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우리 가족 모두 굶습니다

[하자하자 평화단식 캠페인] 박명인씨 가족

등록 2003.10.31 11:55수정 2003.11.0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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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두 아이의 아빠, 엄마로 살고 있는 '386 세대'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오는 11월11일 하루동안 단식을 선언했습니다. <오마이뉴스>와 한국청년연합회(KYC), 대한불교청년회, 한국기독청년협의회,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등 4개 청년단체가 공동으로 캠페인을 벌이는 '파병반대, 하자!하자! 평화단식'에 참여하기 위해섭니다.

또 이들 부부는 이날 세 끼를, 두 딸은 아침 한 끼를 굶고 모두 여덟 끼니의 밥값을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보내겠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가족과 단체, 그리고 개인을 찾아 나설 예정입니다. 우선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기 위해 생활속에서 '작은 실천'에 나선 이 가족을 소개합니다. 아래는 이들 가족을 인터뷰 한 후 이를 재구성한 것입니다...<편집자 주>


* 아래 배너를 클릭, '파병반대, 하자하자 평화단식' 캠페인에 참여해 주십시오.



a '파병반대, 하자하자 평화단식'에 참여하는 박명인(37·맨오른쪽), 박용익(37·맨왼쪽)씨 가족. 가운데가 두 딸 상아(9)와 소정(5).

'파병반대, 하자하자 평화단식'에 참여하는 박명인(37·맨오른쪽), 박용익(37·맨왼쪽)씨 가족. 가운데가 두 딸 상아(9)와 소정(5). ⓒ 오마이뉴스 남소연

우리 부부 얘기 좀 들어 보실래요?

우리 부부는 모두 '전대협 세대'입니다. 종철이가 고문에 죽고 한열이가 경찰의 최루탄에 스러졌던 87년, 우리는 강의실 보다 거리에 섰던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때 우리의 꿈은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 땅에도 민주주의가 싹틀 날이 올까, 우리가 그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을까. 시대는 암울했고, 우리는 고민보다 실천을 먼저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단식도 했습니다. 한창 '운동'하던 시절 '단무지'라는 별명을 가졌던-정말 한참만에 다시 내뱉어보는 말입니다-내 남편 박용익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를 외치며, 그리고 '장비'라 불렸던 나 박명인은 "6월항쟁의 뜻을 계승하자"며 말입니다.

'시절이 하수상'했던 때, 우리의 단식은 그리 이상할 것 없는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었습니다.


우리 둘, 단무지와 장비는 스물 일곱 되던 해 가정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벌써 10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우리는 둘이 아니라 넷입니다.

'한열이를 살려내라'며 거리에 섰던 '장비'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됐고, 조국통일을 꿈꿨던 '단무지'는 자그마한 사업체를 이끄는 대표입니다.

그리고 다섯 살·아홉 살바기 두 딸 소정이와 상아가 이젠 우리의 희망입니다. 어느 날 문득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나이는 이렇게 30줄을 훨씬 넘어섰고 정치보다는 살림에, 사상보다는 생활에 묻혀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가 평범하지 않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어쩌면 가장 평범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 시절, 거리에서 구호 외쳐보지 않은 사람들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임종석이 단식을 한다고?

a 이번 '파병반대, 하자하자 평화단식'에서 아침 한끼를 굶을 예정인 상아·소정양.

이번 '파병반대, 하자하자 평화단식'에서 아침 한끼를 굶을 예정인 상아·소정양.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런데 얼마 전 같은 전대협 세대인 임종석 의원이 전투병 파병을 반대한다며 단식농성에 나섰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껏 생활에 찌들어 살아왔는데, 그래도 저 사람은 아직도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구나. 우리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평화단식'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의 밥값으로 이라크를 돕자는 얘기였습니다. '아!'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마음이나마 보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난 29일 저녁, 오랜만에 우리 가족은 머리를 맞댔습니다.

