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칙한 '서열파괴'인사가 정치예속 심화"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 검찰 내부게시판에 '인사지침' 비판글 올려

등록 2003.03.10 15:35수정 2003.03.1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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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 이후, '인사조치'에 대한 검찰의 반발이 차츰 진정 국면으로 접어든 가운데 대검의 한 간부가 10일 오전 '검찰후배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란 제목으로 '인사지침'의 부당성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을 검찰 내부 게시판에 올려 파문이 일고 있다.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검사장)이 쓴 이 글은 노무현 정권의 검찰개혁안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어 평검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최근의 검찰개혁 흐름에 대한 검찰 고위간부의 입장이 문건 형태로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김 검사장은 A4용지 3쪽 분량의 글에서 "검찰 인사와 관련한 최근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미 마음 속으로 사표를 쓴 지 오래 됐다"고 말문을 연 뒤, 그 이유는 "나 자신을 개혁의 대상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고, 정치권력에 줄을 대거나 빌붙어 출세를 구걸하지도 않았으며…후배 여러분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취지의 이임사 한마디만 남기고 훌쩍 도망치듯 떠나는 것은 참된 공인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 검사장은 이어 "능력 있는 사람이 승진하고, 도덕성 높은 후배가 선배를 앞지르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이유와 정당성"이라며 "합리적인 원칙 없이 서열과 기수를 무시한 인사가 이뤄진다면 검사의 신분 보장이 형해화되고, 오히려 정치권에 대한 예속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열 위주의 검찰 인사 문화의 관행과 관련해서는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할 경우 총장의 선배와 동기 검사들은 용퇴하는 관행을 유지해왔다"면서 "이는 신임 총장이 소신껏 검찰을 지휘하여 국민들에게 최대한 봉사하라는 용기 있는 결단으로 이해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검찰총장의 지휘권이 확립될 수 있었으며, 법무부장관과 긴밀히 협의하여 검찰을 이끌어왔다"면서 "장관이 인사를 할 때에는 검찰총장과 긴밀히 협의해온 것이 지난 50년의 관행이었으며, 이는 검찰총장의 검사들에 대한 지휘권을 확립시키고, 정무직 장관의 정치적 색채를 총장이라는 완충지대를 통해 완화시켜 검찰의 중립을 담보하기 위한 합리적 시스템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최근 전국 평검사회의에서 적절히 집약된 바와 같이 검찰 인사는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과 충분히 협의함으로써 검찰의 의견이 반영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며 "만일 이러한 적정한 절차가 무시된다면 검사들이 인사결과에 승복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인사권자의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계속해서 "'정치검사'를 양성한 일차적 책임은 우리 검찰에게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그러한 속물적 형태의 통기와 원인을 제공한 책임은 정치권력에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총장의 후임인사와 관련해서는 "총장인선이야말로 원칙과 정도에 따라 이뤄지고 내가 수긍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나는 당연히 명예를 택하여 아름다운 퇴장을 할 것"이라면서도 "만일 수긍할 수 없는 인물이 총장으로 선택된다면 나는 결연히 이에 저항할 것이고 검찰청법에 보장된 정년까지 남아 있어야 할 치욕을 선택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나는 여러분들에 감히 외람되지만 이 땅에서 공산주의를 막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려 노력했던 검사로, 또한 검찰과 정치권력의 유착을 경계하려 하였으며, 검찰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한 검사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의 글 전문이다.


<검찰후배 여러분께 드리는 글>
검찰인사 개혁의 정체성에 관하여


사랑하는 후배 검사 여러분!

여러분의 선배로서 검찰인사와 관련한 최근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는 아미 마음속으로 사표를 쓴지 오래되었습니다.

다만 아직 제출을 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그 이유는 지난 28년간의 검사생활을 돌이켜 보건대 나는 한점 부끄럼 없는 공인의 삶을 걸었다고 감히 자부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결코 나 자신을 결코 개혁의 대상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한 나는 철저히 이를 지켰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치권력에 줄을 대거나 빌붙어 출세를 구걸하지 않았고, 이른바 실세들을 위하여 사건 심부름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도 검찰은 그 성격상 정치와 떨어져야 한다는 확고한 검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후배 여러분들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취지의 이임사 한마디만 남기고 훌쩍 도망치듯 떠나는 것은 참된 공인의 자세가 아니고 여러분들로부터 무책임한 선배라고 힐책당할까 두려워서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우화를 생각해 봅시다.

어느 시골초등학교 졸업식에서 6학년 학생들은 전원이 실력이 없고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유급을 시키고 4학년에서 대거 졸업생을 배출시켰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6학년은 자격이 없고 4학년만이 자격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까. 자연히 이런저런 소문이 무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검찰인사 개혁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진정한 개혁의 요체란 시험 기수가 앞에 있건 뒤에 있건, 늙었던 젊었던 간에 있어야할 사람이 남아있고 떠나야할 사람이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른바 개혁의 '주체'인 장관과 개혁의 '대상'이 된다는 우리가 먼 훗날 자연인으로 돌아가 골목길에서 만났을 때 서로 다정하게 손잡고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승진한 사람이 1명뿐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다수였을 때 또한 한사람의 후배가 다수 선배의 상관이 되었을 때 조직이 안게 될 미래와 그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동기들끼리의 갈등과 대립, 선후배간의 질시와 모멸감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입니까.

