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파업 장기화, 돌파구는 없나

노동기본권 제한 족쇄 '직권중재제도' 폐지가 열쇠

등록 2002.08.21 03:34수정 2002.08.21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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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경희의료원, 가톨릭중앙의료원 등 일부 병원파업이 20일로 90일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경희의료원에서는 사용자측 실무교섭 당사자가 노조와의 합의사항을 하루만에 무효화시키는 등 병원 사용자측의 불성실 교섭태도와 정부의 무관심 대응으로 병원노조 파업이 끝없는 장기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강남성모병원 노조원들이 20일 오후 병원본부 1층 로비 상황실(농성장)에서 민중가요 '바위처럼'을 부르며 흥겹게 율동을 따라 배우고 있다
강남성모병원 노조원들이 20일 오후 병원본부 1층 로비 상황실(농성장)에서 민중가요 '바위처럼'을 부르며 흥겹게 율동을 따라 배우고 있다석희열
하반기 노사관계의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는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차수련)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 원인에 대해서 노조측에서는 △사측의 도를 넘어선 노조탄압과 노조깨기 공작 △직권중재제도로 인한 사측의 고의적 불성실교섭과 파업유도 △노조에게만 엄격한 법집행을 강조하고 사측의 불법부당 노동행위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노골적으로 사측 편들기에 나서고 있는 정부의 태도에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측의 이같은 입장과는 달리 가톨릭중앙의료원측은 노조측의 파업을 불법 파업으로 간주하여 최종 업무 복귀시한인 지난 8일까지 현업에 복귀하지 않은 노조원에 대해서는 △진료 정상화를 위한 대체인력 충원 △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원을 징계위원회에 회부 △고소·고발 및 손해배상 청구 등을 통한 민·형사상 책임 추궁 등의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노사 양측의 대타협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차수련(43)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병원파업이 파국으로 줄달음치고 있는 것에 대해 "1차적인 책임은 노동부장관에게 있다"고 말문을 연 뒤 "노동부장관은 파업 하루 전인 지난 5월 22일 병원파업은 일부 간부 중심의 불법파업 운운하며 법과 원칙대로 엄중 대처하겠다"며 "병원파업 장기화의 변죽만 울려놓고 아직 얼굴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는 노동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노조에 대한 지배개입 및 불성실 교섭 등 사용자측의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정부측의 태도와 관련 "노조측의 고소 고발이 있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정부가 유독 노조에 대해서는 체포영장 및 출두요구서 발부를 무더기로 남발하며 노조를 범죄집단으로 내몰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 파업투쟁에서 노조측은 임금인상 등 임단협 외에도 △의료의 공공성 강화 △산별교섭과 직권중재제도 철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병원 인력확충 등을 핵심 요구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최근 위헌논란이 일고 있는 직권중재제도와 관련, 차 위원장은 "사용자로 하여금 불성실 교섭 등 부당노동행위의 단초를 제공하고 노조의 장기파업을 유도하는 최악의 기제"라며 "이번 파업투쟁의 핵심은 노동기본권을 침해하고 노사관계 악화와 불성실 교섭의 주범인 직권중재제도 철폐에 온 힘을 집중시키는 것"이라고 말해 이번 파업을 향후 대정부 투쟁으로 확대시켜나갈 것임을 예고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직권중재제도에 대한 최근 사법부의 판례태도는 이 규정의 위헌소지와 중앙노동위원회의 직권 남용을 통한 노조의 노동기본권 박탈 가능성 등의 이유를 들어 대체로 노조측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사실 지난 5월 7일 수원지법 성남지원(부장판사 강민구)은 '직권중재 회부시 쟁의행위 금지조항'을 어겼다는 이유로 구속기소된 한국가스공사노조 박상욱 위원장 등 노조간부 6명 전원에 대하여 무죄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조정기간은 분쟁을 사전 조정해 쟁의발생을 막으려는 데 기본 취지가 있는 것이지, 쟁의행위 자체를 금지하려는 게 아닌 만큼 '직권중재 회부시 쟁의행위 금지조항'을 어겼다고 해서 무조건 불법파업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16일 대법원은 "직권중재제도는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여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단체행동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할 소지가 있다"면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62조 제3호 및 제75조는 중재회부결정무효확인 등 사건의 전제가 될 뿐만 아니라 이를 위헌이라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므로, 헌법재판소에 이 조항의 위헌여부에 대한 심판을 제청하기로 한다"며 필수공익사업에 대한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직권중재 회부결정 규정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한편 가톨릭중앙의
7월 22일 가톨릭중앙의료원 재무팀 명의로 노조원들에게 일제히 발송된 임금공제통지서..71년생인 이 간호사의 급여 공제(마이너스)총액은 공제일수 30일에 4,452,620원이라고 적혀있다
7월 22일 가톨릭중앙의료원 재무팀 명의로 노조원들에게 일제히 발송된 임금공제통지서..71년생인 이 간호사의 급여 공제(마이너스)총액은 공제일수 30일에 4,452,620원이라고 적혀있다석희열

