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과연 불법의료행위인가

타투이스트와 문신 지지자들의 이유있는 항변

등록 2003.10.10 09:50수정 2003.10.1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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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시술 작업을 하고 있는 타투이스트 김건원씨.
문신 시술 작업을 하고 있는 타투이스트 김건원씨.김건원 카페
문신은 고귀한 예술일까, 아니면 불법 의료행위일까.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문신은 사람들의 인식 안에서나 법적 테두리에서나 후자에 속했다. 문신 하면 용·호랑이 그림을 등에 새긴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소위 '조폭'을 떠올리며 혐오스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월드컵 스타인 영국의 베컴이나 안정환 선수, 연예인의 몸에 새겨진 문신을 같은 선상에서 보는 이는 드물 것이다.


하지만 변화는 천천히 하지만 뚜렷하게 오고 있다. 우리나라 문신인구는 약 5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들은 모두 '불법 의료행위'를 통해 문신을 받은 셈이다.

문신이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로 조금씩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안 선수를 바라보는 눈들의 변화, 그리고 놀랄만큼 늘어난 문신 인구를 볼 때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문신은 예술이다"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 문신의 상징적 사건, 타투이스트 김건원 사건

음지에만 묻혀 있던 문신이 세인들의 관심을 끌게 된 계기는 타투이스트(tatoo 문신 + artist 예술가의 합성어) 김건원(27. 여)씨가 지난 6월 13일 '병역기피자에게 문신'(문신을 하면 현역병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악용해 병역기피의 목적으로 문신을 하는 경우)을 새겨줬다는 혐의로 구속되면서부터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문신 시술 당시, 김씨 자신은 '병역 기피용 문신'이라는 점을 몰랐다는 점이 인정돼 무혐의 판정을 받았으나, 검찰에서 '문신시술은 불법 의료행위다'라며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위반 혐의로 김씨를 다시 기소했다. 김씨가 불법 의료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를 인정, 징역 1년 벌금 300만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이에 항소했고 '보건범죄단속특별법과 의료법이 의료 행위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짓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낸 상태다.

중학교 때 헤비메탈 밴드를 보며 문신에 눈을 떴다는 김씨. 그는 미대진학 뒤 유학과 더 좋은 나라에서 문신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우리나라에 문신예술을 꽃피우기 위해 꾸준히 작업을 해왔다. 그는 영화 '조폭마누라' 주인공 신은경씨 등에 용 문신 분장을 한 것을 포함, 가수 GOD의 뮤직비디오, 각종 연극, 퍼포먼스 등 작업을 해온 한국의 대표적 타투이스트로 인정받았다.


김씨가 구속된 뒤 그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퓨전국악 가수인 장군(27)씨는 인터넷 카페(cafe.daum.net/artistgun)를 통해 구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많은 네티즌들과 문화예술인들이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됐고, 급기야 지난달 8일 '타투 법제화추진위원회'(이하 타법추)가 발족했다.

타법추 발족을 위해 가수 신해철·윤도현·김종서·이상은·쿨·DJ DOC·이적·김진표씨, 만화가 박재동씨, 영화배우 방은진씨, 연기자 안재욱·김민선씨 등 문화예술인들이 서명했고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 임성환 <아웃사이더> 대표, 이동연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장, 상지대 김정란 교수 등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9일 현재 온오프라인을 통해 1만여명이 서명한 상태다.

타법추는 첫 행사로 지난달 19일 서울 홍대 Z클럽에서 '터법추 후원의 밤 공연'을 열기도 했다.

위원회에 참여한 조한혜정 교수는 "문신에 대한 고정관념은 개인의 인권과 표현의 자유, 경제발전의 측면에서 역기능적"이라며 "창의적인 예술가들이 능력을 발휘하고 위생관리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문신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동참이유를 밝혔다.

만화가 박재동씨도 "이번 김건원씨 구속사건은 작아보이지만 표현의 자유 등 우리 문화의 좌표가 어디에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며 "부작용이 염려스럽다면 오히려 국가에서 법제화를 통해 교육시키고 약품 검열을 해야 하지 않겠나"고 주장했다.