명인: 밥은 우리가 사는 힘이잖아. 생활이기도 하고 사는 낙이기도 하고. 그걸 굶고 그 돈을 이라크에 보낸다는 건 단순한 의미가 아니야. 내가 굶음으로써 내가 가진 걸, 내가 먹을 걸 나눈다는 거잖아. 정말 절실한 마음인 거지.

용익: 그렇지. 내 밥을 내가 굶고 다른 이에게 준다는 것은 목숨을 나눈다는 의미도 있으니 더 설명이 필요 없지.

명인: 사실 대통령이 파병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건데. 전투병을 보내면 또다른 전쟁의 근거가 될 수도 있고, 전쟁 중보다 전쟁 후에 더 사상자가 많은 곳에 파병을 한다는 건 말이 안돼. 게다가 나는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도 반대야. 분명히 자원하는 군인들은 대부분 서민층일텐데.

용익: 이라크 전쟁 자체가 명분이 없으니까. 국제적 동의를 얻은 것도 아니고 미국이 군사주의적인 논리를 내세워서 일방적으로 침략한 것이니까.

우리나라는 오히려 반전운동을 해야 하는데 미국의 전쟁놀음에 희생되기 위해 파병한다면 용납이 안되지. 우리 자존심도 문제고. 사실 대통령이 재신임을 국민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파병여부에 대해 물어야 하는데 말야.

상아: 엄마, 근데 '파병'이 뭐야?


14년 만에 다시 하는 단식, 나누기 위해 한다

우리의 말이 너무 어려웠나 봅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딸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설명을 들은 후 상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할거야. 내가 배고프면 이라크의 아이들도 배가 고플텐데. 지금 이라크 아이들은 나처럼 좋은 집에서 편하게 살지 못하고 있잖아."

그래서 우리가족은 11월11일, 굶기로 했습니다. 소정이와 상아는 아침 한끼를, 우리 부부는 세끼를 굶고 모두 여덟 끼니의 밥값을 이라크에 보낼 작정입니다.

소정이와 상아는 밥을 엄청 좋아합니다. 게다가 아침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우리 아이들에게 아침을 굶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과연 아이들이 버틸 수 있을까요? 소정이는 너무 어리니 모르겠지만 상아는 아마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나누는 마음'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겠지요. 엄마, 아빠에게 저렇게 의젓하게 얘기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가족회의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누웠습니다. 14년만에 단식을 한다고 생각하니 많은 생각이 밀려 왔습니다. 과거에 나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단식을 했는데, 이제 나는 나누기 위해 단식을 합니다.

할 수 있을까, 솔직히 걱정스런 마음도 슬금슬금 밀려 듭니다. 주변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니가 하루를 통째로 굶는다고?"라며 반신반의합니다.

생각해보니, 그간 일상에 묻히고 타성에 젖어 살아온 내게는 개인적인 '의지의 시험'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굶을 겁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세대, 우리 가족과 같은 서민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생활인들이 나서야 한다고. 같이 굶고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자고 말입니다.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박용익·박명인씨의 딸 상아가 소개하는 우리가족

아래는 이번 '파병반대, 하자하자 평화단식'에 참여하기로 한 박용익(37)·박명인(37)씨의 큰딸 상아(9)가 지난 해 10월 만든 가족신문인 <상아의 노래>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박용익: 우리 아빠예요. 66년 4월 출생. 별명은 '박 가이버'. 자상하지만 가끔 무서워요. 엄마가 만들어주시는 음식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내가 버릇없는 행동을 하면 가장 싫어하세요.

박명인: 우리 엄마. 66년 4월 출생. 우리 엄마는 영화 보는 게 취미예요(나한테 잔소리 하는 것도 취미구요). 화 내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제일 포근한 우리 엄마입니다.

나(상아): 95년 11월 서울 출생. 나는 돼지띠예요. 재밌는 성격이지만 가끔 말썽을 피워서 엄마, 아빠를 속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우리 동생(소정): 99년 11월 출생. 토끼띠입니다. 뭐든지 방해하고 내 공책도 찢고 도무지 못말리는 우리집 말썽꾸러기입니다. / 정리=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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