능력있는 사람이 승진을 하고, 도덕성 높은 후배가 선배를 앞지르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의 이유와 정당성입니다.

작금의 동향과 같이 합리적인 원칙 없이 서열과 기수를 무시한 인사가 이루어진다면, 검사의 신분보장이 형해화되고, 오히려 정치권에 대한 예속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것입니다.

오랜 기간 계속되어온 검찰 인사 문화와 관행에는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까지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할 경우 총장의 선배와 동기 검사들은 용퇴하는 관행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는 신임총장이 소신껏 검찰을 지휘하여 국민들에게 최대한 봉사하라는 용기있는 결단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명예롭게 퇴진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긍정적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검찰총장의 지휘권이 확립될 수 있었으며, 법무부 장관과 긴밀히 협의하여 검찰을 이끌어왔던 것입니다.

또한 장관이 인사를 할 때에는 검찰총장과 긴밀히 협의해 온 것이 지난 50년의 관행이었습니다.

이는 검찰총장의 검사들에 대한 지휘권을 확립시키고, 정무직 장관의 정치적 색채를 총장이라는 완충지대를 통하여 완화시켜 검찰의 중립을 담보하기 위한 합리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최근 전국 평검사회의에서 적절히 집약된 바와도 같이, 검찰 인사는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과 충분히 협의함으로써 검찰의 의견이 반영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적정한 절차가 무시된다면 검사들이 인사결과에 승복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인사권자의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 검찰사를 볼 때 이른바 '파격인사'의 예는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후유증을 남긴 사례는 없었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보면 그러한 격을 깨트리는 인사야말로 검찰을 정권에 예속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인사에 낙오가 되지 않기 위해, 또는 무리한 승진을 하기 위해 일부 검사들은 정의를 향한 열정을 버리고 검사로서의 자존심도 팽개친채 정치권력을 상대로 출세를 구걸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른바 '정치검사'를 양성한 일차적 책임은 우리 검찰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속물적 형태의 동기와 원인(遠因)을 제공한 책임은 정치권력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후배 검사 여러분!

총장이 사퇴한 지금 나는 새로운 총장님께 신고는 하고 떠나는 것이 부하로서의 도리이며 공인으로서의 자세라고 생각했습니다.

총장인선이 그야말로 원칙과 정도에 따라 이루어지고 내가 수긍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아는 당연히 명예를 택하여 아름다운 퇴장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수긍할 수 없는 인물이 총장으로 선택된다면 나는 결연히 이에 저항할 것이고 검찰청법에 보장된 정년까지 남아있어야 할 치욕을 선택할지도 모릅니다.

직위란 소동파의 말처럼 '눈위의 기러기 발자국'같은 것입니다. 눈이 조금 내리고 바람이 약간 불어도 없어지는 것, 그것이 공인의 삶입니다.

지금 나는 직위 그 자체에 아무런 미련이 없습니다.

이 땅에 검찰제도가 도입된지 100여년이 지난 오늘 우리 검찰사에서 나는 평소 법무연수원 강의 때마다 여러분을 상대로 강조한 '어떤 직위에 있었는가 보다는 어떤 일을 했던 검사인가'로 평가받고 싶기 때문에 나의 길을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후배 검사여러분!

나는 여러분들에 감히 외람되지만 이 땅에서 공산주의를 막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려 노력했던 검사로, 또한 검찰과 정치권력의 유착을 경계하려 하였으며, 검찰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한 검사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조지 패튼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의 디 데이 전날밤에 사병들에게 '앞으로 20년후 손자들에게 들려줠 말'을 다음과 같은 거친 연설로 제시했다고 합니다.

"얘야, 네 할아버지는 저 위대한 3군과 조지 패튼이라는 개자식과 함께 진격했단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검찰은 바로 그와 같은 위대한 3군과 같은 검찰, 조지 패튼 장군과 같은 거만하고 자부심 강한, 그러나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불퇴전의 군인정신과 같은 검찰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후배 검사여러분!

내가 앞으로 서열과 기수파괴의 '새로운 관행'에 따라 검찰을 떠나더라도 젊은 여러분에 대한 '영원한 큰형'으로서의 의무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찍이 마네 슈페르버(Manes Sperber)가 이미 나의 마음을 대변한 바 있습니다. '만일 새 세대가 저 낡은 오류들 가운데서 그들 자신만의 독특한 진리를 발견하리라고 믿는다면 그들에게는 어른들의 저 경험을 상기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새 세대로부터 소외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까 두려워해서 그들에게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식견을 전달하는 일을 포기하는 스승들은 이 땅에서 살아야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어른으로서의 의무를 지키기 위하여 나는 사표를 낼 때까지 얼마 안될 시간 동안 계속하여 내게 맡겨진 공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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