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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의 '사법'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는 '전시(戰時)'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기반한 군 사법제도 때문으로 평시에 '軍 비리'를 은폐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오마이뉴스>는 [특별기획-군 사법을 고발한다]를 통해 현행 군 사법체제의 불합리 실태를 고발하고 대안도 제시할 방침이다... 편집자 주)

▲ 육군 주요 지휘관회의 장면.(사진은 기사내 특정사실과 관련 없음)
ⓒ 연합뉴스 조용학
"2000년 8월23일 : 감찰부고충처리에 소대장 이하 병사들이 중대장의 지독한 구타 및 가혹행위를 신고함.
8월24일 - 오후 4시경 : 사단장, 법무참모, 헌병대, 감찰참모 사건 검토 후 구속수사 지시함.
8월26일 - 오전 8시30분경 : 헌병대 영장신청/오전 9시30분경 : 검찰관 영장청구 결정/오전 11시경 : 사단장 영장청구 보류지시/오후 2시30분경 : 법무참모, 헌병대장, 기무부대장 직무실에서 사건 토의 후 사단장이 불구속 기소유예 지시, 법무참모 반대로 회의 정지 후 사단장께 지시 재검토 건의함.
8월29일 - 오후 5시30분경 : 사단장 구속수사 재지시.
8월30일 - 오후 4시40분경 : 영장청구 도중 (법무)감실의 지시로 구속영장 청구 철회/오후 8시 : 군판사 구속영장 발부함."


군검찰 속보에 드러난 군 고위층의 '육사 출신 감싸기'

지난 2000년 0사단 검찰 속보에 적시되어 있던 영장청구 기록이다. 부하들을 상습 폭행했던 육사 출신의 일선 중대장 조00 대위를 구속하기까지의 긴박했던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검찰관이 영장청구를 결정한 지 불과 2시간여만에, 영장을 검토할 시간적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 영장청구가 보류되고, 그 뒤 3시간이 지나서 불구속 기소유예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또 영장청구 도중 법무감실의 지시에 의해 영장청구가 철회됐다가 불과 3시간만에 영장이 발부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기소부터 영장발부에 이르기까지 군 상층부가 행사한 '압력'이다. 결국 당사자의 혐의 내용에 대한 판단보다는 특정 인맥에 의해 사법처리가 좌우되는 군사법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군의 한 관계자는 "당시 군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영장이 청구되더라도 나의 지시가 없으면 영장을 접수조차 하지 말라'고 군사법원쪽에 지시하기도 했다"면서 "도대체 부끄러워서 말하기도 싫은 사건"이라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군판사는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군 내부의 강한 반발이었다. 결국 군지도부는 시끄러워지면 곤란하다는 판단으로 '압력'을 스스로 거둬들인 것으로 보인다. 영장이 발부됐던 8월30일 한 검찰관이 군 내부통신망을 통해 '부당한 압력'에 대한 격한 감정을 토로한 글의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왜 불구속으로 수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을까요. 감실에서 도대체 누가 불구속 지시를 하였을까요. 지휘관까지 구속을 승인한 사안에서 다시 영장청구를 철회시킨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검찰권으로 대표되는 군사법 기능을 왜곡시키는 어떠한 외압에 대해서도 우리는 분연히 맞서야할 것입니다."

당시 불구속 지시를 내린 인물은 육사 36기 출신인 김아무개 법무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지시를 받아들여 중간에서 오락가락했던 사람도 육사 출신 수석검찰관, 피의자도 육사 출신이었다.

육사 출신 중령, 군 관사 팔아먹고도 '벌금'

지난 99년 육사 출신의 이아무개 중령이 군 관사를 민간인에게 매각했지만 벌금형에 그친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당시 이 중령은 폐관사를 철거했다는 허위 공문을 작성한 뒤 건물을 증개축해 민간인들을 상대로 전세를 놓다가, 전출을 가면서 수천만원을 받고 민간인에게 매각했다. 군검찰은 그를 업무상 횡령 및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하려 했지만, 육사 출신의 군 지휘부의 한 인사가 압력을 행사해 구속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는 벌금형으로 종결됐다.

군인의 신분으로 군 관사를 사유화해 매각처분까지 한 범죄에 대해 구속조차 못한 군검찰과 군사법정의 비상식적인 판결의 배경에는 특정인맥이 자리하고 있다. '육사'는 살아남고, 콩밥 먹는 것은 '비육사' 출신이라는 체념조의 비아냥이 흘러나오는 이유이다.