가수 이적씨 역시 "개인의 문신의 선택 여부를 타인들이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한국적인 상황이다, 문신을 사회악인 것처럼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아쉬워한 뒤 "몸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격화된 절차가 있으면 좋은데 그 영역이 의료행위보다 자기표현행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홍대 Z클럽에서 있었던 후원공연 장면. DJ DOC와 참가자들이 신명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19일 홍대 Z클럽에서 있었던 후원공연 장면. DJ DOC와 참가자들이 신명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물꽃/0150

일본, 젊은이 10명 중 1명은 문신

미국·유럽과 일본의 경우 대체로 문신은 문화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공통되는 점은 타투이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 미국이나 유럽에는 보통 1년 짧게는 6개월의 기간으로 문신을 배울 수 있는 학교나 스튜디오가 있다.

일본은 기존의 타투이스트(호리시)로부터 문하생의 관계로 기술을 전수받는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타투이스트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일정시간의 위생 교육을 받아야하고 2000 시간 이상 전문가 밑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

미국의 경우 과거 매사츄세츠 등 5개의 주 및 클리블랜드 등 주요 도시들은 한국과 같이 의사만이 문신시술을 하도록 허용하고 있었으나, 매사츄세츠 주에서 위헌판결이 나온 이후 켄터키 주와 같은 개방된 형태의 규제로 전환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기업에서조차 문신에 대한 금기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8월 28일 "문신(tattoo)이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찾는 단어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보잉, 포드자동차, 월마트 등 미국의 많은 대기업들은 혐오스럽지만 않다면 직원들의 문신을 규제하지 않고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문신은 이미 대중화됐다. 한국으로 유학온 스기모토 아즈미(24)씨는 "일본 젊음이들 10명 중 1명은 문신을 했을 정도로 대중화됐다"며 "한국에서 김건원씨가 구속되는 사건을 보고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문신은 위법" VS "법적으로도 문제되지 않는다"

타투법제화추진위에서 만든 후원 공연 포스터. Soul on your Skin(내 피부안에 표현된 영혼)이란 문구가 눈에 띈다.
타투법제화추진위에서 만든 후원 공연 포스터. Soul on your Skin(내 피부안에 표현된 영혼)이란 문구가 눈에 띈다.김건원 카페
지난 8월 22일 수원지법 형사10단독 김한용 판사는 김건원씨에 대한 선고 판결문에서 "문신 시술 행위는 의학적 전문지식으로 진찰, 처방, 투약 등을 시행해 질병 예방이나 지도를 하는 의료행위로 볼 수 있다"며 "시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신체적 위험 초래 가능성 등을 고려해 유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김씨 외에도 6월을 전후해 많은 타투이스트들이 구속된 뒤,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에서도 '문신은 위법'이라고 규정 짓고 문신 시술을 차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말이다.

"문신은 위법이다. 문신을 통해 국민들이 피해를 입거나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에 차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개인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이상으로 세균 감염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의료인만이 시술을 할 수 있다. 바늘이 얼마든지 혈관을 건들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문신의 합법화에 대해서는 검토하는 바 없다. 문신하는 사람들이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부작용도 심각하다. 지금까지 감염 등 피해를 입은 사례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해 문건영 변호사(법무법인 한결)는 "대법원 판결에는 문신이 의료행위에 포함됐지만 헌법재판소 정의를 보면 들어있지 않다"며 "때문에 김건원씨에 대한 유죄 판결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누구나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지난 92년 의료행위에 대해 "의사가 하지 않으면 보건위생 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문신이 보건 위생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반면 헌법재판소는 지난 96년 "의료행위는 의학적 전문지식으로 진찰, 처방, 투약 등을 시행해 질병 예방이나 치료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정의해 문신시술을 의료행위에 포함하지 않았다.

