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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일군 반세기 우리 마음에 닿아 꽃밭이 되었네."

천안문화원 개원 50주년을 맞아 지난 2004년 7월10일 문화원 원내에 세워진 기념비에 새겨진 글귀이다. 반백년 천안문화원 역사를 되새기고 발전을 기원하며 기념비는 세워졌지만 2년여만에 천안문화원은 마음에 닿는 꽃밭은 커녕 악취를 풍기는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두 달여의 시간차를 두고 현직 원장과 사무국장이 모두 검찰에 불구속 기소, 재판을 받게 됐다. 문화원의 주먹구구식 예산집행도 도마위에 올라 검찰마저 문화원 개혁을 언급했을 정도이다. 오랫동안 지역 예술인들과 주민들의 자긍심이 됐던 천안문화원이 지난해 9월부터 만신창이가 되는 동안 문화원 안팎의 정상화 노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결과 발표로 다시 한번 표면화된 천안문화원의 문제점과 과제를 짚어봤다.

▲ 검찰 수사 결과 예산집행의 문제점이 드러난 천안문화원 전경.
ⓒ 윤평호

무분별하고 원칙없는 예산집행

대전지검 천안지청 형사2부(송진섭 부장검사)는 지난 23일 이정우 천안문화원 사무국장의 불구속 기소 기자회견을 가지며 수사 결과 밝혀진 천안문화원의 총체적인 문제점도 거론했다.

지난해 10월17일 천안문화원 사무실과 사무국장의 가택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올해 1월까지 관련자 총 22명을 31회에 걸쳐 소환조사하고 광범위한 계좌추적 작업을 벌인 검찰은 특히 천안문화원의 원칙없는 예산집행을 집중 지적했다.

검찰은 천안문화원의 예산과 천안문화의 집 예산, 각종 행사 관련 예산이 별도 계좌에 의해 관리하고 독립적으로 운용돼야 함에도 천안문화원측이 예산을 임의로 혼용 집행했다고 밝혔다. 수사 결과 다수 예산 집행 항목이 장부에 누락됐다는 사실도 첨부했다.

또한 검찰은 천안문화원이 대관료 수익금 등 공금을 천안문화원 계좌가 아닌 직원 개인 명의 계좌로 다수 개설해 관리하는 등 개인 명의 계좌를 통한 공금 관리의 문제점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천안문화원 예산이 천안문화원과 원장, 직원들 명의 등 총 30여개 계좌로 관리됐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직원 퇴직금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각 직원들 개인 명의 계좌에 매월 퇴직금을 적립해주는 방법으로 관리한 것도 검찰은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검찰은 천안문화원의 근거없는 예산집행으로 화미회 등 특정 단체에 대한 지원을 언급했다. 검찰은 천안문화원이 현재 수강팀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활동비를 지원하지 않으면서 과거 수강생들로 구성된 화미회 등 일부 단체에 대해서만 대관료를 면제해 주고 화미회는 편법을 써가면서까지 활동비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천안시, 흥타령축제 예산 편법 집행

검찰은 이번 수사과정에서 천안흥타령축제 예산의 편법집행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편법집행의 고리는 천안문화원과 천안시간에 형성됐다.

천안시가 흥타령축제를 실질적으로 주최․주관하고 있지만 천안문화원을 주관 단체로 앞세워 축제예산을 편법 처리했다는 것. 천안문화원은 형식적으로는 흥타령축제 주관 단체였지만 사실상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시가 채택한 방식은 감사원의 지적에 위배된 것 뿐만 아니라 경쟁입찰을 회피하고 수의계약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시가 삼거리문화제를 흥타령축제로 개편한 2003년부터 축제 예산을 천안문화원 명의의 계좌를 통해 집행해 오다가 2005년에 감사원으로부터 편법집행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감사원 지적에 따르면 지자체가 주최하는 축제 예산은 '행사지원비' 또는 '행사관련시설비' 과목에 편성해 입찰 등 일반 시 예산 집행 절차를 따라 집행하거나 순수 민간단체에 위탁해 집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시는 지난해에도 종전과 마찬가지로 흥타령축제를 주최․주관하면서 천안문화원 명의의 계좌로 집행했다.

