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다 버리지 못한 마음의 짐, 여기서만큼은….

[천진난만하게JH, 산티아고 가는 길 26] 레온에서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까지

등록 2007.12.24 10:25수정 2007.12.2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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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메마른 나무를 지나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가는 길

메마른 나무를 지나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가는 길 ⓒ JH


2007년 7월 13일 금요일, 날씨 너무 맑음, 순례 21일째.
레온에서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까지, 37.5km.
오전 7시 출발, 오후 5시 도착.


밤새도록 보아구렁이의 심정이 되어 짓누르는 위장의 고통 속에서 아침만을 기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어떤 것들이 나올까 호기심 반, 아침은 먹어야지 하는 의무감 반으로 여섯 시가 되자 후다닥 짐을 챙겨 숙소의 아침식사를 맛보러 갔다.


이미 식당을 가득 메운 순례자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어깨를 부딪히며 아침을 들고 있었다. 주전자에 담긴 커피와 우유를 컵에 따라들고 빈 자리에 앉았다. 몇 개의 잼 통과 마리아라고 불리는 동그란 비스킷이 수북하게 담긴 통, 그리고 바닥을 드러내는 빵바구니가 보였다.

성호를 긋고 빵에 잼을 발라 입에 넣었다. 꼭 가방에 이틀쯤 넣어놓은 듯한 빵의 촉감이었다. 그 사이 숙소의 오스피탈레라는 빵이 담긴 흰 비닐을 들고 와 바구니를 채워주며 ‘더 먹으라’는 듯 권한다.

페페 할아버지네 집을 떠올리며 집어든 비스킷은 베어 문 순간 물렁물렁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저 감사히, 열심히 먹어두었다. 갈수록 음식에 대한 생각, 혹은 집착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순간 과거의 어느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아직은 뚜렷하게 알 수 없었다.

시원스러운 청색 탑을 입은 미도리씨와 숙소 대문에서 만났다. 나는 긴 팔 셔츠 위에 얇은 바람막이를 걸치고도 바들바들 떨며 “춥지 않아요?” 했더니 어제 살 만한 옷을 구하지 못해 그냥 출발하기로 했단다. “걷게 되면 금방 더워지니까 괜찮을 거예요” 한 마디를 건네며 걷기 시작했다.

a 신발마저 벗어놓고 순례자동상, 레온에서

신발마저 벗어놓고 순례자동상, 레온에서 ⓒ JH


어젯밤 집이며 모든 전화들이 통화중이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아침부터 발걸음이 편치 않았다. 길가에 서 있는 공중전화 박스 몇 개를 지나친다. 이곳을 지나면 전화하는 것이 편치 않을 것이다…. 어쩌면 어제의 불통 신호가 진절머리 나도록 익숙한 기억을 불러일으켰나보다.


“전화 좀 하고 갈게요. 먼저 가세요. 따라잡을게요.”

박스에 지팡이를 기대고 주머니에서 전화카드를 꺼냈다. 처음엔 한 자씩 확인하며 꾹꾹 눌렀던 스페인 접속번호도 이쯤 되면 술술 눌린다. 이상하게 손이 떨리는 것은 날씨가 추워서일 것이다. 한여름답지 않은 서늘함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신호가 걸린다. 불안했던 마음이 날카로운 목소리가 되어 내뱉어진다.


“여보세요? 또 무슨 일 났어요? 어제 전화도 다 안 받고.”
“그랬냐? 어제 전화하고 깜빡 놔두고 잤나보다.”

무덤덤한 낮 한가운데의 반대편 세상은 그 동안 아무 일 없었다고 한다. 어쩌면 항상 그래왔는지 모른다. 사실은 아무 일도 아니었는데, 혼자서 걱정과 불안을 움켜쥐고 놓지를 못한다. ‘많은 것이 변했다’고 되뇌이지만 길 위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은 여전하다. 어쨌든 한국은 ‘OK'라고 하니, 지금부터는 치워버려도 될 상상들이다.

a 레온을 빠져나가며 아침햇살에 비친 고건축물

레온을 빠져나가며 아침햇살에 비친 고건축물 ⓒ JH


레온은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복잡하게 엮인 길들 가운데 노란 화살표를 찾기 위해 온 신경을 기울이느라 벌써부터 피곤하다. 눈에 들어온 'Santiago'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성당에 들어가 짐을 풀고 숨을 돌렸다. 문득 맨몸으로 출발한 것이 기억나 성당 구석에서 선크림 튜브를 짜며 온 몸 드러난 곳에 발랐다. ‘이 정도는 귀엽게 봐주세요’ 하며 제대에 고개를 꾸벅 하고는 길을 나섰다.

