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깡패'가 경찰눈에만 안보였다?

대전중부서 책임회피성 해명에 철거민들 다시 분개

등록 2002.07.20 09:32수정 2002.07.2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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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발생한 대전 용두1지구 강제철거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간 후 시민 비난이 거세지자 관할서인 대전 중부경찰서(서장 이석화)측이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철거민들과 현장 목격자들은 "경찰의 균형 잃은 시각과 거짓, 철거반원들의 폭력을 눈감아준 속내가 그대로 드러났다"며 관할 경찰서장의 공개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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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경찰 눈에 정말 안 보였을까?

경찰 눈에 정말 안 보였을까? ⓒ 박현주

중부서측은 다음 날(19일) 아침 홈페이지에 올린 '용두동 철거현장 관련 보도 진상'을 통해 "쌍방간의 폭행, 난동을 제거하기 위해 경찰력(2개 중대)을 근접 배치했다"며 "경찰이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철거민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해명했다.

즉 폭력행위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전혀 못봤다는 것.

중부서 측은 또 "철거민의 1년여에 걸친 불법시위 및 철거 반대 폭력행위는 문제삼지 않고 철거 과정의 일부 마찰을 집중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과잉보도로 사료된다"고 오히려 언론의 보도태도를 문제삼았다.

중부서측의 해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문제의 본질은 1여년 넘게 극소수 주민들의 철거 반대와 불법집회로 많은 선량한 시민들이 피해를 보고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 것"이라는데 까지 나아간다.

중부서측 이어 "적법한 공무집행을 하는 철거반원들에게 돌과 인분을 던지고 폭력을 행사한 부분도 고려되어야 한다"며 철거반원 옹호에 나섰다. 철거반원들의 폭력에 부상을 당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친 철거민 1명과 학생 4명은 간단한 치료 후 전원 귀가했다"며 반면 "철거 용역원 3명은 아직도 늑골 골절 등 중상을 입고 입원 치료 중"이라고 덧붙였다.


또 "철거는 주택공사법 제 9조에 의거 주택공사 측에서 추진한 것으로 경찰은 직접 개입할 형편이 아니었다"고 항변하고 "철거민에 대한 폭행사건은 경찰이 확보한 채증 자료를 통해 엄중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폭행을 당한 철거민들과 목격자들은 이같은 경찰 측 해명에 "가라 앉았던 울화가 또 다시 치밀어 오른다"고 분개했다. 경찰측이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하고 있고 누가 봐도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한 철거반원들을 적극 두둔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쌍방 폭력으로 몰아붙이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는 것이다.


다음은 여러 현장 피해자와 목격자의 증언을 재구성한 것이다.

"아-악 -!"
18일 새벽 5시. 비명소리와 울부짖음이 여명을 깼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절한 울부짖음과 비명소리는 커졌다. 그리고 철거반원들이 욕지거리. 여기저기서 철거반원들이 발로 옆구리를 걷어차는 모습, 몰매를 가하는 모습, 건물 옥상에서 여학생의 머리채를 질질 끌고 내려오는 모습들이 사람들 시야에 가득 찼다.

철거반원들은 주민들을 두들겨 팬 후 질질 끌어내서는 한 곳에 모았다. 땅바닥에 꿇어 앉혔다. 얼굴을 땅바닥에 붙이게 했다. 그리고 움직인다며 옆구리와 정강이를 걷어 차고 동작이 느리다며 머리채를 잡아 흔들고 몰매를 가했다.

주민은 물론 학생, 시민단체 회원들 마저 철거반원에게 끌려 나와 무려 5시간동안 옴짝달싹 못하게 감금당해야 했다. 곧 이어 포크레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신 곳곳에서 중상을 입은 주민들이 들 것에 실려 나왔다.

당시 현장에는 이같은 상황을 예견한 경찰들이 근접 배치돼 있었다. 2개중대 240여명. 하지만 전경과 출동한 경찰직원들은 이같은 인권 유린 행위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누구도 중단할 것을 요구하지도 저지하지도 않았다.

폭행을 당한 주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폭력장면을 가리키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주택공사가 정당한 공무를 집행하고 있어 개입할 수 없다"며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a 주민, 학생 등 수 십여명을 불법 억류하고 있는 철거반원들

주민, 학생 등 수 십여명을 불법 억류하고 있는 철거반원들 ⓒ 정세연

오죽했으면 시민단체 회원들이 급히 현장에 투입된 용역업체를 상대로 '불법 감금·폭행'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겠는가. 하지만 경찰은 철거가 진행되는 한 나절 내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당시 현장 상황을 전하던 신 모씨(한남대 학생)는 "현장에 있던 사람이면 누구나 눈에 보이는 폭력이 왜 유독 수 백여명의 경찰 눈에만 보이지 않았는 지 모르겠다"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대전.충남녹색연합은 19일 성명을 통해 '중부경찰서장과 대한주택공사는 직무유기와 폭력철거, 강제억류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공개 사과할 것과 부상자에 대한 피해보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 단체는 대전시장과 중구청장에 대해서도 "주거환경개선사업의 본래 목적인 주민 재정착을 위한 책임 있는 대책을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한편 충남지방경찰청은 폭행사태 방치 여부에 대한 감찰에 착수하는 한편 이날 주민 등에게 폭력을 휘두른 철거대행업체 직원들의 신원 파악 등 수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충남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경비경찰의 폭력사태 묵인사실이 드러나면 직무유기혐의로 위법 처리하는 한편 폭력을 휘두른 철거반원에 대해서도 사법처리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설득력 없는 해명, 때 늦은 진상 파악 등으로 부산을 떨고 있는 경찰.
때맞춰 이날(19일) 경찰청장(이팔호) 명의의 '공권력 확립을 위한 대국민 메시지'가 발표됐다. 이 청장은 메시지를 통해 '15만 경찰은 모든 법 집행에 있어 인권을 최우선하고 있다'며 '경찰을 믿고, 공권력이 제대로 확립될 수 있도록 불법파업, 불법시위 근절을 위해 협조 해달라'고 호소했다.

같은 시간 충남도경찰청과 대전중부경찰서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폭력을 수수방관한 경찰의 태도를 비난하는 시민들의 항의글이 빗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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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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