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효순이·미선이' 촛불기념비 전격철거

2일 오전 종로구청서... 여중생범대위·구청 면담 성과 없이 끝나

등록 2004.01.02 14:31수정 2004.01.0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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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종로구청측이 기습적으로 철거한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앞 '효순이·미선이' 추모 촛불기념비 자리의 보도블럭이 부서져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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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가 세워졌던 자리 주변 나무에는 '여중생촛불기념비는 2004.1.2(금) 08:30 종로구청에서 철거하여 청운동 창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져 있다.


[기사대체 : 2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네거리 교보문고옆 도로에 세워진 '효순이·미선이' 추모 촛불기념비가 종로구청에 의해 2일(금) 오전 8시 30분 전격철거됐다. 보수진영에서 기념비가 불법건조물이라며 철거를 요구해 그간 철거여부를 놓고 더러 논란이 돼 오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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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기념비는 '6·13 효순, 미선 1주기 추모대회 국민준비위원회'가 지난 6월 13일 효순·미선양의 1주기를 기리기 위해 국민의 성금을 모아 광화문 교보문고 옆 인도에 세웠다. 사진은 지난 7월 훼손 사건 이후 복원된 기념비 옆을 지키고 있는 신한얼군.

정식명칭이 '자주·평화 촛불기념비'인 이 기념비는 여중생범대위가 효순이와 미선이의 1주기를 맞아 지난해 6월 13일 설치한 화강암 재질의 조형물로, 자주와 평화를 상징하는 촛불과 비둘기로 형상화 돼 있다.

기념비 철거와 관련, 여중생 범대위측은 2일 "사전에 종로구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고 밝혔다. 채희병 여중생범대위 사무국장은 "진위 확인과 추모비 원상 복구를 요구하기 위해 종로구청을 항의 방문하고 있다"며 "철거되었다고 해도 우리는 다시 기념비를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마이뉴스>에 이같은 사실을 제보해온 시민 김진웅씨는 "출근길에 종로구라고 쓰여 있는 용달차와 함께 온 10여 명의 사람들이 촛불시위기념비를 철거하는 것을 보았다"며 "아침부터 그 광경을 보니 정말 기분나쁘다"고 말했다.

이 기념비는 지난해 7월11일 누군가에 의해 훼손됐으나 같은 달 26일 가로95㎝, 세로55㎝, 높이195㎝ 크기로 다시 설치됐다.

여중생 범대위와 종로구청 면담 성과 없이 끝나

한편 촛불기념비 철거와 관련, 2일 오후 여중생 범대위 관계자가 종로구청 관계자를 면담했으나 양측의 입장 차가 뚜렷해 별다른 성과는 내지는 못했다. 이날 오후 2시 40분부터 약 30분간 진행된 면담에서 여중생범대위는 구청측에 기념비의 즉각 원상복구와 대체부지 마련을 촉구했다.

추모비가 사라진 교보문고 앞 풍경

2일 오후 4시 광화문 교보문고 앞. 이곳은 이날 오전 8시 30분까지만 해도 ‘효순이·미선이 촛불기념비’가 있던 곳이다. 게다가 지난 12월 31일에는 이 앞에서 효순이·미선이를 추모하며 '2003 반전평화 송년결의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는 콘크리트 부스러기만 바람에 날릴 뿐 이전의 추모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곳에 기념비가 있었다는 것은 그저 파헤쳐진 보도 블록과 가로수에 붙어있는 안내문 정도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버린 까닭일까. 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도 기념비가 있던 자리 옆에 있는 은행나무에 붙어있는 철거 안내문을 유심히 살펴보는 이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만 교보문고에 책을 사러 왔다는 고등학생 김지영(18·순화동)씨 정도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와서 촛불시위에 참가했는데 오늘 이렇게 사라져버린 것을 보니 너무 허탈하다”며 아쉬워했다. / 권기봉 기자
면담에 참석했던 이관복 범대위 공동대표는 “이전에 자진철거 요청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은 어떤 통보도 받은 바 없다”며 “그동안 종로구청과 대체부지 마련 등을 위해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충용 종로구청장은 “기념비가 도로법을 위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거를 해달라는 시민들의 민원이 많아 어쩔 수 없었다”며 “이미 7~8회에 걸쳐 자진철거를 요청하는 등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주었다”고 철거 이유를 설명했다.

종로구청 건설관리과 관계자는 이어 “앞으로는 이런 것을 세우지 않겠다는 자인서를 제출하고 5만 원의 과태료를 내면 잔해를 돌려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채희병 범대위 사무국장은 “자인서를 쓸 수 없다”며 “우리는 다시 기념비를 세우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철거된 기념비는 청운동 불법적치물 보관소에 보관됐으며, 여중생 범대위 공동대표 16인 전원은 도로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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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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