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989년 12월 1일 자 기사 '원두커피 소비 크게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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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에서 흥미로운 커피 뉴스가 가장 적었던 해의 하나는 1988년이었다. 올림픽 뉴스의 과다, 국산 차 애용 운동의 여파였다. 대학가에 새로 등장하기 시작한 '공부다방'과 '유니토랑' 정도가 새로운 소식이었다. 공부다방은 요즘의 스터디카페였고, 유니토랑은 대학가 주변에 새로 등장하여 원두커피를 파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프랑스의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87년 역사를 자랑하던 명소 '푸케 카페'가 폐업 위기를 맞자, 단골손님들이 보존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생뚱맞은 소식이 눈에 띌 정도였다.(경향신문 1988년 7월 23일 자)
올림픽 열기와 5공 청문회 등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커피의 세계에서는 1980년대 말 매우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것을 상징하는 농담이 당시 미국 한인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 "시민권자는 커피를 블랙으로 마시고, 영주권자는 설탕 또는 밀크 한 가지를 타고, 불법체류자는 둘 다 믹스된 커피를 마신다"는 얘기였다. 이민자들이 미국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커피에 비유한 것이다. 커피 소비 패턴의 변화를 보여주는 농담이었다.
비슷한 흐름이 우리나라 커피 소비시장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한 세대 이상 유행하던 인스턴트커피의 유행이 조금씩 약해지면서 원두커피 소비가 크게 늘기 시작한 것이 이즈음이었다. 서울올림픽 직전인 1988년 5월에 창간된 일간지 <한겨레> 1989년 12월 1일 자는 '원두커피 소비 크게 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당시 커피 시장이 다양해지면서, 원두커피에 대한 일반 소비자들의 높아진 관심사를 소개하였다.
각 백화점들이 원두커피와 원두커피 조리기를 판매하는 특설코너를 마련하고 있었고, 각 커피 회사들은 원두커피 생산량을 늘려가는 추세였다. 당시 판매되고 있던 국산 원두커피로는 MJC, 자뎅 등이 인기가 있었고, 수입 원두커피는 프랑스 알베르커피, 미국 핀리커피, 스위스 네슬레커피 등이 비싸지만 잘 팔리고 있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커피 맛은 크게 단맛, 신맛, 쓴맛, 떫은맛으로 구분되는데 신맛이 많이 나는 것은 모카, 콜롬비아,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하와이코나, 멕시코, 킬리만자로 등이며, 쓴 맛은 로부스타, 단맛은 콜롬비아, 모카, 블루마운틴 등으로 소개되었다. 이 중에서 자마이카(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중성의 맛을 내는데 생산량이 적어 값이 너무 비싼 것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원두커피와 함께 커피 조리기도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었다. 가장 간단하게 여과지를 이용한 방법, 알코올로 끓이는 기구, 필터를 누르는 기구 등이었다. 당시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던 동서식품의 한 직원은 "앞으로 10년 안에 원두커피 수요가 인스턴트커피 수요를 앞지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MJC의 기획과장은 "소비자들의 기호가 질 위주의 제품 선호로 나아가고 있는 만큼 원두커피 개발에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전망이나 계획은 이후 우리나라 커피 시장의 미래를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정확하게 10년 후인 1999년에 원두커피 소비의 촉매제가 된 스타벅스 1호점이 이화여대 앞에 문을 열었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며 새로운 커피들이 등장하였다. 1989년 8월 1일 신문 광고를 통해 등장한 '아메리칸 미네랄커피'도 그중 하나였다. ㈜배문교역이 "새로운 커피문화가 시작된다"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고, "미국에서 최고급 커피로 알려진" 구르메 커피 3종과 레귤러 커피 2종을 수입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아쉽게도 이 커피는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사라졌다.
두산그룹은 세계 최대의 커피 기업인 스위스네슬레와 합작으로 한국네슬레를 설립했다. 그리고 인스턴트커피와 원두커피, 그리고 커피 크리머를 생산, 시판하기 시작한 것이 1989년 12월 7일이었다. 한국네슬레는 '커피의 새로운 세계 네스카페'라는 광고를 통해 동서식품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네슬레의 카네이션 커피메이트는 동서식품의 프리마와 경쟁하였다. 이후 동서식품과 한국네슬레는 한동안 국내의 커피와 커피 크리머 시장을 놓고 대결하는 양대 라이벌이 되었다.
국내 커피 소비의 확대에 따라 커피 생산 국가인 콜롬비아의 국립커피생산자연합회도 신문 광고를 통해 자국 커피의 우수성을 직접 알리기 시작하였다. 국가 차원에서 커피 광고를 시작한 첫 사례였다. 1959년에 등장한 가공의 캐릭터, 노새와 함께 서 있는 커피 농부 후안 발데스 사진과 함께 "가장 부드럽고 맛과 향이 뛰어난 최고급 커피"라는 광고 문구는 많은 커피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마일드커피의 등장이었다.
북한산 커피잔도 백화점에서 판매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