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화나다, 말로만 들었던 그건가봐!'

[천진난만하게JH, 산티아고 가는 길 28] 아스토르가에서 라바날 델 카미노까지

등록 2007.12.29 14:46수정 2007.12.2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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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5일 일요일, 날씨 맑다가 구름 비, 순례 23일째.
아스토르가에서 그곳, 라바날 델 카미노까지, 20km.
오전 6시 30분 출발, 오후 12시 도착.


미칠 듯한 가려움에 번쩍 뜬 눈, 주변을 돌아보니 한밤중이다. 살금살금 짐을 꾸리고 어제 남겨둔 파스타에 물을 조금 부어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뜨끈한 접시 위로 김이 모락모락 솟는다.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걷기 시작했다. 아직 새카만 밤, 가로등 불빛 아래로 삼삼오오 모여 휘청거리는 젊은이들의 주위를 반원 긋듯 돌아나간다. 아침을 맞는 기분이 무겁다. 아마도 아침부터 먹은 크림 파스타의 존재감일까?


곧 저 멀리 배낭을 둘러멘 이들이 보인다. 익숙한 반가움은 돌연 누가 누가 빨리 걷나 속도전의 긴장감으로 변한다. 내 짧은 두 다리로 그들을 어찌 대적하리오. 이제는 체념할 만도 한데 마음은 나를 스쳐가는 이들이 탐탁지 않다.

도시를 빠져 나와 곧 작은 성당을 만날 수 있었다. ‘에코 호모(Ecco Homo)'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성당에는 매 맞으심의 수모를 겪는 예수상이 전면에 보인다. 바구니에 담긴 각국 언어 안내문 중 확인도 하지 않고 기껏 집은 것이 독일어다. 마음이 퍽도 급했나보다. 점점이 흩어지는 양떼구름은 마치 지금의 내 마음이 하늘에 비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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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바날 가는 길에 에코 호모 성당 ⓒ JH


그렇게 기다리던 라바날 델 카미노로 향하는 날이다. 춤을 춰도 모자랄 판에 왜 이렇게 정신이 사나운지, 재촉한 걸음도 제 풀에 지쳐 '좀 쉬다 가자!' 하고 성을 낸다.

마침 작은 마을 '엘 간소(El Ganso)'의 허물어진 돌담벼락 옆에 잡초가 무성한 작은 땅을 발견했다. 십자가를 가운데 두고 허름한 나무 벤치가 둘러싼 모양이 잠시 앉아 쉬어가기 좋겠다.

짐을 풀고 어제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젤리를 꺼내 퍼먹었다.


문득 고양이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세 마리의 고양이들이 이 잡초 밭의 주인인가보다.

자세히 보니 이것들 내겐 관심도 없다. 한 녀석은 볕을 받으며 졸고, 하나는 담벼락을 따라 날렵한 점프를 선보인다. 또 한 마리는 마치 양털 카펫 위에서인양 우아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고양이지, 매정하기도 해라' 하며 그 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금만 다가설라치면 쪼르르 꽁무니를 빼는 고양이들 가운데 한 녀석만 다소곳하게 앉아서는 무심한 표정을 짓는다.

"어, 안 도망가네? 너 나랑 같이 갈래? 가자. 내가 밥도 주고 품에 안고 다닐게."

감언이설로 꾀기, 손에 물 묻혀 내밀기, 혓바닥으로 치치치 소리를 내며 꾀기 등… 다양한 유혹의 기술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다가가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멀어지면 따라온다는 뜻은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한 10여 분 가방을 메고 쪼그리고 앉아서 시도하다가 내 풀에 지쳐 협상 결렬로 마무리 지었다. 처음으로 고양이털을 쓰다듬을 수 있었던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랄까? '만지든 말든 귀찮아' 하는 눈의 녀석을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다. 이 손바닥만 한 잡초 공원이 내게는 고양이 공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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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간소에서 무심한 고양이들의 잡초천국 ⓒ JH


이거는 또 무슨 사기꾼이야?

아침부터 눈에 띄었던 후줄근한 순례자 한 명을 다시 만났다. 산발한 곱슬머리, 한국에서는 본 적도 없었던 거대한 2리터짜리 페트병, 바닥에 끌리는 바지가 왠지 가까이 가선 안 될 것만 같은 분위기다. 후다닥 그를 지나치려 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안녕?" 인사만 건네고 가려는데 잠깐 가방의 물병을 좀 꺼내달란다. "응, 알았어.", 가방에서 물병을 빼내 전하자 목을 축인다. 그런데 이 사람, 슬리퍼를 신고 걷고 있다. 샌들도 아닌 슬리퍼였다. 드러난 맨발에는 부연 흙먼지가 가득하다.

