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김 부친 김상영옹 쓸쓸한 영결식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로버트 김 육성 편지에 가족 오열

등록 2004.02.15 08:09수정 2004.02.1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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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아들과의 재회를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은 로버트 김의 부친 김상영옹의 영결식장
끝내 아들과의 재회를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은 로버트 김의 부친 김상영옹의 영결식장김범태

사진 속의 부자는 함께 미소 짓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아들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불효자를 용서해 달라”며 흐느끼는 애절한 목소리만이 탁한 녹음기를 타고 흐를 뿐이었다.

그토록 소망하던 아들의 석방을 보지 못하고 한스러운 생을 마감한 로버트 김(64·한국명 김채곤)의 부친 고 김상영옹의 영결식이 빈소가 마련된 현대아산병원에서 15일(일) 오전 열렸다. 그간 병석에서도 장남인 로버트 김의 석방을 간절히 바랐던 고인은 아들의 출감을 꼭 164일 앞둔 지난 13일(금) 새벽 5시쯤 치료를 받아오던 경기도 에덴요양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이날 김옹의 영결식에는 미망인 황태남(83) 여사와 동생 김성곤 전 의원을 비롯한 유가족과 친지, 이웅진 로버트 김 후원회장 등 50여 명의 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동욱 전 동아일보 회장이 고인을 추모하는 글을 읽고 있다.
이동욱 전 동아일보 회장이 고인을 추모하는 글을 읽고 있다.김범태
이날 영결식에서 이동욱 전 동아일보 회장은 조사를 통해 "고인은 우리 민족 현대사의 경제계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헌신한 인물"이라고 기리며 "그 업적을 따라 국가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웅진 로버트 김 후원회장은 "가슴아픈 분단 현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비극의 현장"이라며 "다시는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영결식에서는 특히,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두 달 전 녹음했다는 로버트 김의 육성테이프가 전해져 지켜보는 이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로버트 김은 이 테이프에서 그간 장남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며 “출감할 때까지 만이라도 살아주신다면 모든 정성을 다해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고 김상영 옹은 전남 여수 출신으로 부산상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한 이후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에 입행, 한국은행 조사부장과 금융조합연합회(현 농협) 이사, 한국은행 부총재, 전경련 초대 상근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정계로 진출한 후로는 8, 9대 국회의원(전남 여수-여천)을 지냈다.


고인은 로버트 김이 수감된 지 3년만인 지난 99년 연방교도소에서 아들을 면회한 뒤 충격으로 쓰러져 휠체어로 귀국한 이후 뇌졸중과 심장병(불안정협심증)이 겹치며 수차례 사경에 처해왔다. 하지만, 그 때마다 아들을 그리며 초인적 투병의지로 생명의 끈을 이어왔다.

고인의 유해는 이날 오후 전북 익산시 영묘묘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한편, 영결식 후 로버트 김의 부인 장명희씨는 기자회견을 갖고 "로버트 김은 지금 출소를 앞두고 하루 하루 열심히, 희망적으로 살고 있다"며 남편의 근황을 전했다.

장씨는 이 자리에서 "보호관찰 3년이 남편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면서 조국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남편이 보호관찰이라는 제약 때문에 또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나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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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에서 보낸 로버트 김 육성 녹음 편지
"잠드신 아버님께 올립니다" ... 아버님 교훈대로 정의롭게 살 것

잠드신 아버님께 올립니다.

저 채곤입니다.

건강하셨던 아버님께서 제 출감하는 날까지 늘 옆에 살아 계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낮 우리 인간의 생각이었고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아버님에게 고통을 주실 수 없어 이제는 모시고 가시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께서 이 한 많은 세상에 살아 계실 때 저를 만나고 싶어 하신 줄 잘 압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꼭 뵙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제가 처해 있는 상황 때문에 우리 부자가 상봉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아버님께서 영이시니까 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육신은 세상에 태어나면 또 이 세상을 떠나가게 돼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과 혼은 영원히 존재하며 언제 어디서든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오니 우리를 뒤로하고 먼저 평안히 가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하며 거창한 말로는 조국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조국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이것이 또한 인간이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고 또 이해관계도 서로 다릅니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서 사랑을 받으면 이해가 상반되는 나라에서는 배반자라고 불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 같은 사람도 사랑하시고 용서하였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오니 염려 놓으세요 그리고 우리 형제들은 아버님께서 남기신 가훈을 지키면서 정의롭게 살아갈 것입니다. 저가 저지른 과오도 사를 생각하지 않고 공을 위하다가 저지러진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의 사고이기 때문에 저의 불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고로 인해 아버지께 가슴 아프게 해드린 점 심히 죄송하오며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아버님 제가 장남으로써 효도하고 싶었던 저의 마음을 이해하여주시고 효도 할 수 없었던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또한 아버지의 임종을 함께 할 수 없는 불효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버님께서 누워 계시는 동안 월터를 통해 새 생명을 하나 더 얻었으며 네슬리는 할아버지의 분부를 받들어 이번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곤이는 아버지께서 일궈놓으신 여수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습니다.

제가 장손인데요
아버지처럼 깨끗한 당신으로써 나라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계속 후광을 비춰주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근심과 걱정도 없고 고통과 슬픔이 없는 나라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그리고 영원히 사시기 바랍니다.

우린 아버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존경하고 사랑할 것입니다. 이제는 평안한 마음으로 떠나시길 바라오며 다시 한 번 아버님의 명복을 비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불효자 채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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