감사원 지적 이후 작년부터 행사를 주관하는 '축제조직위원회' 성격을 순수 민간단체로 바꾸고 지역 단체의 모든 대표에게 위원회 이사가 될 자격을 부여한 부산시 남구청의 사례와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축제예산이 천안문화원을 통해 편법 집행되는 동안 축제 예산은 2003년 3억5000만원, 2004년 5억2000만원, 2005년 10억2000만원, 2006년 9억7000만원으로 최근 4년 동안 2배 이상 급증했다. 천안문화원을 통한 축제예산의 편법집행이 천안시가 3000만원 이상 집행시 강제되는 입찰을 피하고 수의계약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검찰의 판단은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해 12월 천안시의회 행정사무감사자료에 따르면 호서이벤트 커뮤니케이션(총감독 정철상)은 천안흥타령축제 2006 연출용역(1억2070만원), 거리퍼레이드 연출용역(6520만원)을 경쟁입찰없이 수의계약으로 독식했다.

행정사무감사 당시 이명근 천안시의회 의원은 "흥타령축제의 주관단체가 시가 아닌 천안문화원이기 때문에 모든 계약이 수의계약으로 이뤄진다"며 "시가 직접 운영을 맡으면 공개입찰이 이뤄져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천안문화원 안팎, 감시망도 허술

지난해 9월 초 직원들의 줄사표와 원장에 대한 성추행 고소장 제출로 촉발된 천안문화원 사태가 일단 검찰에 의해 원장과 사무국장이 각각 불구속 기소되는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신임 원장 부임 이후 리더십과 업무를 둘러싼 구성원간 해묵은 갈등도 천안문화원 사태를 검찰 수사에 이어 법정 공방까지 비화시키는데 한몫했지만 문화원 안팎의 부실한 감시망 역시 이번 사태의 흐름속에 한계를 역력히 드러냈다.

우선 내부 감시망을 들여다보면 특별법인인 천안문화원은 2명의 감사가 위촉돼 있고 매년 총회에서는 감사보고서가 채택됐다. 2005년, 2006년 총회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틀에 짜인 듯 대부분의 문구가 동일하고 새로운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9월 문화원 사태가 촉발된 뒤 2명 감사가 2006년 9월25일부터 10월18일까지 실시한 특별감사에서 그나마 문화원 예산집행의 문제점을 일부 지적할 수 있었다. 평소의 감사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감사시스템의 허술한 작동에는 문화원 이사회 및 회원들의 책임도 배제할 수 없다. 문화원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불거진 이사 및 회원의 자격시비와 임면절차 논란은 '52년 천안문화원 역사'가 얼마나 과대포장됐는지를 밑바닥까지 드러냈다.

한편 검찰은 현재 시행되고 천안문화원 회계사무처리규정에는 장부관리 및 보존기간 등에 대한 의무조항이 없고 예산집행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며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천안시의 소극적인 대응도 천안문화원 사태를 확산시켰다. 시는 국․도비를 포함해 문화원 예산의 70%에 가까운 재정을 지원하면서도 문화원 사태가 발생하자 내부 문제로 국한시키며 애써 개입을 자제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일각에서는 문화원에 보조된 경비에 대한 시의 감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시는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검찰 수사 결과 흥타령축제 예산의 편법집행 사실이 발표된 후에야 시민들은 문화원 사태에서 시의 대응이 왜 소극적이었는지를 수긍할 수 있었다.

시 관계자는 "올해 축제에서는 흥타령축제의 주관단체가 바뀔 수도 있다"며 천안문화원과의 새로운 역할 정립 추진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 천안시는 '보조금관리조례'에 따라 문화원의 보조금 집행에 관해 감독할 수 있다. 그러나 조례에는 감독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실질적인 감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송진섭 부장검사는 "천안시 보조금관리조례의 내용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417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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