지난해 군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두 개의 사건, 즉 '국방회관'과 '육군회관' 사건의 처리 결과를 비교해 보면 '비육사 차별'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방부 합조단은 지난해 4월10일 군복지회관에서 부하직원이 빼돌린 수익금 중 일부를 정기적으로 상납받은 군 장성들을 적발해 사법처리했다. 소위 '국방회관' 사건이다.

3사 출신은 '봉'?

▲ 김근태 예비역 소장의 재판 기록. 그는 1심에서 5년형을 선고 받고 2심에서 징역 2년6월 집유 3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신일순 예비역 대장은 벌금형에 그쳤다.
당시 3억원대의 수익금 횡령 혐의를 받았던 국방회관 전 관리소장 서흥석씨(58·군무원 4급)에게서 수시로 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사법처리된 장성 3명은 모두 '비육사'인 3사 출신이다.

3사 2기인 김근태 소장(53·전1군단 부군단장. 특가법상 국고손실)은 국방부 근무지원단장 시절 서씨로부터 7600만원을 받아 1심에서 징역 5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 집유 3년을 선고받았다. 3사 4기 출신인 이00 소장(51·전 근무지원단장)은 서씨로부터 수시로 총 6400만원에 달하는 돈을 건네받아 1심에서 징역3년 집유 5년, 3사 7기 출신인 백00 준장(51·전 근무지원단장)도 서씨로부터 3600만원을 받아 1심에서 징역2년 집유 4년, 항소심에서 선고유예를 선고받아 군복을 벗었다.

지난해 4월 육군 중앙수사단이 진급 청탁 명목으로 부하 장교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육군본부 감찰감인 유00 준장(1심에서 징역 3년 집유 5년, 항소심 기각)을 구속했는데, 그 역시 3사 5기 출신이다.

반면 군사법은 육사 출신에는 관대했다.

"국방회관 사건과 흡사한 육군 복지단(육군회관)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가에 대해 주목했습니다. 3사 출신들을 모조리 사법처리한 것처럼 육사 출신도 비슷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하지만 '역시나'였습니다."

군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두 개의 사건은 복지회관의 수익금을 횡령해 착복하거나, 상납하는 불법 사실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사법처리 결과만을 놓고 볼 때는 천양지차다.

즉 육군복지단의 회관장이었던 성00 전 원사는 지난해 9월 육군복지단 운영 수익금 5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뒤 사법처리됐지만, 성 원사의 '횡령'을 사실상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았던 김00 준장(전 복지단장)에 대해선 민간 검찰로 사건을 이관했고, 그 뒤 후임으로 재임한 정00 준장은 경고, 최00 준장은 무혐의, 이00 준장에게는 벌금형이 선고됐다.

김00 준장은 육사 29기, 나머지 3명의 장성은 육사 31기였다.

군사법의 '칼', 육사 출신은 비껴가다

이같은 예는 부지기수다. 가령 육사 36기인 김창해(49) 국방부 전 법무관리관은 지난 2000년 4월부터 2년여동안 육군본부 법무감으로 재임시에 군검찰 수사관들의 통장을 만들어 총 1억여원의 활동비를 통장에 예치시킨 뒤 수사관들도 모르게 다시 빼낸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그를 보직해임하는 데 그쳤다.

당시 김 전 법무관리관과 함께 전역한 이정 국방부합동조사단장(소장)은 육사29기, 이길재 육군 헌병감(준장)은 육사 31기였다. 이들은 지난 2000년 봄부터 2003년 4월까지 육군 헌병감으로 재직하면서 '군무이탈(탈영) 체포조'에게 주는 활동비를 수 억원 유용했다는 혐의로 당국으로부터 내사를 받다가 군복만 벗는 것으로 사법처리를 사실상 면죄받았다. 심지어 국방부는 이들을 '명예전역' 조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반대 여론에 밀려 이같은 시도는 실패했다.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지난해 9월 소위 '국군체육부대 사건'을 발표한 바 있다. 전-현직 부대장인 2명의 현역 장성과 전 예비역 준장을 외부 지원금 수천만원 횡령 혐의로 보직해임 및 불구속입건했으며, 같은 혐의로 전직 부대장인 예비역 준장의 사건 기록을 경찰에 넘겼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각각 벌금 500만원, 300만원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한명에 대해서는 기소유예했다. 이 사건에 연루됐던 장성인 이00 소장은 육사28기, 윤00 준장은 육사 28기. 허00 준장은 육사 29기였다.

징역 5년형과 벌금형의 기준은?

