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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의 고통은 정상에 올랐을 때 보상받는다.
오르막의 고통은 정상에 올랐을 때 보상받는다. ⓒ 유신준
오르막이 계속된다. 그리 심한 경사는 아닌데 한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이다. 아침부터 지구전이다. 기어를 낮추고 자세를 조금 높인다. 언덕길을 오르는 전투자세다. 공기저항의 고려가 필요 없는 곳이니 편한 자세 일수록 좋다. 페달링은 적당하게 한다. 페달링이 너무 빠르면 기어 효율이 떨어지고 반대로 너무 느리면 힘이 많이 든다.

기어는 효율이다. 한없이 낮춘다고 해서 쉽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어가 클수록 빨리 갈 수는 있지만 역시 페달링이 힘들어 진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당한 기어비를 찾아야 효율적인 주행이 가능하다. 인생은 적당한 페달링의 조화를 몸에 익혀가는 과정일 것이다.

몇 개의 구불구불한 산모퉁이를 돌아 오르니 드디어 정상이다. 오르막의 고통은 정상에 올랐을 때 충분히 보상을 받는다. 잠시 물병을 꺼내들고 땀을 식히며 정상의 기쁨을 음미한다. 목을 축이노라니 맞은편에서 아침 햇살이 비친다. 이곳이 후쿠오카현과 구마모토현의 경계가 되는 고쿠리(小栗)고개다.

"나는 세상에서 내리막이 제일 좋아"

힘들게 고개를 오르고 정상을 지나면 내리막길의 보너스가 준비돼 있다. 그래서 세상은 살 만 한거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는 법이니. 내리막을 앞서 달리던 그녀가 소릴 지른다.

"나는 세상에서 내리막이 제일 좋아."

이번에는 내리막을 한동안 달렸다.

아무리 길어도 내리막은 잠깐이다. 시간상으로도 그렇겠지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도 오르막의 힘들던 기억이 훨씬 크다. 페달 위에 발만 올려놓은 채 얼마나 신나게 달렸을까. 가다보니 드디어 오른편에 휴게소처럼 생긴 곳이 나타났다.

어제 맘씨 좋은 농기구 수리점 아저씨가 알려주었던 그 미치노에키다. 미치노에키가 어떤곳이냐 하면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휴게소 시설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그 휴게소가 일반도로에 군데군데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 다르다.

미치노에키는 도로여행자의 편의를 위한 휴식공간이다. 규슈지역에만 92개소가 등록돼있으며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곳에는 24시간 이용이 가능하도록 개방된 공중화장실과 휴게실, 공중전화, 주차장 등이 있다. 주로 여행자를 위한 휴식 공간 기능을 하지만 자동차의 접근성을 이용하여 지역특산품도 팔고 있는 곳. 물론 식당과 찻집도 구비되어 있다.

도로여행자의 편의를 위한 휴식공간 미치노에키
도로여행자의 편의를 위한 휴식공간 미치노에키 ⓒ 유신준
길옆 넓은 장소에 여러 개의 건물이 조화롭게 서있는데 한 건물에 고쿠리간(小栗館)이라고 써있다. 고개이름도 그렇고 이곳 지명이 고쿠리인 모양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텐트치기 좋은 곳들이 눈에 띈다. 어젯밤 도착했더라면 참 좋았을 환경이다. 밤새 고생한 덕에 텐트치기 좋은 자리만 눈에 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침밥을 먹을 곳이 없느냐고 물었다. 식당의 개점시간은 멀었고 아마 가게에 도시락이 있을 거란다. 알려준 가게에 들르니 야채와 과일을 주로 팔고 있는 곳이다. 아침시장 같은 곳이어서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우리도 거기 끼었다.

도시락코너에는 맛있게 생긴 갖가지 도시락이 즐비하다. 우선 종류대로 다섯 개를 샀다. 아무리 일본 도시락이 작다고 하지만 둘이서 다섯 개는 너무한 것 아니냐고? 그건 배고파 봐야 아는 거다. 내가 더 사려는 걸 아내가 말려서 다섯 개 정도로 합의를 본 거니까.

물론 배도 고팠을 테지만 세상에서 그렇게 맛있는 도시락은 처음이다. 내가 연거푸 세 개를 비워버렸고 아내가 하나 반을 비웠다. 맛있는 도시락이니 참으로 먹자며 두개를 더 구입해 배낭 속에 넣어 두었다. 엊저녁 맛없는 도시락이 생각나서다. 여행자는 가능할 때 비축해둬야 한다는 지혜를 경험을 통해 몸으로 터득한 셈이다.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도시락은 처음이다.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도시락은 처음이다. ⓒ 유신준
배를 채우고 나니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훌륭한 시설들이다. 물건을 파는 직원에게 어떻게 운영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처음 지을 때는 제3섹터로 자치단체와 민간이 공동 투자하여 설립 운영했다고 한다.

