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김 사건, “노 대통령 직접 나서야”

[인터뷰]이웅진 로버트 김 후원회 회장... 인도주의적, 동포애적 차원에서 호소

등록 2004.02.12 16:18수정 2004.02.1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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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적이고 동포애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웅진 회장.
인도주의적이고 동포애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웅진 회장.김범태
지난 96년 미국에서 스파이 혐의로 기소된 이후 9년째 복역하고 있는 로버트 김(64·한국명 김채곤)의 국내 후원회(회장 이웅진) 회원들은 지난 10일 오전 병상에 누워 의식을 잃은 채 아들과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는 로버트 김의 부친 김상영(91)옹을 찾았다.

후원회가 김옹을 방문한 것은 지난해 8월 이후 이날이 두 번째였다. 방문을 마친 이웅진 후원회장은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결국 부시 대통령에게 로버트 김의 사면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노 대통령이 사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후원회는 “로버트 김 문제가 정치적으로 비화될 경우 미국과의 마찰 등 여러 가지 민감한 사안이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며 이 문제가 정치적 사안으로 쟁점화되거나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웅진 로버트 김 후원회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윈체스터 이감 후 안정 되찾아

- 병상의 김상영옹을 직접 만난 심경은?
"죄송하고 착잡하다. 로버트 김이 모국애 때문에 이런 상황에 처했는데도, 정작 그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뵙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 미국의 로버트 김 가족들과 오늘 방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나?"
"지난 9일과 오늘 아침 부인 장명희씨에게 찾아뵌다고 말씀드렸다. 부인께서 아버님의 상태에 대해 마음 아파하며, 많이 안타까워했다. 오늘 비록 의식은 없지만 아버님께 그 마음도 함께 전했다.

- 윈체스터 교도소로 이감된 이후 로버트 김의 생활은?
"윈체스터로 옮겨지면서 상당히 많이 혼란스러워 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새로운 환경에 성실하게 적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노 대통령이 관심 가져야

로버트 김 후원회 회원들이 병상의 김상영 옹을 찾았다.
로버트 김 후원회 회원들이 병상의 김상영 옹을 찾았다.김범태
- 무엇보다 정부가 제1의 협상 대상이다. 최근 한 일간지에 “다행스럽게도 현재 관련 부처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인도주의적, 동포애적 차원의 해결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는데, 정부와의 대화는 어느 정도까지 진척되어 있나?
"우리는 이 사건이 터졌을 때, 정부가 상당히 미흡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당시, 이 사건이 정부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에 대해서는 상당히 섭섭하고 아쉽지만, 외교적 차원에서 그럴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생각한다.

그러나 후원회 출범 이후 인도주의적이고 동포애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꾸준히 요구해 왔다. 왜냐하면 정부의 입장은 로버트 김이 미국 시민권자인데다 내정간섭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마음은 아프지만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동포애 차원에서 사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고, 정부 담당자들도 많이 가슴 아파하며, 유연하게 해결해 보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자세한 사안은 아직 말씀드리기 곤란하다."

- 사면 결정권자가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에, 현실적 부담이 크다. 미국 정부에 대한 탄원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가.
"후원회 출범 이후 작년 8월 경 미 대사와 부시 대통령에게 로버트 김의 가족 면회가 가능하도록 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 탄원서는 미 법무부의 담당자에게 보내졌고, 해당 담당자가 호의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답신을 9월에 보내왔다.

미국은 전적으로 대통령에게 사면권한이 있다. 결국 부시 대통령에게 이를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의 노무현 대통령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을 때, 비로소 해결이 가능하리라 본다."

- 이 문제가 미국 대선과 맞물려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없나? 스파이 사건이기 때문에 현지 보수 여론이 다소 민감해 질 수도 있을 텐데…."
"후원회 회원 중 한 분이 미국 대선이 있기 때문에 현지의 교포들에게 호소해서 탄원서를 올리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여러 문제를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인도주의적 해결 기대, 정치권 이용은 경계

- 정치권과 다소 거리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가 정치적 사안으로 쟁점화되거나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후원회 측의 입장으로 알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로버트 김 문제가 정치적으로 비화될 경우 미국과의 마찰 등 여러 가지 민감한 사안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아무래도 이 전에 구명위원회나 석방위원회 시절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흘렀다는 생각이다. 이 문제의 가장 바람직한 해결을 위한 토론에서 후원회는 순수 민간 차원에서, 인도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있었고, 그 결과에 부응해서 움직이고 있다."