'육사냐, 비육사냐', 즉 피의자의 출신학교가 사법처리의 판단 기준이 되는 군사법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법정의의 형평성은 무력화된 지 오래다.

이와 관련 군의 한 관계자는 자조섞인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일순 대장(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육사 26기)은 1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김근태 소장(전1군단 부군단장·3사 2기)은 부하직원으로부터 7600만원을 받아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신 대장은 육사 26기, 김 소장은 3사 2기입니다. 이 두 개의 사건을 담당한 주심 군판사는 문00씨였습니다. 그가 징역 5년형과 벌금형을 선고한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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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사정기관장 '육사'가 독식
출신별 '사법 차별'이 존재하는 이유

우리 군의 사정기관의 수뇌인 국방부 합동조사단장, 기무사령관, 국방부 법무관리관 자리는 거의 육사출신이 차지했다.

헌병의 최고위직인 역대 합조단장은 육사 출신 일색이다. 현재의 한성동 합조단장 육사 31기, 34대 이정 전 단장 육사 29기, 33대 유외수 전 단장 육사 29기, 32대 김시천 전 단장 육사28기, 31대 김보영 전 단장 육사 26기다.

기무사령관 역시 육사 출신이 독식해왔다. 가령 DJ 정부 출범 이후에만 보더라도, 이남신(육사 23기), 김필수(육사 26기), 문두식(육사 27기), 송영근(육사 27기) 사령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군 법무수뇌인 법무관리관의 경우 현재의 박주범 준장은 법무관 출신이지만, 지난 92년부터 박정근(육사22기), 이상도(육사 22기), 이민재(육사27기), 김창해(육사 36기)씨 등 육사가 독차지해왔다.

군의 한 관계자는 "이민재씨와 김창해씨 사이에 법무관 출신인 박선기, 김진섭씨가 2년여동안 법무관리관을 역임했지만, 당시 법무관리관을 역임할 육사 출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면서 "육사 출신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가 임명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군 사정기관장의 육사 인맥은 군 수사의 특수성과 결합되면서 사법정의를 뒤흔들 지경이다. '육사 출신 감싸기'로 나타나는 것이다.

가령 한 예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국무총리실은 지난 2002년 10월경 당시 국방부 법무관리관이었던 김00씨(예비역 준장)에 대해 개인 횡령 등의 혐의로 1달여간 내사한 보고서를 작성해 국방부 등에 전달했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이 문건을 단독 입수해 보도한 바 있다.

'비위 자료'라는 제목의 이 문건에는 김씨의 횡령 혐의 이외에도 직권남용 의혹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00 중령의 군용물 횡령사건 및 폭력사건에 대한 개입 김00는 육군 법무감으로 취임해 당시 이 사건을 맡고 있던 항소심 검찰관에게 서00(김00의 육사동기)에게 유리하도록 공소장을 변경하도록 지시하였으나 말을 듣지 않자 군판사 김00에게 지시하여 군용물 횡령 부분을 공소기각 판결하도록 하였음. 이후 검찰관이 상고하려고 하자 김00는 결재를 거부하였음. 한편 서00는 이후 부녀자를 때리는 폭행사건으로 입건되었으나 김00가 지시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받도록 해줌."

국방부보통검찰부는 이와관련 지난해 2월 김 전 법무관리관을 업무상 횡령과 직권남용 혐의로 조사한 바 있다. 하지만 보통검찰부는 서00 중령 사건과 관련해 "공소기각 판결을 검토한 결과 공소사실의 특정이 미흡하다"는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리했다. 당시 보통검찰부를 지휘하는 자리였던 법무관리관은 김00 준장이었다.

군 사정의 수뇌들이 '육사' 출신 일색인 현상과 관련, 지난 2001년 인터넷에 육군의 불합리한 진급인사의 실상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보직해임당한 차원양 한양대 교수(예비역 육군소장)는 "군의 사정 수뇌 뿐만 아니라 지휘관 확인권과 심판관제도 등으로 군의 사법판단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단장급 이상 지휘관의 85%정도가 육사 출신이다"라면서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군의 상층부가 대부분 육사 출신인 상황에서 사법 판단 역시 후배들에게 관대하게 적용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재 군 장교중 매년 임관하는 육사 출신은 250여명, 비육사 출신은 3000-4000여명에 달하는 데, 대령급부터는 비육사의 비율이 현격히 줄어든다"면서 "'육군대장 6명중 1명만 비육사', '군단장 12명 중 2명만 비육사'라는 공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육사 출신들이 더 이상 양보를 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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