양 등 수도권에 58개의 체인점을 두고 있던 '난다랑'은 커피 맛과 분위기로 젊은 층을 사로잡고 있었다. 모든 점포는 지하가 아니라 지상으로, 전면은 유리벽으로, 그리고 커피 도구와 재료는 본부에서 지정한 것만 사용할 것 등 일정한 기준을 지켜야 했다.
그 밖에도 독일풍의 분위기를 자랑하던 카페 '하이델베르그', 스페인 분위기를 연출한 카페 '스페인하우스'도 있었다. 카페 '채플린'은 희극배우 채플린의 사진과 포스터로 장식한 실내 분위기가 돋보이는 카페였다.
'오늘도 기쁜 날' 커피가 두 번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