료원은 지난달 22일 파업참가자들에 대하여 6, 7월 급여를 무노동 무임금에 덧붙여 파업 참가일수만큼 매일 상여금의 10%를 뺀 마이너스 급여를 지급할 것이라는 명세서(임금공제통지서)를 발송하여 노조원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노조측은 "장기파업으로 생계조차 어려운 파업 노조원들에 대하여 하루에 상여금의 10%를 공제하여 마이너스 월급명세서를 발송했다는 것은 상식을 뛰어넘는 부도덕의 극치'라고 지적하면서 "이 사실이 각 언론에 보도되어 말썽이 일자 또 다시 사무상의 착오라고 말을 바꾸는 것은 가톨릭 성직자들이 펼치는 희대의 코메디"라고 비난했다.

노조측의 이같은 비난에 대해 가톨릭중앙의료원 김현수 노무협력과장은 "우리 기관의 내규에는 노동자의 귀책사유로 인한 무단 결근의 경우 매 결근일마다 상여금의 10%를 공제하여 급여를 지급하게 되어 있다"면서 "이같은 사실은 이미 노조측에서도 알고 있는 사실이며 우리는 말을 바꾼 적도 없고 임금공제통지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반박했다.

노조의 파업에 대하여 무단 결근으로 처리할 수 있는 법 규정이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 김현수 과장은 "그것은 법 해석상의 차이이며 의례적으로 그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노조와의 교섭을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서 김 과장은 "6월 5일 직권중재안이 떨어지면서 교섭은 이미 끝난 것"이라며 "6월 5일 이후 우리는 교섭이라는 말 대신 면담이라는 말을 쓴다"면서도 "노사간의 평화를 위해 대화는 얼마든지 진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어 노조측의 노조파괴 음모 중단 및 징계 철회 요구에 대해서도 "우리는 절대로 노조를 부인하거나 노조파괴 음모를 꾸민 적이 없다"면서 "노조에서 파업을 풀고 현업에 복귀하면 가능한 징계하지 않을 방침"이라며 "손해배상 청구 및 업무방해죄 등 민·형사상 책임에 대해서는 파업 노조원들의 월급 및 조합비 등 채권 가압류(약 15~16억원) 절차에 이미 들어간 상태지만 경중을 가려 최대한 선처할 예정"이라고 밝혀 선별 처리 방침을 내비쳤다.

보건의료노조 집행부를 "투쟁과 파괴를 통해 목적만을 달성하는 선동원들에 불과"하다고 한 의료원 소식지
보건의료노조 집행부를 "투쟁과 파괴를 통해 목적만을 달성하는 선동원들에 불과"하다고 한 의료원 소식지석희열
한편 보건의료노조 차수련 위원장은 가톨릭중앙의료원측이 발행한 의료원 소식지에서 자신을 "폭력과 일터를 파괴할 목적으로 병원에 들어온 선동원"이라고 한 것과 관련 병원측을 검찰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이 문건에 대해 가톨릭중앙의료원 김현수 노무협력과장은 "자세히 확인해보지 않아 명백한 입장을 밝힐 처지는 아니지만 아마도 해석상의 잘못일 것"이라면서 "만약 사실이라면 노조측에 죄송한 일"이라며 홍보물 작성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음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보건의료노조 차수련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지난 한양대병원 노조위원장 시절에도 몇 번 구속된 적이 있는데 이번이 몇 번째인가.
"89년 한양대병원 노조위원장을 하면서 병원파업으로 처음 구속된 이후 노조생활 15년 동안 4번 구속되었다. 이번 체포영장 발부까지 합치면 다섯번째다."

- 여성의 몸으로 오랫동안 수배생활을 받으며 파업투쟁을 이끄는 게 힘들지 않나.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매일 결의를 다진다. 노조원들의 힘찬 결의를 보면 오히려 힘이 솟는다. 장기 파업투쟁으로 생계조차 어려운 노조원들도 많이 있다. 그들의 처지를 알고 있는 내가 어떻게 힘들다고 투정할 수 있겠는가."

