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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문화분야 취재 역시 사람 만나는 게 일의 절반이다. 아직은 순수와 낭만을 가슴에 품고 사는 예술가들이고 보니 취재가 술자리로 이어지는 일이 다반사. 이 기사는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대작(對酌)한 기록인 동시에 한국 문화계에 대한 기자의 인상기다......<편집자 주>

▲ 무대 위에선 사자처럼 포효하는 전인권이지만 그에게도 그늘은 있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많기로 따지자면 가수 전인권은 세상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사람이다.

게다가 그 수식어란 것이 '영원히 늙지 않을 청년' '청춘의 사자후(獅子吼)' 등 대부분 젊음을 지칭하는 것이고 보면 대학에 다니는 딸을 둔 중년의 사내 전인권은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 청춘과 젊음이란 그 어떤 물질적 대가를 치르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것이기에.

불려지는 것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는 아직 청년이다. 수천의 관객이 운집한 무대 위에서 '그것만이 내 세상'과 '돌고 돌고 돌고'를 외치는 전인권을 볼라치면 그의 모습 어디에서도 오십이란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에 봉두난발의 머리칼과 80년대 고등학생 교복풍을 고집하는 독특한 패션 스타일도 고루한 노인네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둘러가지 않는 직설적 화법과 솔직함 역시 전인권을 청년으로 느껴지게 한다. 이러저러한 술자리에서 두어 차례 만난 그는 맥주에 얼음을 섞어 마시는 색다른 주법과 다소 엉뚱해 보이기까지 하는 화법으로 좌중을 웃겼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닌, '말의 맛을 아는' 전인권과의 만남은 비단 기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즐거움이었다.

바로 그 청춘의 힘 탓에 '청년' 전인권의 노래는 관객의 머리가 아닌 심장을 울렸고, 객석에 앉은 사람들로 하여금 노래를 들으며 모골(毛骨)이 송연해지는 희귀한 체험을 하게 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목소리를 무기 삼아 무대 위에서 포효하는 한 마리의 사자. 전인권의 어디에서도 두려움이나 후회 혹은, 망설임 따위의 구질구질한 단어를 읽을 수 없었다. 그는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8월의 태양과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강렬한 빛도 그 이면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법. 전인권 역시 그랬다. 사자와 태양을 닮은 강한 남자의 유약하고, 섬세한 그늘을 본 것은 지난해 늦봄이었다. 14년만에 새 앨범을 준비하는 동시에 자서전 출간을 고민하고 있다는 전인권을 경희대 인근의 한 고깃집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바로 그날. 급하게 주고받은 맥주 두어 병에 취한 그는 마음대로 되어주지 않는 자신의 삶과 무대를 내려온 다음의 외로움을 이야기하며 우울해했다. 저간의 상황은 전혀 고려치 않은 채 자신을 대마초 전과자로만 몰아가는 검찰과 세간의 쑥덕거림에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전인권의 새 노래는 지난 시절 곡들보다 당연히 더 좋아야한다'는 팬들의 크나큰 기대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대학노트를 펼쳐 자신이 쓴 글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웃는 모습. 검은색 선글라스를 벗은 그의 눈동자가 너무나 슬퍼 보였다. 인터뷰가 끝난 후 혼자 쓸쓸히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더 슬펐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청년' 전인권이 그 슬픔을 슬픔만으로 끝내지는 않으리란 것을. 또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온힘을 다해 생을 정면돌파 해온 자만이 진정으로 세상과 삶을 슬퍼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슬픔의 힘으로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노래의 칼날을 벼리는 전인권. 무대 위에 선 그의 포효가 아름다운 진짜 이유는 그 속에 진실한 슬픔이 녹아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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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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