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땐, 북쪽에 내가 있다는걸 잊지 말아요"

북측동포와 손 꼭 붙잡고 오른 금강산 산행길

등록 2002.03.06 14:50수정 2002.03.0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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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절 동안 계속된 금강산 산행. 멋진 절경을 감상할 수는 있었지만 아직 얼어붙은 금강산 산행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별다른 등산 장비없이도 금강산을 오르내리는 북측 안내원들이 놀라워보이기도 했는데 '사진찍으면 안된다'는 방북교육이나 '북측 안내원들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현대 직원의 말에도, 한 장이라도 사진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마침, 학생회장들이 한 마음 착해보이는 안내원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자는 살며시 다가가 눈치를 살폈다.
"남쪽 대학신문사 학생기자에요. 남녘 대학생들이 우리 동포들을 너무도 보고싶어하는데, 사진 한 장만 찍을 수는 없을까요?"
북측 안내원은 웃으면서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특별히 부탁드리는 거에요. 마침 다른 관광객들도 없으니 큰 문제는 안될 것 같은데. 어떻게 안될까요?"

웃음짓는 표정에 그냥 찍을 수 있겠다 싶어서 카메라를 들이밀자, 북측 안내원은 빙긋이 웃으며
"기자선생, 내가 한가지 해줄 말이 있어요"라고 말을 꺼냈다. "내가 죄송한 말씀 한마디만 할게요. 나도 하나선생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요. 그 사진한장이 무슨 큰일이라고, 그냥 찍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도 하나 선생과 같이 찍고 싶지요"

남북의 현실을 설명하며, 정해진 원칙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안내원은 못내 미안한 표정이었다. 순간 내가 무리한 부탁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졌고, "아니다, 괜찮다"고 마무리해야 했다.

주먹이 약하면 안돼요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화제는 얼마전 방한했던 '부시'로 이어졌다.


"하나선생은 부시 방한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부시야말로 한반도에 올 필요가 없지 않나요? 한총련이나 여러 단체들은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기도 했어요. 이제 미국이 '우방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미국의 간섭에 분노하는 사람도 많구요."

"그렇지요. 다른 건 모르겠지만, 우리 민족의 통일문제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지요"
"우리 민족의 운명이야 우리가 만들고 결정해야겠죠."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힘든시기를 겪었어도, 우리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말이 있어요. 주먹이 약하면 그 주먹으로 망국의 눈물을 닦아야 한다는. 무슨말인지 알겠어요? 외워봐요"
"주먹이 약하면 그 주먹으로 망국의 눈물을 닦아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네요."

"그래요. 그리고 또 있어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지요. 남쪽에서 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겠지만,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 말을 떠올리도록 해요"

북쪽에 내가 있다는걸 잊지 말아요


어느새 다시 금강산 입구에 도착해있었다. 우리는 그때까지도 손을 놓지 못했다. 이제, 양손을 더욱 꼭 부여잡고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하나선생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북쪽에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마음만 같이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고난의 행군, 정말 힘들었어요. 내가 하나선생에게 뭐 속일 말이 있겠어요? 하지만 그 힘든 시기를 잘 이겨냈기에 지금이 있는거지요"라던 리정애 안내원.

기자가 "정말 너무도 다시 오고 싶다"고 말하자 "아리랑 축전 때 오면 되잖아요"라며 웃음 지었다. 못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자의 걱정스런 표정에는 "그때 못 오더라도 꼭 우리 집에 초청할게요. 잊으면 안돼요" 라고 오히려 느긋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북쪽 동포와의 짧은 만남은 끝났다. 하지만 꼭 붙잡았던 그 손의 체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다시 볼때까지, 앓지 말고 건강해야 해요"라던 목소리와 함께.

덧붙이는 글 |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덧붙이는 글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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