"문신은 고통의 예술이다"
문신 경험자들이 말하는 '문신은 무엇인가'

▲ 지난달 19일 만난 하양수·김태훈·장동호(왼쪽부터)씨는 모두 문신은 '고통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지난달 19일 타법추 후원 공연장에서 김건원씨에게 문신시술을 받은 몇 사람을 만났다. 이들은 김씨와의 면담을 통해 '문신=예술'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고, '고통'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어깨 문신을 새긴 김태훈(25. 휴학생. 마산 거주)씨는 "김건원씨를 만나서 면담을 했는데 문신을 사업적으로 이용한다기 보다 예술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며 "몇 차례 면담을 통해 결심을 했고, 7시간 동안의 밤샘작업을 통해 시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문신은 고통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며 "그 과정이 별거 아니라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라고 부연했다.

락 밴드 위치스의 보컬 겸 베이스를 맡고 있는 하양수(25)씨의 어깨에는 기타 피크 모양과 No M(usic) No Life라는 문구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하씨는 "어머니께서 문신한 것을 보시고 첫마디가 '예쁘다'라고 하셨다"고 웃으며 "내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하는 것처럼 내가 큰 용문신을 했다면 억지였을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문신을 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패션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화려한 문신을 자랑했던 장동호(28. 건축업)씨는 "몇 번의 상담 끝에 문신 시술을 받았는데 4시간씩 4번에 걸쳐 작품 완성을 했다"며 "(문신은) 평생 따라 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시술) 기계가 돌아갈 때 만감이 교차했다"고 고백했다. "어릴 때 목욕탕에서 본 문신은 용, 호랑이 등이 전부"였다는 장씨는 "최근 목욕탕에서는 진짜 예술작품 같은 문신을 한 사람들을 자주 본다"며 "서로 '예쁘네요, 어디서 했어요'라고 친해지기도 한다"고 미소지었다.

문신의 변화사

문신은 기원전 4000년경에 이집트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원전 2800년경 이집트는 크레타 섬과 그리스, 페르시아, 그리고 아라비아와 왕래하며 기술을 주고받았습니다. 기원 전 2000년경에는 문신이 남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되었고, 그 후 태평양의 여러 섬들로 퍼지면서 디자인·색·표현 등이 화려해지고 기술도 크게 발전했다.

유럽이나 미국에 문신이 전해진 것은 그 이후의 일인데, 문신은 지역에 따라 가문의 문장으로서 표시되는 등 신성시되거나 존중받기도 하고, 반대로 배척 당하기도 했다.

특히 기독교회는 문신을 야만적 행위라 하여 제동을 걸었다. 교황 하드리아누스1세는 787년에 니케아의 공회의에서 문신을 금지했고, 그 금지포고는 그 다음 세기 교황의 교서에까지 되풀이됐다. 그러나 비록 그리스의 카톨릭과 정교회의 종파들에 국한된 것이었지만, 17세기와 18세기경에는 교회가 문신을 장려하기도 했다. 콥트(고대 이집트인의 자손) 교회의 많은 신부들이 문신을 했으며 팔이나 가슴에 새기는 종교적 무늬의 문신은 세르비아나 불가리아인, 그리고 카톨릭 유라시아인들에게 하나의 전통이 됐다.

19세기 중반부터는 프랑스, 팔레스타인, 이탈리아, 함부르크 등에 직업적 타투이스트들이 활동했다고 한다. 1870년대에는 영국 최초의 타투이스트 데이비드 퍼디(David Purdy)가 활동했고, 1890년대에는 톰 릴리(Tom Riley)와 서덜랜드 맥도날드(Sutherland Macdonald)가 타투이스트로서의 명성과 막대한 부를 얻기도 했다.

이 두 사람은 서양최초로 문신과 예술이라는 말을 함께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두 사람은 에드워드 7세(Edward 7th)에게 문신을 해 주기도 했는데, 지금도 팔레스타인의 성지를 찾는 많은 여행자들 중에는 그곳에 있었던 문신학교를 관광지로 방문하기도 한다. (법무법인 한결 '헌법소원심판청구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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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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