"이 신발 신고 가도 괜찮아? 이제 오르막인데."
"응, 그러게. 어제까진 그나마 나았는데 이제는 힘들어지네. 그렇지만 신발 살 돈이 없는걸. 운동화 하나가 100유로씩이나 하더라고."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온 페드로는 수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거는 또 무슨 사기꾼이야?' 하는 생각이 불쑥 뇌리를 스쳤다. 스스로 자신이 무서워졌다. 그러나 그는 꾸밈없는 맑은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었다. 곧 그에게 미안한 마음에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깊은숨을 내뱉고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두런두런 주고받았다.

"레온에서 처음 만난 순례자가 자기 집이 비어있다고 해서 그 집에 가서 한 30일은 지내다 온 것 같아. 정말 엉망으로 지냈지, 유쾌했어.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고."
"30일?! 세상에. 난 30일 만에 길을 다 걸으려고 했어. 지금이야 다 글렀지만."


"난 지금은 공부를 쉬고 있어. 마드리드의 빌딩에서 야간 경비원을 하기도 했지."
"수학 박사과정 학생이 야간 경비원?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 걸. 너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물론 편견이지만 경비원은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의 직업이잖아. 보수도 낮고…. 게다가 학위가 있다면 훨씬 더 좋은 자리에 있을 수도 있잖아."

"그래. 많은 돈을 벌 수는 없어. 그렇지만 내 얘기 들어봐. 하루는 아우디 주인이 차를 가지고 와서는 내게 키를 주면서 주차를 부탁했어.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나는 그 차를 끌고 나가서 밤새 마드리드를 달렸지. 정말 끝내줬어! 다만 사고가 나서 차를 좀 부숴먹은 게 문제였어. 주인이 소리치더군, '넌 해고야!'하고. 월급도 다 받지 못하고 쫓겨나고 말았지만 그땐 정말 재미있었어."
"진짜 영화 같은 얘기네."


그의 모험담에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한국에서라면 헤드라인 급 기사감이었다.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막연한 부러움 속에 불안함이 피어올랐다. 청명했던 하늘은 금세 짙은 구름에 싸였다.

"수학 전공으로 연구소에 들어가서 정부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했는데, 그 사람들은 끊임없이 '논문, 논문'만을 부르짖었어. 내가 하고 싶지도 않은 것에 대해서 압력을 받는 일이 괴로워 견딜 수 없었어. 사람들은 나에게 말해. 참고 견디라고, 지금은 그럴 때라고 말이야. 우리 어머니도…,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차라리 빌딩의 야간 경비원이 되어 모두가 잠든 밤을 지키는 것이 지금 내게는 더 편한 일이야…."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어떤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까? 길은 점점 거친 돌이 가득한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등산화로 무장한 나도 걸음을 내딛다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그의 발이 점점 걱정되었다.

"별 수 없지. 가진 돈도 떨어져서 숙소에 들어가지도 못했어. 그래서 밤이 되어도 그냥 계속 걸었어. 지금도 피곤하지만, 별 수 없지."
"잠도 안 자고 걷는다고? 내가……."


더 이상 입을 떼지 못했다. 나는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숙소비 줄게, 오늘은 여기서 쉬어', 아니면 '내가 이 돈 줄 게 뭐 좀 사 먹으면서 걸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머릿속으로 몇 번을 바지주머니의 지폐를 꺼내 그의 손에 쥐어주려다 집어 넣었다를 반복했다.

마리화나다, 말로만 들었던 그건가 봐!

문득 그는 "담배 피는 것 괜찮아?" 하고 묻는다. 나는 "그럼" 하고 대꾸했다. 먹을 것은 없어도 담배는 챙기는 것 보면 진짜 골초인가보다, 하며 복잡한 마음을 끌고 걸었다. 돌아보며 그에게 "있지, 기분 나쁘지 않으면…" 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한 발자국 정도 뒤에서 사각 비닐에서 잎 같은 것을 종이에 덜어 말고 있었다. 그의 받쳐 든 손이 조금 떨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 마리화나다, 마리화나일 거야, 말로만 들었던 그건가 봐.

