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요새 신앙으로 살아가신다고. 십자가 아래 작은 아들의 사진들이 걸려있다.정세연
작은아들 태열씨가 서울대 영어영문학과에 재학중이던 당시(91년) 아들이 '서울대 민족해방활동가 조직' 사건으로 수배중이라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는 당장 학교로 달려갔다.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우리 태열이가 뭘 잘못했다고. 학교에도 자주 갔어. 우리 아들 소식 들으려면 학교로, 집회장소로 달려갔지. 누가 '태열이형 어디에서 봤어요'하면 그래도 어딘가에 살아있기는 하구나 안도하며 돌아왔지. 학교를 걸어 내려오면서 얼마나 통곡했는지..."
다시금 목이 메어오신다. 96년 6월, 작은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서울 한 예식장에서 직계가족들만 모여 조용히 올린 결혼식이었다.
"우리 태열이가 결혼하면 큰 집 사서 형하고 어머니하고 다같이 산다고 했었는데. 이제 그러지도 못해"라며 안타까워하신다.
작은며느리는 6살난 손녀와 경기도 성남에서 생활하고 있고, 큰아들은 대전에 있지만 사정상 왕래가 잦지 않다며 명절 때도 생일에도 언제나 혼자 있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그간의 외로움과 고통이 묻어난다.
"큰 거 바라지도 않어. 가끔씩 일 있을 때 다녀가고 그러기만 해도 바랄 게 없지. 이제는 그것도 힘들 것 같아. 다 포기했지 뭐. 우리 태열이 나오는 거 보고 산으로 들어갈 생각도 해. 전에도 한 번 산 속으로 들어간 적이 있지. 태열이 결혼하고 얼마 안돼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에서 자원봉사를 했어. 버려진 노인들을 모시는 거였는데 좀더 있다 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한 달에 두 번씩 면회를 가시는 어머니는 추석 면회를 고대하고 있었지만 오늘 아들에게서 오지 말라는 전화를 받았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