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김 부친 김상영옹 사경 헤매

"내 아들 얼굴 한 번이라도 보고 눈 감을 수 있다면..."

등록 2004.02.04 09:02수정 2004.02.0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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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김의 어머니 황태남 여사
로버트 김의 어머니 황태남 여사김범태
“내 아들 채곤이의 얼굴을 단 한번이라도 보고 눈 감을 수 있다면….”

지난 96년 미 연방수사국(FBI)에 '국가기밀 누설 간첩죄'로 체포돼 펜실베이니아 앨런우드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지난달 31일(한국 시간) 윈체스터 교도소로 이감된 로버트 김(64·한국명 김채곤).

그의 아버지 김상영(91)옹은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서 생의 마지막 길을 힘겹게 걷고 있다.

아들이 외부접촉이 조금 자유스러운 수감생활을 하게 됐고 오는 7월이면 출감하게 된다는 소식에도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다. 뇌졸중과 심장병 등 지병으로 병석에 누워있는 김옹은 그간 수차례 사경에 처했지만, 그 때마다 아들을 그리며 초인적인 투병 의지로 생명의 끈을 이어왔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 병세가 급격히 악화해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3일(화)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에덴요양병원(병원장 박종기) 301호 병실에서 만난 김옹은 식사는커녕 의식마저 가물가물해 의사소통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8월 혼수상태에서도 아들이 보내온 육성테이프를 듣고 의식을 차린 그는 평소 “우리 착한 아이가 어쩌다 이런 기구한 운명에 다다랐는지 모르겠다”며 “부디 건강하게만 있다 나오라”고 노심초사 하면서 아들의 건강을 염려했다고 한다. 또 금방 마무리 될 줄 알았던 일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며 한스러운 세월을 곱씹었다는 것.

이미 알려진 대로 로버트 김 역시 아버지의 건강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가 조금만 더 나를 기다리셔서 임종하실 때라도 곁에 있고 싶다”며 이역만리에서 눈물어린 ‘사부곡’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날 아침 부인 장명희씨에게 “아버지에게 너무 고통을 주지 말라”며 애틋한 심경을 전해왔다.


현재 김상영옹을 간호하고 있는 부인 황태남(83) 여사는 아들의 이야기를 꺼내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답답할 뿐”이라는 목소리에는 한스런 세월의 흔적이 녹아 있었다. 팔순 노인의 입술은 이내 파르르 떨려왔다.

의식마저 불투명한 남편 김상영 옹을 간호하는 황씨
의식마저 불투명한 남편 김상영 옹을 간호하는 황씨김범태
황 여사는 이날 “(남편의)눈을 보니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날 것 같아 불안하다”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부디 채곤이가 아버지 손을 잡고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켰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며 애써 참아왔던 눈물을 떨구었다.


아들이 간첩혐의로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부랴부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황 여사. 그녀는 구속에 앞서 감호소에 수감되어 있던 아들을 보며 별다른 이야기도 주고받지 못한 채 눈물만 보이고 헤어졌다.

그것이 벌써 7년의 모진 세월이 되어 흘렀다. 그리고 지금 남편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녀도 유방암 수술 후유증과 허리 통증으로 간병인의 도움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녀는 이날 아침 며느리 장씨의 전화를 받고 아들이 집에서 가까운 교도소로 이감된 것을 알았다. 며느리의 목소리는 한결 밝아졌다. 황여사는 그동안 며느리를 통해 아들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서신을 많이 주고 받았지만 그간 경황이 없어 서로 편지 연락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황 여사는 로버트 김이 이감되면서 한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결국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됐지만 석방을 앞둔 지금도 후회는 없다.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 “미국 시민권자인데도 고국을 생각해서 비밀서류를 넘겨준 것은 보통 용감한 것이 아니다”하며 ‘장한 아들’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과의 재회를 애타게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노부부
아들과의 재회를 애타게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노부부김범태
아들이 구속된 이후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적신 노모는 “그 아픈 마음을 어떻게 말로 다 하겠는가마는 채곤이를 만나면 ‘우리 장한 아들, 오랫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을 가장 먼저 해 주고 싶다”면서 그동안 마음에 묻어왔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지금 “빨리 나와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임종을 지켰으면 한다”는 말을 아들에게 가장 하고 싶다고 했다. 깊게 패인 주름에는 그간 말 못하고 마음을 졸였던 시름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였다. 떨리는 목소리에는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스며있었다.

로버트 김이 아버지의 마지막 임종만이라도 지킬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 이 노부부의 마지막 소원이다. 하지만 이러한 애틋한 사정에도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양국 정부의 무관심이 눈물마저 말라버린 이들의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하고 있다.

황 여사는 그간 로버트 김의 석방을 위해 힘 모았던 국민들에게 “우리 아들에게 성원을 보내 주셔서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특히 이날 500만원의 후원금을 기탁한 가수 이수영씨에게 “여러분께 너무 많은 빚을 졌다”며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채곤아. 아가.
건강하게만 나오너라. (어미는) 그것뿐이다.
아버지가 얼마나 너를 보고 싶어 하시는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네 얘기를 하면 눈을 번쩍 뜨신다.
너를 보려고 그러시나 보다.
빨리 나오기만 바란다.


가슴에 묻어온 아들 채곤에게 보내는 어머니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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