- 파업참가 노조원들에 대한 생계대책이 있으면 말해달라.
"지난 7일 합동대의원대회에서 전국 4만3천 조합원들이 처음으로 파업 노조원들의 생계비를 위해 1만5천원씩 결의를 했다. 각 지부마다 바자회 등을 통한 수익금과 5만원권 채권 발행 및 파업 노조원들에 대하여 적립된 조합비 대여 등을 결의했다."

- 장기파업의 이유가 무엇인가.
"1차적인 책임은 노동부장관에게 있다. 노동부장관은 파업 하루 전인 지난 5월 22일 병원파업은 일부 간부중심의 불법파업 운운하며 법과 원칙대로 엄중 대처하겠다고 했다. 병원파업 장기화의 변죽만 울려놓고 아직 얼굴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사측의 고의적 불성실교섭과 장기파업 유도의 빌미를 제공하는 직권중재제도이다. 우리 헌법에는 국가기간사업에 한해 예외적으로 직권중재제도를 인정하고 있을 뿐 병원과 같은 필수공익사업에 대하여 직권중재제도를 인정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헌법에도 없는 규정을 하위법인 노동관계법이 규정하여 정상적인 노조활동에 족쇄를 채우고 있는 꼴이다.

그리고 체포영장 발부 등 노조에게만 엄격한 법집행을 강조하고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더없이 관대한 정부의 태도도 문제다. 이는 정부가 노골적으로 사측 편들기에 나서고 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 체포영장과 소환장을 발부받은 사람이 노조 집행부에 모두 몇 명인가.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사람이 본조(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및 부위원장을 포함하여 가톨릭중앙의료원 노조 12명, 경희의료원 노조 4명 등 23명이다. 출두요구서를 받은 사람은 이미 경찰조사를 받은 사람(58명)을 빼고도 현재 99명이다."

- 앞으로 투쟁일정에 대해 알려달라.
"벼랑끝 심정이다. 앞으로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및 구조조정 등 사측의 노골적인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과 파괴 공작이 본격화될 것이다. 우리는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한 투쟁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죽을 수는 있어도 사측에 승리의 월계관을 안겨줄 수는 없다. 내일(21일)부터 서울대교구 투쟁을 시작으로 보건의료노조 전 간부 상경 노숙투쟁 및 국회 앞 천막농성을 함께 전개해나갈 것이다."

- 대타협의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현재의 사용자측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타협은 있을 수 없다. 특히 가톨릭중앙의료원의 경우 신부의 독선과 오만 방자함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노조원들 대부분이 여성이며 가톨릭 신자인데도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여 노조원들을 탄압하는 것은 성직자로서의 도덕성과 정체성을 이미 잃어버린 것이다. 성경말씀에 '법정에 가기 전에, 가는 길에도 서로 화해하라'고 했다. 자신들의 신자인 노조원들을 고소·고발하는, 일반인들도 하기 힘든 일을 성직자들은 너무도 태연하게 저지르고 있다. 가톨릭 성직자들은 지금까지 노조와의 교섭을 계속 거부해오면서 노조가 분리되기만을 기다려왔다. 파업 90일이 되도록 오늘 오후 3시에 면담에 들어간 것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세번째 면담이다. 더욱이 최고 책임자인 의료원장은 노조의 대화요구를 계속 거부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가 접점을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 9월 국회 국정감사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본조 정책국에서 준비하고 있다. 정부가 장기파업을 유도한 객관적인 정황 증거를 갖고 있다. 사용자측의 부당노동행위 및 노조 탄압 그리고 직권중재제도에 대한 문제점들을 국회가 집중적으로 파헤쳐주길 우리는 원한다. 국정감사기간 동안 본조 전 간부들이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할 것이다."

- 병원파업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과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보건의료노조는 당장이라도 환자들 곁으로 달려가 그들을 돌보고 싶다. 사태가 이처럼 악화된 것에는 정부와 사용자측의 책임이 크다. 지금 사측은 병원협회 차원에서 공권력을 동원하여 노조 파괴를 위한 노조측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있다. 87년 노조 건설 이후 우리 보건의료노조는 사회개혁과 인간적인 삶을 위한 투쟁에 늘 앞장서왔다. 제대로 된 사회건설을 위해 병원 노동자 전체가 한마음으로 단결하여 투쟁의 대열로 나서야 한다. 어차피 지금의 파업투쟁은 민주노총 차원의 싸움으로 확대되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용자들의 횡포에 대해 전 조합원들이 함께 분노하고 싸워서 민주노조를 굳건히 지켜내고 끝내 이 지루한 싸움을 승리로 마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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