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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깃든 음식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추억이 깃든 음식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 유신준
저녁때가 거의 된 것 같아 옛날 생각도 할 겸 그 초밥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변한 게 별로 없다. 옛날 우리가 앉았던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없어 원하는 걸 주문해야 먹을 수 있단다. 몇 가지를 주문해 놓고 앉아 있으려니 옛날 추억이 새롭다. 아내도 모든 게 옛날 그대로 라며 감개가 무량한 얼굴이다.

음식 맛처럼 원초적인 추억이 있을까. 추억이 깃든 음식은 잊히지 않는 법이다. 언젠가 다누시마루의 다카야마씨가 초밥을 사준 적이 있다. 아내가 초밥을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회전 초밥집의 초밥은 초밥도 아니라며 일부러 비싼 초밥 전문점으로 우리를 데려갔었다.

다카야마씨가 주문한 초밥이 화사하게 장식이 되어 나왔다. 몇 개를 먹다 보니 내색은 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이곳의 100엔짜리 초밥보다 맛이 덜했다. 입맛이 무슨 가격을 따지겠는가. 추억이 깃든 음식은 몸보다 마음으로 먼저 느끼는 것인걸.

날이 저물기 시작하여 이미 알아두었던 길을 따라 다츠다 자연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초입에서 국제전화가 가능한 공중전화를 발견하고 한국에 전화를 했다. 태풍 때문에 걱정들 하고 있었던 듯. 몇 군데 전화를 하느라 날이 더 어두워졌다.

그렇게 당하고 나서도 텐트를 치기 위해서는 날이 어두워지면 안 된다는 조언을 늘 잊는다. 자연공원이라는 말에 근사한 캠핑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아내나 나나 좀 느긋하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정해져 있는 자리가 있을 것이니 서두르지 않아도 될 거라고.

정원 입구의 하마비. 우리는 이미 자전거에서 내렸다.
정원 입구의 하마비. 우리는 이미 자전거에서 내렸다. ⓒ 유신준
자연공원에 도착해보니, 아뿔싸 육중한 출입문이 닫혀버렸다. 밤에는 운영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여유를 부리면 늘 이 모양이다. 또 다급해졌다. 공원입구 이곳저곳을 돌아보다가 다른 출입구가 하나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곳 역시 육중한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다.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그곳 정문 한쪽 구석에 용무가 있는 분은 인터폰을 누르라는 안내판을 발견했다. 급하기는 하고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다. 인터폰을 길게 눌렀다.

직원인 듯한 젊은 여자목소리가 들린다. 한국에서 건너와서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는데 날이 어두워져서 텐트를 칠 장소를 찾고 있노라며 좀 도와달라고 말했다. 잠시 기다리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육중한 정문이 스르르 열린다. 안에서 관리인인 듯한 나이가 든 남자가 나오더니 이곳은 호소카와 전 총리의 별장이라며 텐트를 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다.

낙담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아까 인터폰에서 들렸던 젊은 여자목소리가 들린다. 정원에 텐트 칠 곳을 만들어 주란다. 관리인이 그 여자가 호소카와 전 총리의 딸이라고 소개한다. 일본의 총리가 누군가.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의 총리와 위상이 다르다. 천황이야 이미 상징적인 존재고 의원내각제 하의 일본 총리는 권력의 정점에 해당하는 자리가 아닌가.

그 여자의 지시에 따라 정원 한쪽으로 안내되고, 우리가 텐트 칠 자리에 고풍스런 등도 마련되었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있는데 그 여자가 다가오더니 자신은 유우코라며 저녁은 먹었느냐고 묻는다. 먹고 왔다고 말하자 화장실은 손님용 별채의 것을 쓰라며 손수 안내해준다.

안내해 준 곳에서 세수를 마치고 나오니 도쿄에서 놀러 온 친구들을 서너 사람 소개해준다. 그들은 궁금한 듯 자전거여행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다. 내가 이곳에 들어오게 된 정황까지 설명해주자 행운이란다.

친절한 호소카와 총리의 딸 유우코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더러 뜻하지 않았던 행운을 만나기도 하는 법인가 보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더러 뜻하지 않았던 행운을 만나기도 하는 법인가 보다. ⓒ 유신준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높은 담으로 둘러쳐진 곳이라서 그런지 아늑하고 푸근하다. 아마 보호받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밖에는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다. 텐트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는데 다시 유우코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를 온천에 데려가고 싶다는 것이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가니 차에 시동을 켜놓고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은 모두 다른 차에 타고 유우코의 차에는 우리 부부만 태웠다. 온천까지 가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이것저것 묻는다. 거침없이 명랑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다. 서른 살이나 먹었었다는 처녀가 좀 점잔을 뺄 법도 한데 그런 게 없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좋은 환경에서 참 밝게 자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 도중에 유우코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주말에 이곳 별장에서 300명 정도 손님을 초청해 파티를 열 거란다. 그 파티를 도와주기 위해 내일 도쿄에서 친구들이 많이 오기로 했는데, 아소산에 경치가 기가 막힌 곳에 모이기로 했다면서 우리도 합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그곳에서 놀다가 저녁에나 이곳 별장에 돌아올 예정이라며, 가능하다면 내일 아침 10시까지 아까 차가 있던 곳으로 나오란다. 아침에 출발하기 전 살고 있는 별장도 이곳저곳 소개해 주겠단다. 아내에게 유우코가 한 말을 설명해주고 생각해보자고 했다.

유우코가 안내한 온천에 들어갔다. 훌륭한 시설이다. 프런트에서 열쇠를 받아들고 한 시간쯤 후에 만날 약속을 하고 조금 불안해하는 아내와 헤어졌다. 언어가 자유롭지 못하니 그도 그럴 것이, 상황을 눈치 챈 유우코가 자기들이 잘 돌봐 줄 테니 걱정하지 말란다.

남탕 쪽에서 옷을 넣기 위해 수납함을 찾았다. 옆에 있던 사람이 내가 가지고 있는 열쇠를 보더니 이곳이 아니라고 한다. 그 사람이 가리켜 준 곳은 귀빈실. 옷을 벗어놓고 뜨끈한 탕 속에 몸을 담그고 누워있으니 한결 기분이 좋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행운도 다 만나는구나.

다츠다 자연공원

▲ 다츠다 자연공원 안에 있는 다실 고쇼켄(仰松軒)
다츠다(立田) 자연공원은 옛날 구마모토의 영주 호소카와(細川)가의 영지였던 곳이다.

노목으로 둘러싸인 숲 속에 조상대대의 묘가 있는 절로 건립된 다이쇼지(泰勝寺)가 있고, 무인이면서 다도에서도 일본 국내 제일이라던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의 다실 고쇼켄(仰松軒)이 있다.

뜰 안에는 일세를 풍미했던 영웅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공양탑도 볼 수 있다. 시설들은 국가 및 현의 명승,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구마모토 대학 북서부에 있는 다츠다야마 산기슭에 있는 이곳은, 1955년부터 호소카와가에서 구마모토 시에 대여해 다츠다 자연공원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조용하고 아취 있는 시민 휴식장소로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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