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함께 잠자는 게 소망이죠"

소외된 사람들의 새해 소망 인터뷰

등록 2003.01.03 00:31수정 2003.01.03 15:13
0
원고료로 응원
"삼태기 만한 봉분만이라도..."(대전산내학살 유가족모임)

"차라리 말못하고 살 때가 더 나았던 것 같아"

a

한국전쟁전후 산내학살 희생자 유가족 모임 ⓒ 장재완

대전산내학살 대전유가족모임 송영길 회장(53)은 새해소망을 묻자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한다.

송씨는 차라리 침묵을 강요당했을 때는 부친이 억울한 죽음을 애써 가슴속에 묻으며 삭혀 올 수 있었단다. 사회적 분위기가 서서히 진전되는 것을 보며 주위에서 "이제 한 맺힌 사실을 말하라"고 종용할 때도 입을 꾹 다물었던 것은 겹겹이 묻어 두는 것이 더 편하고 익숙해 졌기 때문이란다. 이런 송씨가 결국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조심스럽게 부친의 학살 사실을 말하게 된 데는 단 한가지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흩어진 아버지 유골 흔적이나마 모셔 향 한 자루 피워 드리고 싶었습니다. 삼태기 만한 봉분 하나 만들어 드리고 싶었는데.."

하지만 삼태기 만한 봉분을 꿈꾸며 털어놓은 과거는 송씨에게 크나큰 상처로 되돌아왔다. 산내 학살현장엔 부친의 유해일지도 모를 유골이 쓰레기처럼 나뒹굴고 있었고, 수습된 유골은 아무렇게나 다시 묻혀졌다. 그리고 학살현장 위에는 유골을 짓이기며 건물이 들어섰다. 목청이 터지라고 울부짖었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요구는 4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유가족들의 소망은 한결같습니다. 자식들과 함께 찾아가 큰 절 올릴 아버지 묘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소망이 4년을 끌어올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송씨의 소망이 올해는 이루어질 수 있을까.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난해보다 눈에 띠게 늘어날 수 있을까?


관련
기사
산내학살 위령제가 열리던 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 높아지는 한해였으면…"
(사단법인모두사랑 장애인야간학교)


'(사)모두사랑'은 대전 유일의 성인 장애인 야간학교다. 지난 2001년 7월 창립해 훌쩍 1년 반이 지났다. 개교 당시 스무 명 남짓이던 학생은 그 사이 50명으로 늘어났다. 학생 수만 늘어난 게 아니다. 교사는 46명, 장애인 학생들의 발이 돼 주는 차량봉사자도 30여명에 이른다.

a

오용균 모두사랑 장애인 야학 교장 ⓒ 장재완

이만큼 학교가 성장하는 동안 오용균 교장의 남다르다 못해 극성스럽기까지 한 손길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오 교장의 새해 소망은 단지 학교 학생들에 국한돼 있지 않았다.

"사회 내 변화 물결이 교육현장에 불어 닥쳤으면 좋겠어. 그러면 장애인들도 그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특히 정신지체 장애인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높아 졌으면 해"

오 교장의 교육 개혁은 예상대로 장애인 교육과 맞닿아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좀더 높아지고 학부모, 학생 등 의식이 전체적으로 나아지는 한 해였으면 좋겠어"

새해 세운 계획도 하나 있다. 학생들이 마음놓고 배움에 매진할 수 있도록 보다 넓은 터전으로 이전할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오 교장의 새해에 거는 기대는 매우 희망적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로 이만큼 성장했지. 따뜻한 주위 사람들 덕에 늘 꿈을 갖고 일할 수 있어요"

"양심수 가족들의 한이 풀어졌으면.."(대전민가협 한평수씨)

"모든 양심수들이 석방되는 게 소망이지. 나는 노 대통령이 공약을 모두 지켜서 정말 이 땅의 젊은이들이 마음놓고 살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더 바랄게 없겠어."

a

한평수 대전 양심수 후원회 회원 ⓒ 장재완

99년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사건으로 제작년 3월,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고 전주교도소에 수감중인 임태열(37)씨의 어머니 한평수씨의 간절한 새해 소망이다.

