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핵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간의 양보 없는 대결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27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추방하기로 하고, 이에 맞서 미국이 유엔에 '고립과 봉쇄'를 중심으로 한 대북제재안 상정을 추진하기로 해 북미간의 대결이 '벼랑끝'으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예상보다 빨리 '한반도의 위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0월 미국의 대북 특사 파견이후 불거진 북한 핵파문은 북한의 선(先) 핵포기 거부, 미국의 대화 거부 및 중유 제공 중단, 선제공격 대상에 북한 포함, 미사일 수출 선박 나포 등이 잇따르면서 빠르게 위기 국면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특히 북한은 지난 12월 13일 동결 핵시설의 해제를 선언하고, 불과 2주일 동안 봉인과 감시카메라 제거, 새 연료봉 원자로 장전 준비 등에 이어 27일에는 IAEA 사찰단마저 추방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위기 상황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와 협상하든, 우리의 핵무장을 감수하든 양자택일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미국측에 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노림수는 무엇인가?

북한이 이처럼 한-미-일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것을 알면서도, 이른바 '금지선(red line)'에 접근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포석을 깔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금지선이란, 실제로 핵무기 개발에 이용할 수 있는 플루토늄 생산을 말하는 것으로, 8천개에 달하는 사용후 연료봉을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하면 추출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사용후 연료봉을 재처리하면 6개월 이내에 5개 안팎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관련
기사
한반도 위기 ' 대북협상 ' 이 최상책 ' 극적 반전 ' 없을땐 파국 맞을수도

북한은 현재까지 재처리 전단계로 사용후 연료봉 저장시설과 방사화학실험실의 봉인과 감시카메라를 제거한 상태이고, IAEA 사찰단 추방을 발표하면서 방사화학실험실을 재가동할 준비를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이다.

북한은 이를 두고 "폐연료봉들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이라고 밝히고 있어, '재처리' 여부는 두고봐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봉인과 감시카메라 제거에 이어 IAEA 사찰단까지 추방하기로 함으로써, 북한이 연료봉을 '보관'을 하는 것인지, '재처리'를 하는 것인지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국제사회의 불신이 높아질 것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ADTOP7@
북한이 이처럼 미국과의 '벼랑끝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지 불가침 조약을 핵심으로 하는 미국과의 타협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도 때문이다.

즉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임박해지면 임박해질 수록, 북한은 핵개발 수위를 높이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 최근 북한이 보여주는 모습의 핵심적인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도의 배경에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려면 북한 핵문제가 적어도 '현상유지'는 되어야 하는데, 북한이 핵카드의 수위를 높임에 따라 미국이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과,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추진하면서 북한도 동시에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계산'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최근 미국 안팎에서 점증하고 있는 '협상론'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핵파문 초기에 미국 내에서는 '협상론'이 이렇다할 힘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이 예상보다 빨리 핵개발 수순을 밟고 있다는 미국 안팎의 판단이 커지면서,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의 주요 언론과 전문가, 그리고 의회의 주요 지도자들이 부시 행정부에게 협상에 나서라는 요구가 커져왔다.

이에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대화를 거부하자, 북한은 IAEA 사찰단 추방이라는 카드를 꺼내듦으로써 미국 안팎의 '협상론'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러한 북한의 판단은 일정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IAEA 사찰단 추방 결정 직후에, 중국, 러시아 등은 성명을 내 북한의 조치에 비판을 하면서도, 미국에게 즉각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북한의 핵카드가 '협상용'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협상 요구를 부시 행정부로부터 '일축'당해왔고, 이러한 태도가 변할 가능성도 많지 않은 현실에서 북한은 실제로 '핵무장'을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으로부터 체제 위협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에서, 또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적 수단이 부족한 상황에서, 더 중요하게는 이라크 다음에 북한이 될 것이라는 강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현실에서 최후의 보루로서의 '핵무기'는 북한으로서 쉽게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러한 분석은 북한의 일관된 입장에서도 확인된다. 북한은 지난 10월 25일 외무성 담화를 통해 자신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보장받는 방법은 두 가지, 즉 협상과 억제력이 있다며, 협상을 선호하지만, 이것이 안 될 경우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 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오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 미국의 대북한 군사 행동을 막을 수 있는 억제력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 유엔 안보리 상정 준비

북한이 IAEA 사찰단을 추방하기로 하자,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상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북핵 문제에 대한 다음 조치로 "고립과 봉쇄"를 중심으로 한 제재안을 유엔 안보리에 내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 1월초 예정된 IAEA 이사회에서 대북제재안의 유엔 안보리 상정을 집중 검토한 이후, 미국 주도의 제재안을 만들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재안이 성공적으로 마련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는 일에도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일부에서는 군사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나, 이를 위해서는 부시 행정부가 대이라크 전쟁 계획을 총체적으로 재검토해야할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것이 확실하다는 점에서,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다.

지금 단계에서 군사 행동에 나설 경우, 전면전이 불가피하고 이에 따라 주한미군을 포함한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공격할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협상에 나서는 것도 '체면' 구기는 일이다. "북한이 먼저 신속하고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핵개발을 폐기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고 강조해왔고, 최근에는 "북한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결의까지 밝힌 마당에 북한이 미국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에 나선다는 것은 부시 행정부로서도 큰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북한에 압박과 제재의 수준을 높이면서,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전략을 계속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오히려 북한의 핵개발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부시 행정부는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고 있기도 하다.

기대와는 달리 남한의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돼 강경기조의 한미일 공조체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졌고, 북한이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 돌입에 앞서 핵개발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시간은 미국편'이라는 공식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다음에 이어질 기사 : 북한과 미국의 '벼랑끝 대결',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