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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는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가까이는 연초 부시의 '악의 축' 발언 이후 제기돼온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이 북한핵 문제를 기화로 북-미간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날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을 계속 거부하면서, 북한측에 일방적인 핵포기를 압박하고 있고, 이에 맞서 북한은 핵개발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이 자칫 94년 상황보다 더 심각한 전쟁위기로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으로선 한반도의 전쟁이 '국제정치의 수단' 정도일 수도 있으나, 우리에게는 '민족공동체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민족보전과 평화유지 차원에서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야한다. 일찍부터 '2003년 위기설'을 경고해온 <오마이뉴스>와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는 공동기획을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상황을 진단하고 동시에 그 해결책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편집자 주>
@ADTOP1@
지난 10월 이후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비밀 핵개발 파문, 미국의 북한 미사일 수출 선박 나포, 북한의 동결 핵시설 해제 조치 등이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2003년 한반도에 대해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94년 전쟁위기보다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반면, 94년에도 그랬듯이 위기는 당분가 고조되겠지만 극적인 반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미래가 결정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우리로서는 한반도가 위기에 직면하는 상황을 지금부터 예방해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리고 위기 예방의 핵심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핵문제를 비롯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쉽지 않은 과제가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결코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핵보유는 비단 한반도 차원에서만 머무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동북아는 물론이고 전세계에 미치는 파장은 엄청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보유는 당장 정치적 결단만 내리면 수년내에 수백기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일본의 핵무장론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북한에 이어 일본도 핵무장을 시도할 경우 남한 역시 핵보유론이 강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는 또한 그동안 급격한 핵군비증강을 자제해온 중국의 핵증강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북한이 핵개발에 성공할 경우, 미사일에 이어 '외화벌이' 수단으로 핵기술의 수출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핵보유는 이처럼 동북아 지역의 핵군비경쟁은 물론이고 핵무기비확산체제(NPT)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우방 국가들은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 비핵화'를 강력히 지지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의 핵보유를 막을 수 있는 세 가지 방법
이렇듯 북한의 핵보유가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북한의 핵보유를 저지하자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모든 '방법'이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목적을 달성하는데 선택한 방법의 유용성, 선택한 방법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사려가 전제되지 않으면, 목적 달성에 실패할 수도 있고, '빈대 잡는데 초가삼간 태우는 격'으로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경제적으로 사실상 붕괴 상태에 있는 북한에 제재와 압박을 가해 북한의 핵포기를 강제하는 것이다. 둘째는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핵개발 포기를 설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변을 비롯한 핵의혹 시설을 폭격해 핵무장의 잠재력을 제거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10월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 보유 인정이후 미국이 취해오고 있는 방식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를 '외교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외교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화와 협력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이러한 방식이 오히려 북한의 핵개발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게는 한반도의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평화적 방식'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
이는 무력 사용이 일단 배제되었다는 점에서, '반평화적'이라고까지 얘기할 수 없으나, '비평화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북지원을 줄이면서 경제제재를 높이는 방식으로 북한의 굴복을 유도하려고 할 경우,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북한의 대량 아사 사태 등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 대참사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과에 대한 사려'가 부족한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방법, 즉 '협상'을 통한 해결은 북한이 원하고 있으나 미국이 계속 거부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개발을 '악행'이라고 규정하고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고 있지만, 이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니다. 북한의 핵개발 시도는 근본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점증하는 체제위협에 대한 '반작용'이기 때문이다.
협상을 통한 북한의 핵무장 저지는 가장 현실적이면서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핵개발 당사자인 북한이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기를 원하고 있어 문제 해결의 가장 유력한 방법이고, 북한과 미국이 가장 어려운 문제를 협상을 통해 푸는 성과를 낳을 경우 미사일, 생화학무기, 재래식 군사력 등 다른 안보 현안과 더불어 궁극적으로는 북미간의 적대 관계를 청산함으로써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으며, 동북아의 핵군비경쟁 방지 및 NPT 체제 유지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방법인 무력 사용을 통한 북한의 핵개발 저지는 '목표'를 달성할 수는 있을 지는 몰라도, 이보다 더 상위의 목표, 즉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유지를 근본적으로 해친다는 점에서 가장 어리석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주한미군을 포함해 200만명에 육박하는 병력이 중무장하고 있는 한반도에서는 근본적으로 제한전(limited war)이란 있을 수 없다. 남한 등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첨예하게 맞서 있는 북한과 미국까지도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ADTOP2@
극적인 반전을 기대할 수 있나?
