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한 동네' 정동을 아십니까?(2)

등록 2002.07.26 15:08수정 2002.07.3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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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과 운명을 함께 한 경운궁과 정동지역

제국주의 열강 앞에 대한제국은 너무나 무력하기만 했다. 이런 대한제국의 모습은 정동지역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경운궁은 1910년 국권상실되면서 건물들이 황폐화되어 갔다. 일제는 1931년 '덕수궁의 일부분인 약 1만평을 유원지로 만든다'고 발표했다.


당시 덕수궁은 2만1백평의 부지를 갖고 있었는데 일제가 공원화하겠다고 발표한 평수는 덕수궁의 절반에 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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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덕수궁 내 각전(各殿)을 수리하고 정원을 만들었고 궁안에는 일본 도호쿠 산에서 직수입한 사쿠라(벚) 나무를 심었다. 이렇게 하여 1933년 10월 1일 이왕직의 명의로 덕수궁을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덕수궁의 공원화는 덕수궁의 완전한 격하를 뜻하는 것이었다.

고종 장례식 고종은 1919년 1월 22일 덕수궁에서 승하했다.
고종 장례식고종은 1919년 1월 22일 덕수궁에서 승하했다.신용철
고종황제 승하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덕수궁에서 3·1 운동이 일어났으며, 해방후인 1946년 덕수궁 석조전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담(1월 16일)과 제1차 본회의(3월 20일)가 열렸다.

그러나 1947년 5월 열린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어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적 염원이 사라지게 된다.

덕수궁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에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유엔 투표감시단 본부가 있었던 곳이며,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일당은 이곳을 점거하기도 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덕수궁 터에 자리잡은 미국의 행보

덕수궁 석조전 '돌로 지은 건물'이란 뜻의 석조전은 덕수궁에 유일하게 남은 서양식 르네상스 건물이다.
덕수궁 석조전'돌로 지은 건물'이란 뜻의 석조전은 덕수궁에 유일하게 남은 서양식 르네상스 건물이다.신용철
미국은 1910년 한일합방 이후에도 공사관 업무를 보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과 적대국이 되어 본국으로 완전 철수하게 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정국에서 덕수궁 터에 자리잡은 미국대사관저는 해방정국에서 우리의 소유가 되기도 하였으나, 1945년부터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의 미군정 기간 동안 미국의 외교업무 공간으로 활용되면서 조금씩 영역을 넓혀갔다.

겨레문화답사연합 강임산 사무처장은 "미국이 미군정을 통해 정동지역을 조금씩 넓혀가 결국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법적 소유권을 취득한 지역이 바로 옛 덕수궁터였다"며 "옛 덕수궁 터가 미국에게 본격적으로 법적 소유권이 넘어간 시기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우월적 지위가 통할 수 있었던 미군정기를 거치는 동안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수복한 미국군이 다시 옛 덕수궁 터에 주둔하게 된다. 그후부터 덕수궁 터에 자리잡고 있던 미국공사관은 그 기능을 대사관에 넘기고 대사관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을 이원경 외부무방관이 재직할 당시인 1984년 한국정부와 미대사관측이 양해각서와 재산교환각서를 체결하여 미대사관, 미사관직원숙소, 미문화원 등과 선원전이 있던 현 경기여고 터를 맞바꾸기로 했다.

미대사관측이 2006년까지 덕수궁 터에 미대사관, 아파트, 군인숙소 등 미국 복합외교단지를 만들겠다고 하는 것도 바로 84년 체결된 양해각서와 재산교환각서에 의해서이다.

미대사관, 아파트가 들어설 곳은 어떤 곳일까?

미대사관측이 현 세종로 대사관 청사에서 2006년까지 현 중구 정동 1-8번지 옛 덕수궁 터에 지상 15층, 지하 2층, 연면적 5만4976,13㎡(조선총독부의 1.8배) 규모로 짓겠다고 하는 곳은 '선원전'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경기여고 자리(선원전이 있던 곳) 미대사관, 아파트 신축예정지로 현재는 전경들의 훈련장소,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경기여고 자리(선원전이 있던 곳)미대사관, 아파트 신축예정지로 현재는 전경들의 훈련장소,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겨레문화답사연합
옛 경기여고 부지와 현 하비브 하우스 북쪽(두 사이이 위치)를 포함한 지역에 위치했던 선원전은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와 당대 왕의 4대조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을 모셔놓고 수시로 왕이 다례(茶禮)를 올리던 곳이다.

그런만큼 선원전은 궁궐 안에 자리잡고 가장 존귀하게 받들어지며, 일상적으로 기념되던 공간이었던 것이다.

