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퇴직 법조·경제 관료 '싹쓸이'

참여연대 퇴직 판·검사 대기업 취업자 명단 발표... 법·경 유착 우려

등록 2005.05.29 21:48수정 2005.05.3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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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퇴직 판·검사들의 대기업 취업에 대해 법·경 유착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그룹에 취업한 퇴직 판·검사 숫자가 다른 기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에서 펄럭이고 있는 삼성 사기와 태극기.

퇴직 판·검사들의 대기업 취업에 대해 법·경 유착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그룹에 취업한 퇴직 판·검사 숫자가 다른 기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에서 펄럭이고 있는 삼성 사기와 태극기. ⓒ 연합뉴스 황광모


삼성그룹이 퇴직 판·검사들을 '입도선매'식으로 싹쓸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삼성이 주장하듯 '예방경영'이라는 긍정적 의미도 없진 않겠지만, 이 보다는 이해충돌이나 법경유착에 따른 폐해가 더 클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9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한상희 건국대 교수)가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삼성그룹에 취업한 퇴직 판·검사가 최소 15명(판사출신 4명, 검사출신 11명)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다른 대기업과 비교할 때 월등히 높은 수치다. 같은 참여연대 자료에 따르면, SK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판·검사 출신 인사는 3명이었으며 LG와 CJ는 각각 1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판검사 출신 삼성 취업자 15명 압도적... 퇴직 후 '직행'

2000년 이후 삼성그룹과 SK그룹에 취업한 퇴직 판·검사

구분

영입일

이름

소속

퇴직 전 직책

퇴직일

삼성

2005.04

성열우

삼성 구조본(삼성전자) 전무

대법원 재판연구관

2005.02

2005.03

김상균

삼성 구조본(삼성전자) 부사장

서울중앙지법 판사

2005.02

2005.02

안덕호

삼성 구조본(삼성전자) 상무

서울행정법원 판사

2005.02

2004.12

서우정

삼성 구조본(삼성전자) 부사장

서울고검 검사

2004.12

2004.08

이종왕

삼성 구조본 법무실장

대검 수사기획관

2000.01

2004.08

김수목

삼성 구조본 상무

광주지검 부부장 검사

2002.08

2004.07

이명규

삼성중공업 상무보

수원지검 검사

2004.06

2004.07

유승엽

삼성 구조본(삼성전자) 상무보

서울중앙지검 검사

2004.06

2004.07

이상주

삼성화재해상보험 상무

수원지검 검사

2003.09

2003.09

양문식

삼성 구조본(삼성전자) 부장

부산지검 동부지청 검사

2003.08

2003.03

여남구

삼성 구조본(삼성전자) 상무

서울고법 판사

2003.02

2002.12

이기옥

삼성 구조본(삼성전자) 상무보

수원지검 검사

2002.11

2001.06

김대열

삼성물산 상무대우

서울지검 의정부지청 검사

2001.06

2000.09

이현동

삼성 구조본 상무

인천지검 검사

2000.09

2000.09

엄대현

삼성 구조본 상무

서울지검 검사

2000.07

SK

2005.03

남영찬

SK텔레콤 부사장

대법원 재판연구관

2005.02

2005.02

양정일

SK C&C 상무

인천지방법원 판사

2005.02

2004.06

김준호

SK 윤리경영실장

서울고검 검사

2004.06

소계판사출신 6명, 검사출신 12명

ⓒ 자료제공=참여연대

사외이사는 퇴직 판검사의 유망직종?

법·경 유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대기업들의 퇴직 판·검사 사외이사 영입 현황도 무심히 넘길 일만은 아니다.

