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7일 기후위기 비상행동 소속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 대사관 건너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 트럼프 정부의 파리 기후변화 협정 탈퇴를 규탄했다.
유성호
트럼프주의의 이단적 성향은 대외 정책에서 더 두드러진다. 공화당의 고전적 보수주의 시기에는 미국의 군사적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비개입주의가 기본이었다. 미국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직접적인 이익이 위협받지 않는 한 군사 개입을 억제하는 정책이 우선시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민주당 주도의 정책과 냉전 현실 속에서 미국의 군사 개입이 빈번해졌고, 이는 국가 이익을 위한 개입주의의 대대적 천명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네오콘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트럼프주의는 미국의 전통적인 고립주의(비개입주의)와 개입주의를 넘어 새로운 형태의 안보관을 의미한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후, 미국은 유일한 초대강국으로 부상했다.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위한 다자주의가 요구됐지만, 확고한 원톱 지위를 가진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고수하며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강화하려 한다. 자국에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다자주의 협정이나 국제기구 탈퇴도 불사한다. 이것이 미국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할지 여부에 대한 우려에도 개의치 않는다.
트럼프주의는 이렇게 미국의 전통적 고립주의와 개입주의를 넘어 새로운 형태의 '단독주의'를 예고하고 있다. 파리기후협정, 이란 핵 합의 탈퇴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접근은 미국이 과거보다 더욱 단독으로 행동할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압도적인 국방력과 기축 통화국으로서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세계 질서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도 비용은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을 담고 있다. 과연 이러한 전략이 미국의 유일한 초대강국 지위를 유지하는 데 효과적일지에 대해서는 미국 내부에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2기 탄생이 확실시되고 나흘 후, 사우디 아라비아의 파야드 알루와일리 군 참모총장은 대표단을 이끌고 이란을 방문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의 군 수뇌부가 한자리에 앉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이자 이란의 경쟁국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중동의 안정을 더 이상 전적으로 미국의 중재에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사우디 아라비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홍해와 아덴만 해군 연합 훈련에도 참여하지 않은 바 있다. 오히려 이란에 합동군사훈련을 제안했다고 이란 언론이 보도하기도 했다.
역시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시된 6일 오전,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과 통화하기에 앞서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와 전화 통화를 나눴다.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이 사실을 전하며, 두 나라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더 통합되고 강하며 자주적인 유럽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 자체 방위군 창설에 적극적인 인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법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유럽의 안보를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압력으로 나토 회원국들이 국방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면, 유럽은 더 이상 미국의 영향권에 머무는 것이 매력적이지 않게 될 것이다.
미국의 단독주의가 과연 미국을 더 강하게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2차 대전 이래 80여 년간 유지해 온 리더십을 내려놓는 수순으로 이어질 것인가. 어쨌든 내년 1월이면 트럼프 2기 정부가 정식 출범한다. 트럼프 4년과 바이든 4년을 경험한 미국인들이 내린 선택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비해 유럽과 서아시아는 조금씩 대응을 시작하고 있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운명 역시 이를 방관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