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치 검사 지시로 고문 당했다"
김 검사장 "나를 죽이려는 음해다"

'운동권' 최용석 변호사 "수사관들에게 고문 직접지시" 폭로

등록 2003.03.14 21:59수정 2003.03.15 11:34
0
원고료로 응원
현재 울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용석 변호사는 지난 85년 소위 '깃발 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으면서, 김원치 검사장이 수사관들에게 직접 고문을 지시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현재 울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용석 변호사는 지난 85년 소위 '깃발 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으면서, 김원치 검사장이 수사관들에게 직접 고문을 지시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오마이뉴스 이승욱
"김원치 검사장은 단순한 공안검사가 아니라, 공안검사로 재직하던 5공 말기 무렵 공안검사로서의 업적을 낼 욕심이 앞선 나머지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가들에 대해 고문을 직접 지시하는 등 고문수사, 강압수사를 벌인 '고문 공안검사'다.

법조인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금도를 저버린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진작에 물러나야 할 사람이, 검찰청 수뇌부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강직한 검사인 척하는 모습은 가증스럽다."


사상초유의 검찰 인사파동과 관련, 지난 10일 검찰 내부게시판에 '검찰후배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올리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한 나는 철저히 이를 지켰다고 감히 자부한다"며 인사지침에 정면 반발한 김원치 검사장(대검 형사부장)이 80년대 공안검사로 활동하며 피의자들을 고문하도록 직접 지시했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일 전망이다.

지난 2000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현재 울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용석(45) 변호사는 13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1985년 이른바 서울대 '깃발 사건' 관련자로 체포돼 검찰에 조사를 받던 중 당시 담당검사였던 김원치 현 대검 형사부장이 수사관인 김모 경사 등에게 직접 고문을 지시했다"며 "지시를 받은 김 경사 등은 서울지검 남부지청 지하 고문실로 나를 끌고 내려가 물고문과 통닭구이 등 잔혹한 고문을 가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 퇴임…"검찰은 검찰에 맡겨라"

최 변호사에 따르면,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은 85년 당시 서울지검 남부지청 소속 검사로 주로 공안사건을 담당하다가 서울대 '깃발 사건'의 주임 검사로 수사를 벌였으며, 관련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문을 직접 지시하거나 방조했다는 것이다.

"이거 안되겠구만…, 아래로 데려가" - 김원치 검사, 조사중 '고문' 지시

3월 10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김각영 검찰총장 퇴임식에 참석한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
3월 10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김각영 검찰총장 퇴임식에 참석한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오마이뉴스 권우성
'깃발 사건'이란 지난 1984년 '깃발'이라는 제목의 유인물이 두 차례에 걸쳐 대학가에 뿌려져 공안당국이 발행자와 배포자에 대한 수사에 나선 것을 일컫는다. 당시 최 변호사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경기도 안양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85년 봄 이 사건의 관련자로 공안당국에 의해 연행됐다.


검찰이 최 변호사를 통해 알아내려 했던 것은 '깃발' 유인물을 뿌린 주모자로 지목된 황모(당시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씨의 소재였다. 황씨는 최 변호사보다 앞서 당국에 검거됐다가 다음날 경찰의 감시망을 틈타 탈출했기 때문에 검찰은 황씨의 행방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최 변호사는 당시 수사관들에 의해 처음 끌려간 곳이 남부지청 부근의 한 여관이라고 전했다. 최 변호사는 이 곳에서 수사관들로부터 4일 동안 여러 가지 고문을 당했고, 끌려간 지 나흘만에 담당검사인 김원치 검사를 만났다고 한다. 김 검사는 최 변호사에게 황씨의 소재를 추궁했고, 조사가 여의치 않자 수사관들에게 직접 고문을 지시했다는 것이 최 변호사의 얘기다.


"남부지청에서 김원치 검사를 만났을 때 김 검사가 몇 가지를 물어봤다. 김 검사는 당시 내가 가지고 있었던 문서의 출처와 '깃발'의 주모자라는 황모씨의 소재를 물었다. 그래도 대답이 시원치 않았는지 김원치가 형사들에게 '안되겠구만, 아래로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그때 느낌이 이상했다. 공포감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김 검사가 "아래로 데려가라"고 지시한 뒤 곧바로 최 변호사가 수사관들에 이끌려 끌려간 곳은 서울지검 남부지청 지하실. 최 변호사는 이 곳에서 고춧가루 탄 물로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수사관들이 남부지청 지하로 나를 끌고 갔다. 그곳은 주차장처럼 넓은 곳이었는데, 양동이와 주전자도 여러 개 눈에 띄었다. 형사들이 두 손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고는 빗자루를 중간에 걸어 대롱대롱 매달았다. 그리고 물수건을 두른 다음, 주전자로 물을 부었다. '맞냐, 아니냐'고 묻는데 '맞으면 발가락을 까딱까딱하라'고 명령했다. 소위 '통닭구이'라는 고문이 그것이었다. 수사관들은 맛이 좀 약한 모양이라면서 고춧가루까지 부었다."