한국에서 대마초를 두고 이루어지던 논쟁을 들으며 '그럴싸한 이야기야. 나도 동의해' 하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대중을 선동하는 자극적인 영상으로 무의식적인 선입견을 형성시켰을 뿐 아냐? 차라리 담배나 술이 더 위험하겠네. 그건 국가가 허가한 마약이야. 게다가 담배세니 주세로 세금수입까지 올리잖아?' 그러나 눈으로 그것을 직접 본 그 순간, '위험해!' 말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응?"하고 눈을 내게로 옮기는 그의 시선을 황급히 피했다. 눈앞은 각각 라바날과 크루즈 데 페로로 향하는 두 갈래 갈림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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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서 다음 마을 일러주는 이정표 ⓒ JH


"아니, 나는 라바날로 갈 건데…, 너는 어디로 가니?"
"나는 계속 올라가야지. 아직 시간도 이르고…."

"응. 오늘 같이 걸어서 반가웠어. 조심히 걸어 올라가고. 산티아고에서 보자!"

과장된 활발함으로 손을 휘휘 내젓고는 사잇길을 따라 걸어갔다.

"연구소에서 한국 학생들을 몇 만났어. 머리도 좋고 참 친절하더라. 한국은 괜찮은 나라인 것 같아."

엘 간소로부터 라바날 델 카미노 사이의 어딘가에서 내게 건넸던, 기발하고도 외로운 천재의 한마디가 가슴을 묵직하게 내리누른다.

갑자기, 번지도 모르는 그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페드로에게,
잘 지내니?
어쩜 우리들은 라만차의 돈 끼호테,
가진 것을 모두 팔아 책을 사 읽고는 모험에 뛰어든 그의 후예들일지도 몰라.
네가 아우디를 타고 뛰어들었던 풍차는 어디쯤에서 양 손을 펼친 채 사납게 돌아가고 있었니?
그리고 내 손에 들린 이 나무칼은 대체 어떤 풍차를 겨누기 위함일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라바날 델 카미노', 두 시부터 개방, 자전거는 다섯 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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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바날 델 카미노 수도원 입구 ⓒ JH


'라바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 더듬더듬 길을 따라 수도원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 섰다. 굳게 닫힌 문에는 '두 시부터 개방, 자전거는 다섯 시부터' 라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벌써 도착한 순례자들은 가방으로 대기줄을 만들고 벤치에 앉아 있거나 문 맞은편의 아름드리 나무에 기댄 채 빵을 꺼내 식사를 한다. 인사를 하고 분위기를 살폈다.

곧 비가 올 것 같아 처마 밑에 가방을 기대고 밥이라도 먹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문 밖에 내걸린 메뉴들을 보며 몇 번을 고심하다 에라 모르겠다, 숙소를 겸하는 식당 하나에 들어갔다.

식사시간인 한 시까지 카페 콘 레체 한 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시간이 되자 '이리로 와요'하는 목소리에 '식당(Comedor)'이라는 이름이 붙은 별실 공간으로 향했다. 고운 천이 깔린 테이블과 반짝이는 집기들, 눈앞에 보이는 창으로 작은 정원이 보였다. 생각보다 꽤 괜찮은데? 자리에 앉아 메뉴를 뒤적거리며 즐거운 상상에 빠져들 즈음이었다.

"안녕! 너 여기서 밥 먹는구나? 괜찮으면 합석해도 되지?"
"네? 네…."

  
어젯밤 아스토르가의 숙소 테라스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마우로와 마리사였다. 이탈리아에서 온 그들도 오늘 이곳에서 하루를 지낼 생각이란다. 지난 순례 때 하루 최소 10시간, 50km를 매일 내달리다 결국 아스토르가에서 다리가 부러져 순례를 중단했던 마우로. 그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강한 자부심으로 시작한 순례에서 상처를 입고 돌아갔다. 그리고 바로 어제, 중단했던 순례를 다시 잇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는 절대 무리하지 않을 거야. 대체 뭘 위해서 그렇게 걸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
"저는 혼자 걷다가도 앞질러가는 사람이 생기면 금세 조바심이 나고 발이 급해져서 걷는 것이 괴로워져요."

"바로 그거야! 남이 나를 앞지르면 왠지 빨리 걸어야 할 것 같단 생각에 따라서 속도를 내거나,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이 조급해지지. 그래서 잘 걷는 마음이 순식간에 평정을 잃어버려. 그렇지만 이곳에 달리기를 하러 온 건 아니잖아? 기록을 세우기 위해 온 것도 아닌데 말야."

