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초등학생까지 석차로 줄 세운다

등록 2002.09.12 16:20수정 2002.09.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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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포 전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딸애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작정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이유인 즉슨, 실력향상을 위해 모의시험을 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고등학교에서의 학력서열주의가 초등학교에서도 벌어질 모양이다. 이름하여 '국가 수준의 기초학력 진단평가'다.

이 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석차를 산출하고 학교와 지역교육청까지도 순위를 매기겠다는 의도이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교사들은 '비교육적인 서열 매기기'이며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 황폐화의 현장인 고교의 모습을 초·중학교에서도 재현하자고 하는 것일까?

10월 15일, 전국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일제고사를 실시한다. 표집형 (몇 개 집단이 표본적으로 시험을 치는 경우)이 아닌 전집형(모든 학교의 학생들이 모두 시험을 보는 경우)이다. 벌써 초등학교에는 선생님들에게 문제집을 나눠주는 업자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린다고 한다.

대구의 OO초등교사 최아무개 선생님은 "요즘 학교에 들어오는 문제집을 보면 벌써 고등학교 입시교육의 바람이 부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중학교 3학년은 11월 25, 26일로 예정되어 대한민국 교육이 객관식 문제를 얼마나 잘 맞추느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꼴이다.

지난 6월 초, 교육부 관계자 말을 인용한 보도에 의하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한 문제를 각 시도 교육청에 제공해 실시하며, 영역별 성취수준 등이 포함된 학생 개인별 분석자료가 학교와 학부모에게 통보하고, 평가 결과를 분석해 교육정책의 개선과 목표미달 학생에 대한 지도대책 및 교정 프로그램 개발 등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보도의 내용은 믿을 수 있을까? 이는 전국적인 반대 여론을 의식해 무마용일 뿐이고 신자유주의주의의 산실인 영국처럼 교사와 학교의 평가 잣대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학생들을 성적으로 서열화하여 학생의 변별자료로 활용하고 교사, 학교, 교육청을 줄세워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시험을 주도하고 있는 교육과정평가원은 초등학교 1학년에서 고1까지의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입시에 반영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많은 교사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학생들로 하여금 입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다고 걱정한다.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은 교육열이 남다르다. 그런데 이러한 '줄 세우기식 시험'이 강행되면 어린 아이들을 경쟁의 늪으로 빠뜨려 초·중·고등학교가 시험 준비를 위한 장으로 변질될 소지가 있다는 데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시행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학생의 비율이 20%나 되는 영국에서나 시행하는 제도요, 국가적 차원의 통합된 교육과정이 없기에 하는 미국식의 평가이니 우리 교육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학생들이 세계에서 최고의 학력을 나타내고 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니 한마디로 상황논리에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시대와 역사를 역행하는 '서열 매기기'와 '문제풀이식 수업'으론 우리 교육에 희망이 없다. 한창 운동장에서 뛰어놀며 상상력을 키워야 할 어린 학생들이 객관식 문제풀이로 시간을 허송하게 할 수 없다.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은 시대착오적이고 역사와 민족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어리석은 발상을 거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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