어제 저녁, 미도리씨의 가이드북과 다른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에서 목적지까지 이어지는 길은 두 갈래였다. 첫 번째는 약 20킬로미터 떨어진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Villadangos del Paramo)'를 경유한 후 12킬로미터를 더 걸어 목적지인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Hospital de Órbigo)'까지 도로를 따라 걷는 총 32킬로미터 구간, 두 번째는 도로를 벗어나 평야를 걷는 길로 중간에 ‘비야 데 마자리페(Villar de Mazarife)'를 경유하는 총거리 약 38킬로미터의 구간이라고 한다.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던 브리짓 아줌마는 “될 수 있다면 돌아가더라도 찻길보다는 흙길이 좋겠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도 괜찮겠다며 끄덕거렸지만 같은 곳을 빙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리하여 미도리씨와 고개를 맞대고 계획한 대로라면 오늘은 총 32킬로미터를 걷게 된다. 평균을 넘기는 약간 버거운 수준이지만 그동안 많이 쉬었으니 나쁘지 않은 거리이다.

마음을 다잡고 레온 시의 끄트머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스팔트 위로 정신 사납게 사방을 가리키는 노란화살표들을 따라가다 곧 길이 꼬였다. 도로 위를 걷던 내 머리 위로 트럭들이 질주하고 어느새 나는 흙길을 따라 S자를 그리며 걷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도 잠시, 멀리서 배낭을 맨 순례자들이 보이자 어쨌든 맞는 길이겠지 하며 그들을 부지런히 쫓았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나는 ‘전혀 생각에 없던’ 제 2안의 길 위에 서 있었다. 도로를 따라 걸으며 무시무시한 트럭에 쫓기듯 걷는 것에 지친 터라 차라리 잘됐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마을의 수도에서 물을 채우고 계속 걸었다. 메세타를 통과할 때는 ‘이 나라의 산들이 다 같이 도망이라도 갔나’ 싶을 정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 그리고 평지였기 때문에 오래간만에 멀리 드리워진 산맥이 반가웠다. 아마도 며칠 후면 두 발로 올라야 할 곳이리라.

드문드문 순례자들이 점이 되어 걸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진다. 뜬금없이 양떼들이 나타나 뒤꽁무니를 쫓듯 걸었다. 그리고 마치 흔적처럼 바닥에 양털이 떨어져 있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뽀얀 상아색 털이 구름처럼 하나 둘… 정말 구름 같기도 하고 코튼열매 같기도 했다. 바닥에 앉아 만져본 양털은 정말 폭신했다. 그러나 무슨 후환이 생길까 몰라 그 자리에 가만 두고는 걸어갔다.

기생충감염, 혹은 양털벌레, 아니면 저 멀리서 내가 양털을 주머니에 숨기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순례자의 눈 같은 것을 생각하다 문득 눈을 들어보니 그저 하나로 지난하게 이어지는 흙길, 그리고 양편으로는 그저 ‘흰 꽃’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만발했다. 예상치 못했던 길이 안겨주는 선물이었다.

열한 시쯤 중간기착지인 마자리페를 4킬로미터 정도 앞두고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쯤에서 쉬는 것이 좋겠단 생각에 초입의 작은 바에 짐을 풀었다. 화장실에 들른 후 그냥 지나치기엔 미안한 감에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고민하다 페스트리 하나와 ‘콜라카오Cola-cao(따뜻한 우유와 Cola-cao라는 이름의 네스퀵 같은 초코가루 한 봉지가 함께 나오는 음료)’를 골라 노천으로 나왔다. 먼저 도착한 일행과 인사를 건넸다. 로그로뇨와 부르고스에서 만났던 슬로베니아인 마야였다. 이번에는 큰 키의 남자가 일행이 되어있었다. 자리를 잡고 한입 베어 문 페스트리 안에는 잘게 썰린 스페인 햄 하몬이 들어있었다.