그 동안 알게 모르게 나를 괴롭히던 어떤 것이 어슴푸레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이십여 년 내내 그런 것처럼 길 위의 23일도 다르지 않았다. 같이 걷게 된 사람들과도 계속 알 수 없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씨름에 지쳐 하루를 멈추기까지 하며 헤어지려 했고, 만나게 된 사람들에게도 무언의 각을 세운다.

한국에서는 언제나 무언가에 가위눌리듯 한 느낌 속에서 그것이 무엇인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저 사회적 압력이라며,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고 체념하고 말았다. 떠나면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만 킬로미터를 날아오면 그 버거운 무게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며 완전하게 자유로워 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오히려 내 온 몸에 밴 습관의 테두리, 그 경계를 더욱 뚜렷하게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조바심의 각은 세상의 것인 동시에 바로 내 것이었다. '사기꾼, 못 믿을 것들,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할 거야,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할 거야'…. 적대감의 날은 한국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내 안에 깊게 뿌리내린 것이었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옆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 주문을 하고, 접시를 받은 후 성호를 정성껏 긋는 순례자를 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열심히 걷고 지금 이 음식을 받을 수 있는 것을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마음으로부터 번져오는 평온함이 느껴졌다. 그래, 적어도 앞으로 10여 일, 모든 '그래야 함'같은 것들은 다 던져버리고, 그저 나와,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함께' 하는 것을 연습하자. 할 수 있을 거야.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에서 몸 씻으며 아연실색하다

식사를 마쳤을 때에는 두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나는 양껏 마신 비노로 대낮부터 살짝 취기에 빠져 숙소로 돌아왔다. 활짝 열린 대문 한 쪽에 그대로 기대어 있는 가방을 들고 입실했다.

"피정 집은 어떻게 들어가요?", 질문을 하자 주위 분위기가 어색하다. "이따가 수도원의 신부님과 얘기를 해 보는 게 좋겠어요." 짐을 어디에 풀어야 할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하던 것을 마우로가 선뜻 나서 도와줘 우선 이곳에 침대를 얻기로 했다.

그런데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에서 몸을 씻으며 아연실색했다. 온 몸에 붉은 반점이 돋아있는 것이었다. 침대벌레들의 자국이었다. 손으로 짚어가며 하나 둘 세어보자 53이 되어서야 끝났다. 샤워를 마치고 오스피탈레로를 찾아가 "침대벌레 약 있으세요?", "피정 집은 대체 어떻게 들어가요?"라고 몇 번을 귀찮게 굴며 약을 얻어 바르고 침낭을 빨랫줄에 널었다. 비마저 내린다. 문득 레온에서 만났던 지영씨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온 몸을 할퀴고 지나갔던 침대벌레 자국이 생각났다.

걸을 땐 알지 못했던 가려움이 점점 심해진다. 옴이라도 걸린 양 팔다리를 벅벅 긁어대며 빗방울이 돋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침대벌레의 습격과 반갑지 못한 자신에 대한 직면, 게다가 산에 오르기엔 편치 않은 날씨까지, 이 모든 것은 '내일부터는 이곳에서 푹 쉬었다가 가렴'하시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빈대벼룩이 날 잡아먹겠어, 어쩌겠어? 좀 간지러울 뿐이지. 옷이며 침낭은 빨면 그만일 테고. 스페인의 태양 아래에선 그 애들도 못 견딜 테야.' 믿음의 힘인지 알코올의 힘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저 하하하, 웃고 말았다. 이 정도면 순조로운 적응이다.

순례 초반 아조프라 길에 헤어졌던 워싱턴D. C.에서 온 밀다가 비를 쫄딱 맞은 채로 숙소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게 얼마 만인지! 그녀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머니는 어디 계시고?"
"응, 허리가 많이 아프셔서…."

어쩐지 그녀의 표정이 어둡다. "그래도 여기서 이렇게 너를 보니까 참 반갑다" 며 웃어주는 그녀가 고맙고, 참 반가웠다.
  
저녁 일곱 시, 숙소 맞은편의 작은 성당에서 '저녁 기도(Vespers)'가 열린다. "저 한국어로 성서 읽어도 돼요?" 하고 미리 양해를 구해 맨 앞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긴 수도복을 입은 다섯 명의 수사와 실내를 빼곡하게 채운 순례자와 관광객들이 응송하는 '성음악(Gregorian Chant)' 기도가 울려 퍼지는 작은 성당에서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성서가 낭독되었다.

