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진단평가 문항 수정지시 파문

졸속 비판 '일제고사', 장관 입김에 '신뢰도'까지 흔들

등록 2002.10.01 21:51수정 2002.10.02 11:02
0
원고료로 응원
초등 3학년 기초학력 진단평가 세미나가 열린 지난 9월 13일 오후 2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강당. 오는 10월 15일 실시되는 진단평가 문항제작 전담팀장인 김명숙 교육과정평가원 평가기획부장은 주제발표를 하면서 다음처럼 자신있게 말했다.

"진단평가 문항을 개발하기 전에 최소 성취기준을 만들었다. 이 기준 개발 작업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진과 교대 교수님, 그리고 초등 교사로 구성된 평가위원들이 했다. 성취기준이 개발된 다음 이를 평가 전문가와 교사 60여 명 이상에게 검토하게 해 의견을 수렴했다."

며칠만에 바뀐 진단평가 문항

그런데 이 김 팀장의 발표가 있은 지 10일밖에 흐르지 않은 지난 23일부터 28일 사이 진단평가 문항이 교육부총리의 지시에 따라 갑자기 뜯어고쳐진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6월 첫 발표 후 졸속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진단평가가 이제는 '신뢰도'까지 뿌리 채 흔들리게 됐다.

교육부 김원찬 평가관리과장은 1일 "교육 부총리의 지시에 따라 교육과정평가원에서 평가문항을 다시 손질하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날 교육과정평가원의 한 관계자도 "9월 말 교육 부총리가 진단평가 실시문제가 여론화되자 문항을 직접 확인하고 더욱 쉽게 낼 것을 지시했다"고 밝혀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교육부 김 과장은 이날 정오께 전교조 전국 초등위원장 5명의 항의방문을 받는 자리에서 "부총리의 고집 때문에 생긴 진단평가인데 그 평가문제조차 부총리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만들 수 있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다시 만드는 게 아니라 보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부총리는 73년 평가척도를 마련하는 일을 진행하는 등 평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분"이라고 덧붙였다.

교육과정평가원은 진단평가 문항을 2일부터 16개 시도교육청으로 옮기기 위해 1일 오후 CD로 만들어 놓았다.


이에 앞서 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연구진과 초등 교사 등 1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평가 설계와 문항개발 작업에 이어 표집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예비검사를 치렀다. 교육과정평가원은 9월 이 예비검사 결과 "75점에서 90점까지 나오는 등 쉬운 문항이 대부분"이라고 밝히기까지 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참여해 예비 검사까지 마친 평가문항을 부총리가 '말 한마디로 바꾼 것은 권한남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치입김에 흔들리는 '교육'

전교조 이용환 정책실장은 "부총리 한 명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진단평가 문항을 바꾸도록 지시한 까닭은 진단 평가 실시 후 자신에게 쏟아질 비판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장관 취임 몇 달만에 70년대식 일제고사인 진단평가를 발표하고 정치적인 뒷감당에만 신경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93년 초등학생 학력시험을 처음 보기 시작한 미국의 메릴랜드주는 5년 동안 시험실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2001년 치른 초·중학교 성취도평가 문항 작업에 참여한 김모(34) 교사는 "전국 학생의 1%만 표본으로 시험 보는 성취도평가도 1년 전에 문항 작업을 끝마치고 있다"며 "전국 초등 3학년생이 다 보는 진단평가를 부총리가 일주일 사이에 문제를 바꾸었다면 시험의 평가척도와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실에 대해 진단평가 실무책임을 맡고 있는 교육부 이영만 교원정책심의관실 국장과 김원찬 평가관리과장은 몇 번의 취재 요구에도 '회의 중' 또는 '만찬 약속'이라는 말로 답변을 회피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2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3. 3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4. 4 블랙리스트에 사상검증까지... 작가 한강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 블랙리스트에 사상검증까지... 작가 한강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
  5. 5 [이충재 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이충재 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