그후 경영의 어려움으로 인해 지금은 순수민간경영으로 바뀌었단다. 미치노에키는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일거라고 한다. 민간경영으로 바뀐 후는 제3섹터 경영 때보다 훨씬 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쉬는 참에 햇볕 좋은 주차장 한편을 골라 텐트를 펴서 말렸다. 습기에 아침이슬까지 젖은 걸 그냥 둘둘 말아 가져왔더니 쥐어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듯 하다. 깔개며 침낭도 바람을 쐬어 주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속도 모르고 어제 여기서 잤느냐며 부럽다고 한마디한다. 한시간쯤 실컷 뒹굴거리다가 야마가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역시 국도3호선을 타고 가는 중이다.

한낮이 되니 한결 햇볕이 따갑다. 어젯밤 잠을 설쳐 컨디션도 엉망인데 한낮 더위까지 길을 가로막는다. 일본 도착 첫날 비를 맞으며 얼마나 그리워하던 햇볕이었나. 하룻사이에 오늘 햇볕은 참 고약하기만 하다. 인간의 마음이란 왜 이리 간사한 것인지.

야마가(山鹿)를 얼마간 앞두고 구마이리(熊入)온천이라는 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여행 지속의 열쇠를 거머쥐고 있는 파트너가 다운 일보직전이다. 온천 앞에 수도꼭지가 하나 있고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이 온천의 물이 유명하여 멀리서 자동차로 와서 떠가려는 사람들이란다. 마셔보니 약간 미지근한 물이 뒷맛이 참 좋다. 목마른 참에 연거푸 몇 컵을 들이켰다.

옥천욕으로 피로를 풀다

어디서나 텐트만 펼치면 쉬어갈 수 있다는 것이 텐트여행의 장점이다.
어디서나 텐트만 펼치면 쉬어갈 수 있다는 것이 텐트여행의 장점이다. ⓒ 유신준
쉬는 동안 온천욕을 하기로 하고 150엔의 입장료를 냈다. 상당히 싼 편이다. 다른 곳은 대개 300엔에서 500엔 정도까지 하는데. 입욕객들은 대개 노인들이다. 낮 시간대라서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다. 미지근한 물에 몸을 담근다. 어젯밤 잠을 설친 피로가 풀리는 듯 기분이 좋아진다. 물을 만져보니 비누칠이라도 한 것처럼 미끄러운 느낌이다. 안에도 수도꼭지가 있어 어디서든 온천물을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목욕을 마치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노인 단체손님들이 큰 방에 모여 가라오케를 즐기고 있다. 노인들이 많은 곳, 장수국가 일본이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이곳뿐만이 아니다. 택시운전사들도 노인이고 청소하는 사람들조차 노인이 많다. 일하는 젊은 사람들이 없어 국가의 걱정거리가 커지고 있는 나라. 장수국가가 단순히 축복만이 아닌 셈이다.

관리하는 분이 다가와 물병이 없으면 하나 줄테니 물을 떠가란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아침에 마시면 물맛이 더 좋다는 설명까지 곁들이며. 어차피 자전거 물병의 물도 떨어졌고 고맙게 받아서 한 병을 가득 채웠다. 밖에 나와 나무그늘에 텐트를 펴놓고 잠시 쉬다가 다시 구마모토를 향해 출발했다.

한낮 더위는 역시 견디기 힘들다.
한낮 더위는 역시 견디기 힘들다. ⓒ 유신준
야마가 시내 풍경이 이어진다. 오래된 소도시라서 전통적인 일본집들이 눈에 띈다. 집들은 낡았어도 깔끔한 인상이다. 야마가에서 구마모토까지 구간은 다른 길로 가고 싶다. 대형차량 때문에 피곤한 국도3호선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내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다른 길을 물어봤다. 지방도가 있기는 한데 한참 돌아가야 한단다. 거리만 더 늘어날 뿐 그곳의 차량통행도 만만치 않을 거란다.

할 수 없이 국도 3호선을 계속 타기로 했다. 다행히 야마가 시내를 벗어나면서 시원하게 뚫린 자전거도로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우리가 달려온 길은 주로 갓길이었다. 인도를 겸하는 자전거도로가 들쑥날쑥해 달리는데 불편해서 어쩔수 없이 갓길로 달려온 것이다.

오랜만에 훤히 뚫린 자전거길을 보니 반가웠다. 달리면서 살펴보니 어떤 곳은 차도보다 넓어 보이는 곳도 있다. 자전거 길은 훌륭한데 한낮 더위는 역시 견디기 힘들다.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날씨가 더운 탓에 구마이리에서 얻어 온 물병이 바닥났다. 다행히 구마모토 초입까지는 큰 오르막이 없이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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