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검사, 당신이 바로 '수긍 못할 인물'

스스로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는 김원치 검사에게

등록 2003.03.12 10:20수정 2003.03.13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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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치 대검 형사부장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
대검 김원치 형사부장이 검찰 내부통신망에 새 정부의 검찰 인사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수긍할 수 없는 인물이 검찰총장이나 고위간부가 된다면 결연히 저항"할 것이란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참으로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분노가 치밀었다.

김원치 검사가 누구인가? 8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학생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대개 그를 잘 안다. 전두환 정권 시기 가장 '악명'을 떨쳤던 공안검사가 아닌가?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바라고,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손을 통해 감옥에 가야 했다.

필자와 김원치 검사와의 악연도 그 무렵이었다. 김원치 검사를 처음 만난 것은 1981년 4월 말인가, 5월 초쯤 서울 남부지청 검사실에서였다. 1981년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광주학살의 진상규명과 그 책임자인 전두환의 퇴진을 요구하는 학내 시위 주동 혐의로 구속되었을 때였다.

포승줄에 꽁꽁 묶여 소위 검취(검사 취조)를 받기 위해 끌려 들어간 검사실에서 김원치 검사를 처음 만나자마자 그는 서슬퍼렇게 "네가 작성한 유인물 내용이 북한 삐라에 인용되었으니 이는 중대한 이적행위"라며 겁을 주었다.

당시만 해도 학생 신분으로 운동 '초짜'였던 나는 와락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순간적으로 김원치 검사를 원망하기보다는 북한당국을 원망하며 우리의 분단현실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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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내게 법정에서 4년을 구형했다. "4년이라니? 뭘 부순 것도 아니고 누굴 다치게 한 것도 아니고 단지 광주에서 무참하게 저질러진 양민학살의 진상을 밝히라는 것인데..." 나는 지금도 내게 엄벌을 가하도록 촉구하던 김원치 검사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하얗고 무표정한, 마치 저승사자와도 같던 그의 얼굴을...

이번에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선출된 당시 남부지원의 박재승 판사가 이례적으로 '싸게' 1년을 선고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이 일로 내 부친은 당시 직장이던 조흥은행에서 강제 사직을 당해야 했고, 어머니는 그 때 교도소로 면회를 다니시며 얻은 관절염으로 십수년을 고생하시다가 결국 몇 년 전 무릎 관절을 인공관절로 교체하는 수술을 받으셨다.


그 당시 서울대, 중앙대 등 남부지청 관할 지역의 소위 공안사건은 대체로 그의 손을 거쳤으며, 김원치 검사의 '준엄한' 논고를 거쳐 관련자들은 감옥에 가야 했다. 그와의 악연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몇 년후 내가 작업에 참여했던 <한국민중사>를 발간한 풀빛출판사 나병식 선배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며, 당시 다른 일로 수배중이던 나는 다시 한번 김원치 검사와 반갑지 않은 인연을 맺어야 했다. 지금은 대표적인 교양도서로 꼽히는 <한국민중사>가 당시만 해도 이적표현물이었으며, 이 수사를 맡았던 장본인이 바로 김원치 검사였던 것이다.


그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도 그는 계속 승승장구했다. 워낙 깊은 인연이라 나는 검찰 승진 인사가 있을 때면 김원치라는 이름을 찾아보았고, 그의 승승장구를 처연한 기분으로 확인해야 했다.

세월이 흘러 '광주사태'는 광주민주화운동이 되었고, 전두환씨는 내란죄로 감옥에 다녀왔다. 그러나 전두환정권 당시 민주화 인사들을 감옥에 넣는 역할을 했던 김원치 검사가 후일에라도 이를 반성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바로 김원치 검사같은 이가 검사장까지 올라갔던 것이 그동안 우리에게는 "수긍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그가 새 정부의 검찰 인사에 대해 "수긍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표현을 쓰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조선일보를 보니 김원치 검사가 "정치권에 줄을 대지 않아 금도를 지킨 학구파 검사"로 통한단다. 또한 그는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나 자신을 한번도 개혁대상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허탈한 웃음을 넘어 다시 한번 분노가 치민다. 검찰 주변에서 "정치권에 줄을 대지 않아 금도를 지킨 학구파 검사"로 통하는 이가 이 정도면 우리 검찰의 도덕성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백보를 양보하여 설사 당시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다면 최소한의 부끄러움과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상식이다. 자기에게는 관대하고, 상대가 설사 대통령이라도 남에게는 엄격한 것이 검사들의 속성이라는 것을 지난 일요일 대통령과 검사들의 토론에서도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다.

나는 80년대 중반 무렵 유인물을 뿌리다 잡힌 학생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여 불이익을 당했던 강금실 판사를 비롯한 많은 법조인들과 스스로를 좀 비교해 보도록 김원치 검사에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제발 이제라도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많은 이들에게 겸허히 사과하는 마음을 가져주기 바란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 당신이 공안검사로 깃발을 날리던 시기는 이제 먼 훗날의 이야기가 되었고, 지금은 당신의 때가 아니다.

어차피 많은 세월이 지나 가슴에 묻어 버릴 수도 있었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내게도 조금은 고통스런 일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그 김원치 검사가 남들을 향해 "수긍할 수 없는 인물" 운운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의 표현대로 "정년까지 남는 치욕을 선택"하는 것은 그의 자유이다. 그러나 결연한 저항은 무엇인가? 전두환정권 하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던 그가 이제 와서 결연한 저항 운운하는 것은 너무도 후안무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당신에게 결연한 저항의 시기가 아니다. 김원치 검사는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많은 희생을 무릅쓰고 감행한 '결연한 저항'에 의해 바뀐 역사의 도도한 물길을 겸허히 지켜보며 자신을 되돌아보기 바란다. 진심으로 충고한다.

'김원치 검사는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라'
80년대 민주화 운동 참여자 일동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이 10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현 정부의 검찰 인사 개혁에 반발하는 글을 올리고 결코 정치권력에 줄을 대는 등 개혁 대상이 될 짓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김원치 검사가 어른으로서 공인으로서의 의무를 운운하며 검찰의 저항을 선동하는 모습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김원치 검사는 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정권 시절 출세의 지름길인 공안검사로 재직하며 안기부와 공조하여 많은 민주 인사들을 법의 이름으로 가두는데 앞장섰던 사람이다. 지난 2월에는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이 김근태 의원 고문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우리들 중에는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김원치 검사에게 직간접적으로 수사를 받고 협박을 당했던 사람들도 있다. 물론 김원치 검사에게 쫓기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해 이 자리에 서지 못한 민주 인사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김원치 검사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김원치 검사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현 정부의 검찰개혁에 반대해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

우리는 김원치 검사가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고 자중할 것을 요구한다. 김원치 검사는 스스로 정치권력에 줄을 대거나 빌붙어 구걸하지 않았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과거를 변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또한 우리는 일부 후배 검사들이 김원치 검사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우리는 후배 검사들이 과거 독재정권의 체제 수호에 앞장선 김원치 검사 같은 선배를 본받지 말고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앞장서길 당부한다.

나아가 우리는 일부 언론도 김원치 검사를 미화하는 보도를 즉각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

80년대 민주화 운동 참여자 일동

고진화, 문용식, 박종운, 안병용, 우상호, 윤성구, 윤호중, 이강진, 이규희, 이정훈, 이종운, 이인영, 정태근, 최민, 함운경, 허인회, 홍성영, 황인상.

덧붙이는 글 | 유기홍 기자는 개혁국민정당 정책위원장이다.

덧붙이는 글 유기홍 기자는 개혁국민정당 정책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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