겨레문화답사연합 강임산 사무처장은 "그러나 덕수궁 선원전은 현재의 덕수궁 궁내에 있지 않고 북쪽에 자리잡고 있었다"며 "이는 1800년대 후반 이미 외국 공사관들이 정동 일대에 들어선 까닭에 궁궐의 입지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인 듯 하다"고 했다.

오늘날 덕수궁 선원전 영역을 둘러보려면 옛 경기여고 부지를 포함한 하비브하우스 북쪽과 지금의 덕수궁 돌담길 북쪽 끄트머리로 찾아가야 한다. 이곳엔 선원전을 포함해 주요 건물 다섯 채, 그리고 수많은 부속건물들이 들어서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덕수궁 돌담길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기위해 선원전과 덕수궁 사이에 길을 내었다.
덕수궁 돌담길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기위해 선원전과 덕수궁 사이에 길을 내었다.신용철
1922년 일제가 이른바 '덕수궁 돌담길'을 뚫으면서 돈덕전이 헐리고, 선원전 영역도 모두 헐렸던 것이다. 일제는 덕수궁 선원전과 그 일대를 헐고 식민지 교육기관 등을 차례로 지었다. 우선 1922년 엄비(嚴妃)의 혼전(魂殿)을 헐고 그 자리에 '경성제일여자고등학교'를 짓고, 1923년 길 건너편에는 '경성여자공립보통학교'를 지었다. 뿐만 아니라 1926년 경성방송국 2층 본관과 부속건물 등을 세우기도 했다.

한편 해방 이후 1945년 10월 경기여고가 이곳으로 이전되어 자리를 잡았다가, 1988년 2월 현 개포동 부지로 이전한 뒤 공터로 남아 있게 되었다.

강임산 겨레문화답사연합 사무처장은 "아직 선원전터에 대한 발굴조사조차 한번 없었던 이곳에 美 대사관과 미국 대사관직원숙소 등이 20층 규모의 고층빌딩으로 곧 들어설 예정"며 "현 이화여고 옆에 크렘린궁전처럼 웅장한 규모로 들어선 러시아 대사관, 예원학교 옆 하남 호텔 터에 9층 규모로 들어설 캐나다 대사관, 그리고 이곳 선원전 터에 20층 규모로 들어설 미국 대사관 등 오늘날 변모하는 덕수궁 정동 일대의 모습은 100년전 '열강들의 각축장' 그대이다"라며 비통해 했다. 그런 상황에서 선원전터는 이미 '美 합중국(U.S.A)의 소유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강임산 사무처장은 "현재 옛 덕수궁 전각들의 규모와 정확한 위치를 알수 있는 실증적인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옛 덕수궁터의 역사적 가치는 매우 높다"며 "미국 대사관측이 강변하는 것처럼 현 미대사관 및 직원용 아파트 신축예정지가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았다는 주장은 역사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억지주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대한제국의 황실이 '녕의 공간'으로 인식했던 정동은 그렇게 열강과 일제에 의해 황폐화되어 갔다. 이는 대한제국의 국운이 열강들에 의해 휘둘리고 있던 우리 근대사의 아픈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라 할 것이다.

한국청년연합회 윤은정 간사는 "나라를 세운 태조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은 조선의 역사를 말해주는 곳"이라며 "미국은 자기네 역사가 깊은 조상의 제사를 모시던 곳 그것도 왕조의 제사를 지내던 곳에 다른 나라의 대규모 외교 복합단지를 짓겠다는 것을 허용하겠느냐?"며 비판했다.

정동지역은 근대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으로 오늘날 또다시 강대국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근대사의 중심무대이자 근대문화유산이 산재되어 있는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덕수궁터 미대사관, 아파트 신축 반대한다' 덕수궁터 미대사관, 아파트 건립반대 시민모임
'덕수궁터 미대사관, 아파트 신축 반대한다'덕수궁터 미대사관, 아파트 건립반대 시민모임신용철
문화연대 김성한 간사는 "100여년전 주변 열강에 국권을 유린당한 뼈아픈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라도 덕수궁, 정동일대의 역사경관과 덕수궁 터는 보존되어야 한다"며 "미국은 이제라도 덕수궁터 대사관, 아파트 신축 계획을 철회해야 하며, 정부와 서울시는 현 미대사관 신축부지를 재매입해 덕수궁을 포함한 정동일대를 문화지구로 지정하여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유산은 한번의 잘못된 판단이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사태를 만든다는 것을 감안할 때, 미국은 올바른 한미관계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한국의 문화주권을 존중하는 현명하고도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도움말 및 자료=목원대 김정동 교수, 한국청년연합회 우리궁궐길라잡이, 겨레문화답사연합 궁궐지킴이

덧붙이는 글 *도움말 및 자료=목원대 김정동 교수, 한국청년연합회 우리궁궐길라잡이, 겨레문화답사연합 궁궐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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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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