숨을 돌리며 무심코 변경된 계획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 펜을 바삐 굴렸다. 정보에 따르자면 앞으로 22킬로미터를 더 걸어야 한다. 4킬로미터를 걸어 마자리페라는 곳에 머물고 말 것인가, 이대로 목적지까지 갈 것인가, 벌써 15킬로미터를 걸었는데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나는 대체 왜 여기에 와 있는 건가, 마음이 무거워지려는 찰나 작은 바에 순례자들이 속속들이 도착한다. 인사를 건네고 그들과 합석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신나게 걷고 들이키는 한 잔 세르베자(생맥주)! 이게 정말 마시고 싶었어.”

캐나다에서 온 일레인은 흰 거품이 탐스러운 맥주를 들이키며 청량한 웃음을 짓는다. 테이블에 나란히 붙어있는 나의 초코우유 잔이 순간 우스우면서도 귀엽게 보였다. “난 여기 올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이 길로 들어와 버렸어” 열심히 계획을 고민 중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하몬 만을 넣은, 정말 맨 빵에 그것뿐이라 보는 것만으로 팍팍함에 목이 막힐 정도였던 보카디요를 물어뜯으며 말한다.

“나는 마자리페에 나처럼 미친 예술가의 집이 있다는 얘길 듣고 거기에 꼭 가보려고 왔지.”

그녀는 ‘미친’을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일레인은 일부러 그 마을을 찾아왔다는데, 비록 잘못 든 셈이지만 두어 시간 더 걷는 정도야 길을 잃은 것도 아니고 나쁘지 않지. 레온에서 통째로 삼켰던 코끼리를 뱃속에 담은 보아구렁이 신세도 면할 겸 오늘은 끝까지 걸어보자.

그녀와의 대화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기분을 바꾸기에 충분할 만큼 유쾌했다. 한 시간 쯤을 그렇게 한담을 주고받다 갈 길이 멀다는 것에 퍼뜩 정신이 들어 부랴부랴 ‘또 만나자’를 외치고 길 위에 올랐다. 어쩐지 부르고스를 떠난 후 달콤한 휴식을 가졌던 ‘타르다호스(Tardajos)’의 작은 바가 기억 속에서 겹쳐졌다.

a 비야 데 마자리페 동네에 걸려진 거대한 조각그림

비야 데 마자리페 동네에 걸려진 거대한 조각그림 ⓒ JH


정확히 한 시간 만에 도착한 ‘비야 데 마자리페(Villar de Mazarife)'는 잘 꾸며진 작은 마을로 순례자 숙소만 세 군데였다. 어떤 숙소의 잔디마당에는 일찍 짐을 푼 순례자들이 살갗을 드러내며 일광욕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이국의 휴양지를 연출하고 있었다.

또 다른 어떤 숙소에 바깥에는 뜬금없이 바다에나 어울릴 돛을 단 배가 전시되어 있었다. 일레인의 말처럼 이 마을은 조금 희한한 분위기가 풍기는 이색적인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 멈추면 내일이 큰일이다. 어떻게든 내일은 ‘아스토르가(Astorga)'에 닿고 싶었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시작된 17.5킬로미터 내내 양쪽으로 보이는 것은 옥수수밭, 가끔 감자밭, 아님 무성한 풀… 그리고 그 끝없는 밭에 물을 대는 수로가 길을 따라 이어졌다. 사람 그림자 하나 찾을 수 없는 외진 곳에 난 수로를 따라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수 킬로미터를 물길 따라 걸으며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청정하게 흐르던 첫 물에 어느새 녹조가 끼고 그 움직임이 둔탁해지다 어느새 거의 멈춰버려 부연 것들이 떠다닌다. 같은 물길을 따라 흐르는 물인데도 이렇게 다르다. 속담에 ‘윗 물이 맑아야 아랫 물이 맑다’고 하던데, 이 수로의 위에서는 적어도 윗물이 맑다고 아랫물이 모두 맑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윗물이 더러워야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옥수수가 여물기라도 했으면 뽑아먹을 수 있으련만, 자라지도 않은 풀들을 따라 걸으며 날카롭게 발목을 파고드는 통증과 온몸으로 맞서는 태양이 버거워질 때 즈음, 문득 두루미를 닮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정말 긴 부리를 보니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먹는다는 동화가 그럴싸하게 여겨진다. 긴 날개를 펼쳐 푸드득 날아오르는 모습에 멍하니 시선을 빼앗겼다.