- 하지만,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권의 도움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 아닌가.
"물론 도움은 받을 것이다. 우리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이런 모임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과, 도움받는 것을 구분 짓는 것이다."

- ‘도움’과 ‘이용’은 어떻게 다른가?
"일단 무엇보다 보호관찰 3년 사면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 나서서 해결해 주길 바란다. 그게 안 될 경우 정치권에 부탁할 생각이다. 로버트 김은 조국을 위해 일하다 희생됐다. 그럼에도 조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어한다. 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드는데 필요하다면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다."

로버트 김과 그 가족의 행복이 가장 중요

- 로버트 김 사면을 위한 장외집회를 제안하거나 서명운동 등 ‘압박용’ 움직임 역시 필요한 것 아닌가?
"지금은 합리적이고, 차분하게 문제를 해결해 간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전제다. 정부 실무자들에게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공을 던진 것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을 믿는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유능한 분들이 외교관이나 여러 요소에 있다고 본다. 그들이 먼저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방침이다. 대외 압력이나 여타의 움직임은 그 다음에 취하자는 입장이다."

- “조용히, 과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후원회측의 입장이 너무 미온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다. 얼마든지 도움을 바라고, 후원회의 세력을 키워서 우리가 원하는 바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이런 문제가 과연 로버트 김과 그 가족의 행복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젊은 나이의 혈기를 생각한다면 항의시위나 규탄도 하고 싶지만, 결국 이들의 행복을 도출하기 위해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문제의 해결이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정부가 한때 국익과 관련되어 있다는 이유로 로버트 김 문제를 외면했다. 그러나 조국을 위해 이렇게 희생한 사람을 끝까지 외면하는 것이 국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을 건강하게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국익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움직이지 못할 때 민간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인에게는 ‘남에게 신세지면 갚아야 되는’ 정서가 있다고 본다. 국제화 시대를 맞아 한국인이 세계 각처에 나가 있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모국을 생각하고 있다. 그 모국을 위해 일하다 상처입고 희생됐을 때 누군가는 나서서 보상을 한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 모두를 위해 건강하다고 본다."

그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

- 로버트 김 석방 이후 그에 대한 보상 문제도 중요한 해결과제인데, 그에 대한 보상 문제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로버트 김은 돈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는다. 순수한 사람이다. 보상에 대한 이야기도 후원회에서 꺼냈다. 그는 만약 조금의 보상이라도 있다면, 전부 남은 인생의 제 2막을 여는 데 사용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불우청소년을 돕고, 후진양성을 위한 교육장학사업이다. 그런 비용을 위해서라도 보상은 이루어져야 하며, 또 그렇게 사용될 거라 생각한다."

- 후원활동을 주도적으로 진행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국민들에게는 너무 감사한다. 1만원, 2만원씩 모인 성금이 벌써 5000만원을 넘어섰다. 그런 힘이 8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하며, 후원회가 힘들지만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로버트 김은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미국 사회에서 국가 1급 비밀을 보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겠는가. 지난 8년 간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사경을 헤메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당사자는 이렇게 참담하게 되었는데, 그를 이렇게 만든 많은 과정에 있던 이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 불만이고 큰 아쉬움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국가기밀을 자국에 넘겨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던 폴라드에게 시민권을 주고, 끝까지 당신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는 로버트 김과 같이 해군 정보국에 근무하던 사람이었다. 사건 발생 이후 총리가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를 면회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로버트 김은 같은 상황에서 모든 것을 잃었으나, 누구 하나 나서지 않고 있다. 모른 체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답답하고 속상하다. 누구든지 우리를 위해 상처를 입으면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 준다는 선례를 남겨야 한다."

- 사회의 인식도 일관되고 명확해져야 한다고 했는데,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는 순수한 모국애로 우리를 돕다가 모든 것을 잃었다. 우리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로버트 김과 그 가족이 행복해 질 수 있도록 지금까지와 같은 국민적 성원과 정부가 돕는다면 우리가 원하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정부 담당자들도 여러 어려움과 문제가 있겠지만 힘을 보태 달라.

나라 없는 국민은 있었지만, 국민 없는 나라는 없다. 언론에 비쳐 질 때만 잠깐 관심을 보이고, 식상해지면 없던 일처럼 잊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지속적인 관심을 쏟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에도 좋지 않겠는가. 결과가 있을 때까지 담당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끊임없이 노력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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