곧이어 나는 독서대로 올라가 손에 쥔 한국어 성서를 펼쳐들고,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고 한 절씩 읽어나갔다. 하나이며 보편된 교회,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한 몸을 이루는 우리들…. 신앙의 신비란, 이런 것일지 몰라.

성당을 나오자 사람들 사이에서 수사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물었다.

"피정 집에 들어가도 돼요?"
"네, 됩니다. 내일 아침 기도시간 후 성당 앞에서 만납시다. 가방 가지고 오세요."

시원한 대답을 받고 상쾌한 기분이 되어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까지 봉사를 마치고 돌아가신다는 오스피탈레로 할아버지는 나를 향해 웃으며 이야기하신다.
  
"벌레물린 데는 괜찮아요? 난 깜짝 놀랐어요! 영어로 성서를 읽고 나서 바로 당신 나라의 말로 성서를 읽는데 마치 그 구절들이 하나하나 연결되는 느낌이었지."

괜히 쑥스러워 무심결에 고개를 꾸벅 숙이고 좁은 계단을 따라 방으로 올라가는 길에 마우로를 만났다.

"우리 방금 파스타 해서 나눠먹었는데, 안 그래도 너 찾았는데 없더라. 밥은 먹었고?"
"기도시간에 다녀왔어요. 밥은 이제부터 해 먹어야죠. 고마워요!"

그날 밤에는 숙소에 남아있던 파스타 면에 라면스프를 넣고 끓여먹었다. 같은 식탁에서 베이컨과 달걀프라이를 먹던 브리기테 아주머니에게 "한 번 드셔보실래요? 꽤 매운데…" 하며 권했더니 "정말 맵구나!"하시며 손으로 내내 부채질을 한다.

531km를 지나 여기까지 왔다

해가 기운다. 23일, 531km를 지나 여기까지 왔다. 오늘의 모든 것들이 감사할 뿐이다. 아니, 지난 순례의 나날들이, 그리고 나의 부족하기만 한 모든 날들마저도 감사하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짧은 기도를 읊조리고, 꿈같은 단잠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2007년 7월 16일 월요일부터 2007년 7월 19일 목요일까지, 라바날 델 카미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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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바날 델 카미노 피에타상 ⓒ JH


그곳에 나는 잔뜩 벌레물린 상처와 지친 몸으로 도착했다. 그리고 매일을 아침기도에 다녀와 아침밥을 먹고 짧은 청소를 한 후 쉬고, 정오미사에 다녀온 후 또 점심을 먹고 쉬고,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저녁기도를 하고, 저녁을 먹고 몸을 씻고 또 쉬고 잠자리에 들었다.

4일째의 날, 아침기도가 끝난 빈 성당 의자에 스페인의 예수회 사제와 나란히 앉아 한국어로 고해를 하며 눈물을 떨구었다.

떠난 이의 침상에서 시트를 벗겨내고 언젠가 도착할 순례자의 새 보금자리를 꾸리며 이 침대에 몸을 누일 그를 한없이 부러워했던 것도 같다. 정오 미사에서 시작된 오열에 소리 죽여 울다 지쳐 긴 잠에 빠졌다.

선함을 권하고 베풀기를 요구하고 믿기를 강요하는 말들이 아닌, 선하고 베풀며 믿는 이들의 세상 속에 떨어져서, 나 자신이 그 동안 얼마나 잔인하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온 몸의 신경을 갈기갈기 찢듯 자기와 타인에게 메스를 들이대고, 말만 번드르르하게 하면서 속으로는 언제나 '가장 좋은 것, 가장 처음 자리, 모두가 우러러보길 바라는 곳, 맨 위'에 서려고 발악을 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임에도 사랑해주셨고, 지금까지 함께 걸어와 준 사람들이 있었어. 그리고 그들 안에서 항상 함께 계셨던 그 분….

그날 밤, 나를 이 길에 서게 한 또 하나의 책, <the Way of a Pilgrim>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영영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이곳을 나서 다시 길 위에 오를 힘이 생겼다. 오늘로써 순례와 함께 시작했던 9일 기도의 청원기간이 끝나고, 내일부터 감사기간이다. 벌써부터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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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바날 델 카미노 산티아고 성인상 ⓒ JH



'주님, 이제 다시 오르는 여정 가운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저는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길 위에 서 있는 저희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제가 알지 못한 때부터 당신께서 그리하셨듯이,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산티아고가는길 #스페인 #성지순례 #도보여행 #카미노데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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