약 3시간 가량 고문을 받았던 최 변호사는 고문을 당한 흔적 그대로 다시 검사실로 끌려갔다. 그러나 최 변호사는 김원치 검사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는 곧 김 검사가 고문을 지시했거나 방조하고 있었다는 의미라고 최 변호사는 단언했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그 다음이었다. 2∼3시간 고문을 당하고 다시 검사실로 올라갔다. 내심 검사가 고문당한 것에 대해 알아채고 물어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온몸이 물에 빠진 생쥐처럼 돼 있었는데 김 검사는 아무 것도 묻지도 않았다. 시국이 이렇다 저렇다 말만 늘어놓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넌 혐의가 없어서 나가지만 앞으로 주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 후 경기도경으로 옮겨져서도 많이 맞았다. 결국 끌려간 지 20여일만에 무혐의로 풀려날 수 있었다."

"고문검사가 강직한 검사 행세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인터뷰] '김 검사장 고문 지시' 폭로한 최용석 변호사

김원치 검사장의 '고문 지시'를 폭로한 최용석 변호사는 현재 울산지역 노동, 인권 관련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77학번인 최 변호사는 '부마항쟁'을 계기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지난 84년 안양의 한 공장에 취업해 생활하다 이듬해 '깃발 사건'에 연루돼 김 검사장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최 변호사는 김 검사장의 '고문 지시' 사실을 폭로한 배경에 대해 "악명높은 고문검사가 강직한 검사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최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 왜 뒤늦게 김원치 검사의 고문 문제를 거론했나.
"아직 아무도 김원치 검사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는 것 같다. 직접적인 피해자로서 마음 한 구석에만 깊게 담고 싶었는데, 이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악명 높은 고문검사가 강직한 검사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평검사들도 김 검사장의 행적을 너무 잘 모르고 있다."

- 일부 평검사들은 최근 김 검사장이 용퇴하려고 하자 말리기까지 했는데, 평검사들 사이에서는 존경받는 검사 아닌가.
"검찰 수뇌부에 대한 평검사의 생각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검찰 수뇌부 중에는 평검사가 모르는 과거 전력을 지닌 사람이 많이 있다. 또 김 검사장이 직접 글을 올렸다는 것을 알고 뒤늦게 읽어보니 '검찰제도가 도입된 지 100여년 지났다'며 이런 저런 말을 했는데, 이는 검찰 역사를 일제 때부터 보고 있다는 것이다. 난 능히 그럴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독립투사를 고문했던 일제 검사들도 한국 검찰의 역사로 보는 것이다."

- 평검사들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평검사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진실의 다른 부분만 보고 있다고 본다. 김 검사장이 정말 훌륭했다면 역사 앞에 미리 자기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고 성찰했어야 했다. 평검사들도 김 검사장이 이런 면이 있었다고 한다면 놀랄 것이다."

- 김 검사장은 자신의 글에서 '이 땅에서 공산주의를 막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려 노력했던 검사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공안검사들이 모두 개혁대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김 검사장이 정치검사로서 자신이 해 온 역할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논리의 수사학에 불과하다. 고문하는 것은 분명 정당치 못한 일이다. 그런데도 자신을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검사이며, 정치검사가 아니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 상상 못할 위선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 이승욱 기자

"터무니없는 소리…, 어떻게 검찰청사 지하에 고문실이 있나"

최 변호사의 '고문 지시' 주장에 대해 김원치 검사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나를 죽이려는 음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김 검사장은 "당시 '깃발 사건'의 담당검사였지만 고문을 지시하거나 방조한 적은 없다"며 "어떻게 검찰청사 지하에 고문실이 있을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김 검사장은 또 "경찰관들이 피의자들을 검거해서 여관에서 수사한다는 얘기를 사후에 보고 받았지만, 예전에는 관행상 여관에서 수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여관에서 수사관들이 (내 지시없이) 임의로 고문을 했을 리도 없다"고 최 변호사의 주장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김원치 검사장의 주장과 달리, '깃발 사건' 관련자들은 대부분 조사 당시 가혹한 고문이 있었다는 점을 증언하고 있다. 당시 서울대 출신의 한 인사는 "'깃발 사건'을 알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고문' 이야기는 유명했다"며 "최 변호사뿐 아니라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 대부분이 여관과 검찰에서 고문을 받았다"고 전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 2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3. 3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4. 4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5. 5 한강 노벨상에 숟가락 얹는 보수, 그들에게 필요한 염치 한강 노벨상에 숟가락 얹는 보수, 그들에게 필요한 염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