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면 고생이다.
처음에 규슈 자전거여행계획을 세울 때 나이 오십을 목전에 두고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행을 끝내고 나니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 왜 사서 고생을 할까. 여행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행은 즐거운 고생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사람을 만나 그들과 교류하는 것이었다. 아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생면부지의 모르는 사람들과도 만나 소통하고 함께 어우러지고 싶었다. 자전거로 하는 느린 여행이라면 그런 것들이 가능할 것 같았다.
농가주변의 한적한 길가에 텐트를 쳐놓고 그곳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사람을 만나며 한동안 시간을 잊고 느긋하게 여행해보고 싶었다. 현실을 무시한 낭만적인 생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자전거 여행이라는 것이 그런 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던가.
여행으로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리셋' 시키다
여행하려면 자유로워야 한다. 시간에 쫓기는 약속 같은 건 만들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국도 3호선을 타느라 한적한 길들은 만나보지도 못했고 아는 사람들과의 일정 때문에 늘 길을 서둘렀다. 여행계획을 지키겠다며 좋은 인연들을 바보처럼 거절해 버리기도 했다.
느긋한 여행을 꿈꿨지만 계획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마음먹은 대로 간 길보다 옆으로 빠진 샛길 투성이의 여행이었다. 그러나 어떠랴. 지나고나니 좋은 여행이었는걸. 시고 떫은 포도가 효소와 어우러져 맛있는 포도주가 되듯, 괴롭고 힘든 기억들도 지나고 나면 즐거운 추억으로 숙성되는 법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효과를 본 것은 아내의 건강이다. 나는 늘 자전거를 타는 편이라 그런지 좀 피곤하다는 것 이외에는 잘 알지 못하겠는데 아내 몸은 자전거여행이 제대로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열흘간 고생은 했지만 그 덕분에 아랫배가 쏙 들어갔다고 싱글벙글이다.
그동안 변비로 고생을 했는데 변비까지 사라져 몸이 날아갈 것 같단다. 긴 자전거 여행이 몸을 자극해 건강까지 다듬는 계기가 된 모양이다. 그녀는 이번 여행으로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리셋'시킨 셈이니 더욱 값진 자전거여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면 자기를 꼭 데려가 달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사귐은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서로 진심으로 다가서는 일
아내는 곧 김장철이 되면 일본의 두 식구를 초청하여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주고 김치를 한 동이씩 챙겨 줄 계획을 세웠다. 워낙 김치를 좋아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렇게 오가며 생활을 교류하는 것이 더 오래도록 가깝게 지내는 길이라 생각해서다.
일본의 두 분과 교류해오는 동안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의 사귐이란 서로 마음을 열고 만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서로 진심으로 다가서는 일이며, 편견을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두터운 국경의 벽을 쉽게 넘도록 했을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일본은 한반도의 이웃이다. 설령 지구가 지각변동을 일으켜 천지가 개벽된다 해도 근처 어딘가에 붙어있게 될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이 아니어도 어떻게든 이웃과는 잘 지내야 하는 것이 사람 사는 도리 아니겠는가.
이웃해서 서로 부대끼고 살다보면 더러 상처가 생기는 법이다. 말과 문화가 다른 나라니 서로 오해가 많은 것도 당연하다. 되도록 많이 건너가고 많이 건너 올 일이다. 서로 오가는 사이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면서 오해들이 하나씩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일상을 훌훌 털고 떠나보시라
교류는 마음이 없으면 이어지지 않는다. 다까야마씨의 아들 슈사쿠가 자전거 여행을 오고 우리 아들이 또 그쪽으로 여행을 가고 인연이 인연 만들며 좋은 사귐이 계속되길 바란다. 이런 교류가 아들들에게도 또 그 아들들에게까지도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자전거가 좋아지면서 언젠가 일본땅을 일주해보리라 계획을 세웠었다. 이번 여행이 그 시험 무대인 셈이었다. 정년 후에나 가능한 꿈일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건너 갈 것이다. 미지의 땅 어디선가 자전거가 맺어줄 좋은 인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즐거운 희망으로.
여행은 즐거움이다. 대지를 깨우는 봄비처럼 삶을 싱싱하게 만들어주는 보약 같은 것이다. 그동안 한 푼이라도 더 싼 주유소를 찾아다니며 포인트를 모으느라 수고한 자신들의 일상에 바치는 한 송이 꽃 같은 것이다. 이제 일상을 훌훌 털고 떠나보시라. 가서 만나고 느끼고 즐겨보시라.
| | 새벽마다 벅찬 작업이었습니다 | | | | 부족한 글임에도 그동안 재미있게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기록해 온 자료가 아무리 많았다 해도 이번 긴 여행기는 저에게 벅찬 작업이었습니다. 댓글로, 쪽지로, 이메일로 격려해주신 그분들의 관심이 없었다면 미숙한 글을 끝까지 쓰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억을 더듬으며 여행기를 이어나갈 때마다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항상 곁을 지켜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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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6년 9월 15일부터 25일까지 떠났던 일본 규슈 자전거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