'무력 사용' 방법을 배제한다면, 남는 것은 대북 압박을 통해 북한을 굴복시키는 방법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미간의 핵심 현안을 타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전자는 북한이 거부하고, 후자는 미국이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점차 위기가 고조되는 형태로 한반도 정세가 흐를 가능성이 높다. 정세가 여기까지 다다르게 되면, 한반도 정세는 '전쟁이냐', '극적인 반전을 통한 평화'냐는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 갈림길에서 한반도의 운명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수백만명의 목숨과 민족공동체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마치 점쳐보듯이 전망한다는 것도 가슴아픈 일이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이 오늘날의 해법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앞날을 예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마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후의 희망'은 위기가 한참 고조된 이후 북미 양측이 극적인 반전을 모색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즉, 94년 전쟁위기 당시처럼 전쟁위기가 역설적으로 재앙을 피해야한다는 이성적인 사고를 강화시켜, 극적인 타협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극적인 반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북미 양측이 근본적으로 "전쟁만은 피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미국과 전쟁을 벌일 경우 체제멸망을 피할 수 없는 북한으로서는 한편으로 핵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끝까지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파국을 막겠다"는 의지를 갖고, 막판에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앞으로도 미지수이다.
위기가 점차 고조됨에 따라 미국 내 온건파와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국제사회로부터 "협상에 임하라"는 압력도 고조되겠지만, 지금까지 협상불가 입장을 고수해온 부시 행정부가 극적인 태도 변화를 보일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힘들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클린턴 행정부는 제네바 합의를 자신의 최대 외교 업적의 하나로 내세워온 반면에, 부시 행정부는 이를 미국 외교의 수치로 여기고 있다. 이것은 부시 행정부가 94년과 유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클린턴 행정부와는 다른 접근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94년 위기 당시 북미 양측은 "전쟁을 피하겠다"는 것보다는 "전쟁도 불사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클린턴 행정부는 한국 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사전' 상의없이, 대규모 증원전력 파견과 영변 핵시설 폭격을 추진했고, 이에 맞서 북한은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힘에는 힘으로 맞서겠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94년에 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 양측의 이성적 사고에 힘입은 것이 아니라,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이라는 극적인 개입을 통해 이뤄진 것임을 말해준다.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길에 CNN 기자단을 대동해 김일성 주석과의 합의 내용을 전세계에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국제여론이 "미국은 협상에 임하라"는 방향으로 급선회하면서 클린턴 행정부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북한과의 협상에 임했던 것이다.
당시 카터는 클린턴 행정부의 특사가 아니었을 뿐더러, 클린턴 행정부와 김영삼 정부는 오히려 카터의 방북을 반대했었다. 결국 카터가 고집을 꺾지 않자, 클린턴 대통령은 카터에게 '특사'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방북하는 것임을 주지시키기도 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6월 16일 백악관에서 일종의 한반도 전쟁 회의를 열고 있을 때, 평양으로부터 "김주석과 합의했다"는 카터의 전화를 받고, '환호'한 것이 아니라 '경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는 '반전(反轉)'을 잉태한 새로운 기회로써 작용하기보다는 전쟁도 불사한다는 극단적인 사고의 강화를 가져온다는 것이 94년 위기가 주는 핵심적인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지금의 미국은 94년 당시 북폭을 추진했던 미국보다 훨씬 호전적일 뿐더러, 훨씬 강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전(反轉)'을 기대하기보다는 '예방'에 주력하는 것이 우리의 양보할 수 없는 전략적 마지노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운명을 '가능성'에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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