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열린 '아주 특별한 결혼식'

장애인 커플이 키운 사랑

등록 2002.12.25 16:52수정 2002.12.26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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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규상

성탄절인 25일 오후 2시. 대전시청 20층 건물이 박수와 환호 소리로 들썩였다. 아주 특별한 결혼식이 열린 때문이다.

이날의 주인공은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인 신부 문경희(33)씨와 한쪽 발이 없는 장애 4급 신랑 박상환(40)씨.

[축시] 당신의 미소

뜨락에 달 걸어놓고
바람이 쓸어 가고 남은
흐느낌과 설렘 그것은
당신의 미소

기억을 지울 수 없는 날까지
나 다시 태어나도
내 가슴속에 살아 있는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어라

희다 못해 푸른 옥양목에
달빛 수놓듯 말 꽃 피우며
은밀히 만들어 가는 미소로

내 가슴을 접으며 파고드는
당신의 모습
별무리 지는 새벽이 지나도록
내 얼굴을 만지며 하얗게 밝혀 주고

삶에 지친 고단한 가슴에
힘없는 내 손을 잡아 안으며
잠들고 있는 당신의 미소는
정말 정말 아름답구나
/ 오용균(장애인 야학)
신부 문씨는 어려서 부터 걸음걸이가 불편했다. 그마나 조금 발걸음을 할 수 있었지만 자라면서 이번엔 고관절에 장애가 생겼다. 세 차례의 거듭된 수술도 허사였다. 끝내 꿈 많던 소녀는 세상을 걷는 일을 포기하고 휠체어에 온 몸을 의탁했다.

12년 전 뇌종양으로 아버지마저 여읜 문씨에게 세상은 '걷는 일'뿐만 아니라 '배움의 길'마저 포기해야 했다. 초등학교 조차도.

신랑 박씨는 97년 5월, 다니던 회사에서 산업안전사고로 우측 발이 절단됐다. 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박씨는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현 직장에서 절대 필요로 하는 아스콘 믹서기사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은 지난 해 9월 시작됐다. 대전 유일의 성인 장애인야학인 '모두사랑'이 인연이 됐다.

항상 배움에 고파했던 신부 문씨는 지난 9월 '모두사랑'에 입학했다. 입학 9개월만인 지난 5월 초등학교졸업 검정고시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었다. 신부 어머니 이종원(66)씨는 취학통지서를 받고 딸 경희를 붙잡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단다. 다른 자식들처럼 가르칠 수 없었던 과거는 이씨에게 엉겨붙은 한이요 마음의 통증이었다.


문씨가 배움의 꿈을 이루게 하는 데는 신랑 박씨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차량자원봉사자로 야학에 몸담게 된 그는 장애인 학생들 등의 하교길의 발이었다. 회사일을 마치고 차량봉사까지 하다보면 언제나 귀가시간은 새벽 1시를 넘어섰다. 하지만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위해 한 차례도 이를 거르지 않았다.

a 신부 문씨의 어머니 이종원씨(66)

신부 문씨의 어머니 이종원씨(66) ⓒ 심규상

문씨 또한 박씨가 등하교를 도와야 할 학생이었다. 하지만 서로를 알아가는 사이 정이 들었고 어느 날부터인가 서로는 장애를 극복하게 하는 용기고 힘이 됐다. 두 사람도 모르는 사이 사랑의 싹이 야물게 돋아난 것.


이날 신랑과 신부는 모처럼 활짝 웃었다. 신부 문씨는 "너무 기쁘고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기만 하다"며 "학업을 계속해 대학에 꼭 진학해 장애인을 위한 상담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부는 현재 중학교반으로 월반해 늦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신랑 박씨는 "장애인의 결혼식이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했다. 박씨 또한 결혼이후에도 차량봉사를 계속할 생각이다.

큰 기쁨은 눈물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일까. 이날 신랑 신부는 물론 장애인야간학교 교사와 학생, 하객들의 눈에서는 결혼식 내내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a 장애인야간학교 교장(주례, 왼쪽)과 신랑(뒤쪽), 신부

장애인야간학교 교장(주례, 왼쪽)과 신랑(뒤쪽), 신부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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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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