한 씨를 만난 건 지난 31일 미군장갑차에 희생된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대전역 촛불집회에서다. 추운 날씨에도 혼자서 버스를 타고 먼길을 달려와 젊은이들 사이에서 열심히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노 대통령이 우리 양심수 가족들의 한을 풀어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우리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하면 정-말 좋겠어. 진짜 더 바랄게 없어"

이 말을 하면서 한 씨는 벌써 눈시울이 붉어진다. 차가운 교도소 바닥에서 고생하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내년에는 이런 사연의 소망도 없었으면 좋으련만....

"그저 가족이 한데 모여 밥 먹을 수 있었으면..."(용두동 철거민)

지난 2002년 7월 18일 용두동 강제철거가 있은 이후 지금까지 170여일 째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는 대전 용두동 철거민들의 송년행사에서 이옥희 주민 임시대표를 만났다.

"새해 소망이라면 빨리 우리 일이 해결되어서 주민 모두가 편안하게 살았으면 하는 거죠. 뭐 다른 게 있겠어요."

a

이옥희 용두동 철거민 임시대표 ⓒ 장재완

이씨의 가족은 자녀 셋을 둔 5인 가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산가족이다. 남편은 세 아이와 함께 월셋방을 얻어 아이들 학교 보내고 직장에 나가고 있고, 이씨는 중구청 앞 비닐움막에서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 주민들 소망은 모두 한가지예요. 그저 한가족이 모여서 함께 밥먹고, 함께 잠자는 것, 그 이상 뭐가 있겠어요?"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겠어요. 길바닥에서 새해를 맞을 줄이야. 하지만 우린 결코 물러설 수 없어요. 왜 우리가 우리집을 빼앗겨야 해요.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가졌던 것만큼만 달라는 데…그게 그렇게 들어주기 어려운 건가요?"

새 정부가 들어서면 그래도 조금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묻자.

"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아무것도 없어요. 어차피 공약이나 약속 다 안 지킬테니까. 그러니까 소망할 것도 없죠. 늘 그래왔잖아요. 서민들만 손해보고 살았잖아요? 그런 못된 관행을 깨기 위해서도 우리는 끝까지 싸워서 이길 거예요"

이씨의 다짐이 굳세어 보인다. 봄날이 오기 전에 중구청 앞 움막이 걷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하루빨리 정든 일터로 돌아갔으면.."(비비드광학 노조)

a

길거리 투쟁을 벌이고 있는 비비드광학 노조원들

'노조 전임인정, 임금협상' 등의 내용으로 사측과 교섭을 하던 중 일방적으로 폐업 통보를 받고(2002.7.20) 7개월째 출근싸움을 벌이고 있는 비비드광학 노조원들.

길거리 투쟁을 처음 시작할 당시 함께 한 노조원들은 50여명. 오랜 싸움에 건강이 나빠지기도 하고 다른 문제들로 중간에 싸움을 그만둔 노조원도 벌써 여럿된다.

한 해가 다 저물고 새 해가 온다고 모두들 부산을 떨며 새해맞이에 들떠있을 때, 비비드광학 손종표(30) 노조위원장은 불법집회 등의 혐의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다.

2일 밤 조사를 마치고 나온 손 위원장은 "힘들게 오랫동안 싸워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뿐만 아니라 용두동 주민들, 또 전국적으로 많은 분들이 오랜시간 투쟁을 해오고 있습니다"며 "모두 하루빨리 정든 일터나 보금자리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고 소망했다.

손 위원장은 이어 "오랜 시간 함께 해 준 동지들께 감사하고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건강하세요"하고 새해인사를 올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대통령, 또 틀렸다... 제발 공부 좀
  2. 2 대통령 온다고 수억 쏟아붓고 다시 뜯어낸 바닥, 이게 관행?
  3. 3 "물 닿으면 피부 발진, 고름... 세종보 선착장 문 닫았다"
  4. 4 채상병 재투표도 부결...해병예비역 "여당 너네가 보수냐"
  5. 5 '질문금지'도 아니었는데, 대통령과 김치찌개만 먹은 기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