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브 하우스 현판미대사관저로 인해 삼엄한 경계를 세우고 있으며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있다.
신용철
'하비브 하우스'는 1971년 10월부터 1974년 8월까지 한국 주재 미국대사로 있었던 필립 하비브(Philip Habib)의 이름을 딴 것으로 하비드 대사가 전통한옥을 사용하던 중 1972년에 2백년이 넘은 한옥 관저가 '기둥이 엇갈려 내려앉는 소리'가 나서 서둘러 철거하게 된다.
하비브대사는 새 관저가 옛 건물과 마찬가지로 한국적인 건축양식과 역사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위싱턴의 입안자들은 서양식 관저를 짓자고 제안했다.
하비브 대사의 끈질긴 설득으로 새로 지어질 관저는 외관을 한옥 기와집 형태로 만들도록 결정되었으며, 새로운 관저는 일명 '도깨비 박사'로 유명한 조자용(종로의 YMCA 건물도 설계)의 설계로 1974년 말에 공사를 시작해 1976년 4월 완공되었다.
하비브 대사는 새로운 관저의 공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본국으로 귀국했지만, 한국문화에 대한 그의 이해와 보존 노력에 대한 뜻을 새겨 새로운 공관을 '하비브하우스'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하비브 대사는 외국인들이 전통 한옥관저를 드나들면서 그네들의 높은 '실크 해트'가 대들보에 닿아 망가지니 새로운 관저는 서양식으로 지으라는 요구에 대해 "조선사람들은 실내에서 모자를 쓰지 않는 것이 예의입니다"라고 말해 한국 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이해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 근대문화유산으로 서울시 지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하브비 하우스'는 'ㅁ'자 구조의 한옥 형태를 띠고 있으며 가운데에는 네모난 중정과 마당에는 연못이 자리잡고 있어 고풍스러운 한옥의 멋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비브하우스'를 눈여겨 볼 것은 필립 하비브 미국 대사의 한국 문화와 전통에 대한 남다른 이해만이 아니다.
태조 이성계가 1397년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비가 죽자 사대문 안에는 묘를 쓸 수 없다는 원칙과 신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동 인근에 묘를 두도록 했던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정릉'이 하비브하우스 권력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태조 이성계가 왕후의 영혼을 위해 흥천사라는 절을 세웠으며, 신덕왕후의 능을 '정능'이라 칭해 경운궁 일대가 '정숙한 동네' 즉, 정동이란 이름을 얻게 된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정숙한 동네' 정동에 대한제국의 국법을 어기로 불법으로 토지를 매매하여 외국공관으로는 처음으로 정동에 공사관을 낸 미국이 '정숙한 동네' 정동의 시원에 자리잡고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와 당대 왕의 4대조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을 모셔놓고 수시로 왕이 다례(茶禮)를 올리던 선원전 터에 미국 대사관, 아파트 등 대형 복합외교공관을 짓는다고 하니 '정숙한 동네'에 침입한 도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구세군 사관학교
1908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구세군의 사관 양성 및 선교와 사회사업 본부로 사용되던 건물로 1928년 완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