a 옥수수밭 끝없이 이어지던 길 위에서

옥수수밭 끝없이 이어지던 길 위에서 ⓒ JH


끝나지 않는 길과 죽어버릴 것 같은 피로감 속에서 눈앞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돌다리였다. 아래로는 작은 강이 흐르고 양편으로는 공원처럼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다리 중간쯤에는 이 마을의 순례자 숙소 몇 군데를 안내하는 판이 서 있었다. 다리를 끌듯 걸으며 숙소에 무사히 안착, 짐을 풀고 한 숨을 돌렸다.

샤워며 빨래를 마치고 빼꼼 내다본 주방이 썩 그럴싸해 보여 피곤한데 빵에 꿀이나 찍어먹고 말겠다는 생각을 바꿔 요리를 좀 해 보기로 했다. 주방에서 쌀과 양파 남은 것을 확인하고 국을 끓일 생각으로 상점으로 향했다.

아까부터 느끼던 것이지만 이 마을은 작은 규모에도 호텔 사인이며 마을 외곽에는 캠핑장까지 있는 것으로 봐선 현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인 것 같았다. 아까 다리 아래로는 웬 말들이 풀을 뜯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하고, 나름 사연이 있는 동네인 것 같지만 지친 몸은 호기심보다는 식욕이 우선이었다.

숙소에서 미도리씨를 만나 같이 저녁을 하자고 했다. 해물이며 호박 같은 몇 가지 재료를 사 와 총총 썰어 물에 풍덩 넣고 라면스프를 풀어 휘휘 저었더니 금세 만족할 만한 해물국(?)이 되었다. 옆 스토브에는 밥을 안쳐 놓았다. 금세 괜찮은 한 상이 차려져 미도리씨와 함께 파티오로 가져가 함께 먹었다.

곧 “비노가 아쉬운 걸요” 하고 가벼운 푸념을 했더니, 스페인 체류 1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눈썰미로 한 병을 사 오신다.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특유의 아시아(더 정확하겐 유교문화권) 사람들의 겸양정신이 발휘된다.

문득 옆에서 우리의 식사메뉴를 유심히 쳐다보던 스페인 아저씨는 “신기하구나” 하며 왁자지껄하게 말을 건네고, 곧 우리들에게 “디저트로 먹어봐” 하며 과자를 건넸다. 물끄러미 바라보며 성분분석, 영양분석, 칼로리 분석을 이제는 자동적으로 계산하다, 곧 “고마워요!” 하고는 과자조각을 입 안에 쏙 넣었다. 달콤하게 녹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a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순례자숙소 따뜻한 보금자리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순례자숙소 따뜻한 보금자리 ⓒ JH



걸을 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며 허공에 꽥 소리를 지르고, 몇 번을 가다 서다 드러 눕다를 반복하던 길, 하지만 여기까지 무사히 왔다. 잘 왔다! 미도리씨의 선택으로 곁들인 스파클링이 상쾌한 비노 블랑코(화이트 와인)는 더없이 달콤했고, 나름 큰 도시인 내일의 목적지 ‘아스토르가(Astorga)'는 쌩쌩한 정신으로 오전 중에 닿을 수 있겠다. 순례 내내 염원하던 ‘라바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 그곳까지는 이제 약 35킬로미터, 이틀이 남았다.

모든 것이 좋기만 하다. 그저, 좋기만 하다.
#산티아고가는길 #스페인 #도보여행 #성지순례 #카미노데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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