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전력난에 시달려온 북한은 작년 11월부터 중유 제공마저 끊기면서, 최악의 전력난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의 NPT 탈퇴 선언은 중유 제공을 원하는 간접적이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NPT 탈퇴 선언 직후 베이징 주재 대사관을 통해 중유 제공을 재개하면 NPT 탈퇴를 재고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또한 북한이 "현 단계에서 우리의 핵활동은 오직 전력생산을 비롯한 평화적 목적에 국한될 것"이라며 핵무기 개발과 무관함을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일관되고 절박한 요구는 역시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보장의 '담보'를 받는 것이다. 미국이 계획대로 대이라크 전쟁을 끝낸 이후, 총구가 자신에게 향할 것이라는 강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미국과의 협상을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북한의 기대대로 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중유를 다시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고농축 우라늄과 관련한 의혹이 해소되어야 하는데,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천양지차이기 때문에 대단히 쉽지 않다. 또한 북한이 요구하는 불가침 조약 체결에 대한 미국의 반대 입장이 워낙 단호하고, "악행을 보상하지 않겠다", "협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미국이 북한의 NPT 탈퇴를 '협상'으로 응수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NPT 탈퇴가 핵문제를 둘러싼 대결의 축이 '북한과 미국'이 아닌, '북한과 국제사회'라는 입장을 강화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북핵 문제가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면, 북미간의 협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 역시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동시에 북한의 강경 드라이브가 부시 행정부의 대이라크 전쟁 계획에 차질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의 딜레마는 더욱 커질 것이다. 유엔을 통해 이라크와 북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이라크에는 '전쟁', 북한에는 '평화적인 해결'을 추구하는 이중 잣대에 대한 미국 안팎의 비난 역시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무원칙한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언론의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의 NPT 탈퇴가 미국에게 미칠 영향은 이중적이다. 한편에서는 "북한이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려 든다. 절대 굴복해서는 안된다"며 강경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경파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 북한의 핵무장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온건파의 주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함으로써 강온파 주장을 모두 흡수하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