참여연대가 상장 및 코스닥등록 법인의 사외이사 현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5년 5월 현재 기업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퇴직 판·검사(지검급 및 지법 판사급 제외)는 총 9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기업의 사외이사직이 판·검사들의 유망한 '퇴직 후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기업과 관련된 사건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이해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삼성행'을 택한 퇴직 판·검사들은 대체로 상무급 이상의 임원으로 보직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지난 2000년 1월 퇴직한 이종왕 전 대검 수사기획관은 삼성 구조본 법무실장으로, 올 2월 퇴직한 김상균 전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삼성 구조본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지난해 12월 퇴직한 서우정 전 서울지검 특수 1부장은 같은 달 삼성 구조본 부사장으로, 올 2월 퇴직한 성열우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올 4월 삼성 구조본 전무로 자리로 옮겼다.

문제는 퇴직 뒤 대기업행까지 불과 한두 달도 채 걸리지 않는데다 지나치게 두드러질 정도로 특정 회사에 편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참여연대는 "이로 인해 현직 판·검사들이 부지불식중에 특정기업의 취업을 생각하게 됨에 따라 판·검사로서의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이해충돌 현상이 발생할 소지가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재벌기업에 법조계가 편향되는 이른바 '법경유착'이라는 문제를 우려할 상황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해충돌 현상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허술하다. 판사의 경우 명목상으로나마 취업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지만 이 마저도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검사들에게는 이러한 최소한의 장치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아무개 전 수원지검 검사처럼 삼성전자가 형사고발한 삼성전자 소속 노동자를 기소하고 퇴직 뒤 곧바로 삼성그룹으로 몸을 옮기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검사의 경우도 판사처럼 퇴직 뒤에 사기업체에 취업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과 관련된 구체적 규정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판사들에 대한 취업승인 심사가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종왕 삼성 구조본 법무실장 "기업법률 자문이 긍정적" 반박

한편, 지난해 8월 삼성 구조본 법무실장(사장급)으로 영입된 이종왕 전 대검 수사기획관은 29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현직 판·검사들이 퇴직 뒤 '전관예우'를 받으며 송사를 담당하는 변호사로 일하는 것보다 기업법률 자문을 하는 것이 긍정적"이라며 법경유착 우려를 일축했다.

이어 이종왕 법무실장은 "로비가 필요했으면 고위직 출신을 영입했을 것"이라며 삼성에 들어온 이후 서초동 법원이나 검찰에 가서 송무활동을 한 내부 변호사는 한명도 없다"고 반박했다.

경제 관료 영입도 가속화... 연구소는 '신분세탁소'?

법조 관료 뿐 아니라 경제 관료의 '삼성행'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업무관련성이 높은 기업체에 2년 동안 취업을 금지하고 있는 관련 규정을 피해가기 위해 2년 간 삼성경제연구소나 삼성금융연구소 등에서 근무한 이후에 전진배치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삼성으로 몸을 옮긴 경제관료는 모두 6명. 김병기 재경부 기획관리실장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급 연구위원으로 영입된 것을 비롯해, 이건혁 전 재경부 거시경제팀장이 삼성전자 IR 팀장으로, 곽상용 전 재경부 국제기구과장이 삼성생명 상무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방영민 재경부 경제홍보기획단 총괄과장은 삼성증권 상무로, 이상묵 재경부 은행제도과 서기관은 삼성금융연구소 상무로, 이석준 금융감독원 기업회계 1팀장은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보로 각각 영입됐다.

이들의 '삼성행'이 세상에 알려질 때마다 매번 법적 논란이 터져 나오고 있다. 4급 이상 고위관료가 사기업으로 이직할 경우 업무관련성이 높은 기업에 2년 동안 취업할 수 없다는 공무원윤리법 규정 때문이다.

삼성은 이러한 이직 관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묘책'을 내놨다. 삼성경제연구소나 삼성금융연구소와 같은 순수 연구목적 기관을 잠시 거쳐가는 방식이다. 업무관련성 논란에 휩싸일만한 전직 경제 관료들은 통상 이곳에서 2년 동안 일한 뒤 관련 부서로 전진 배치된다.

정병기 삼성전자 상무와 장일형 삼성전자 홍보팀장이 바로 이런 케이스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과장을 역임한 바 있는 정 상무와 산자부 과장으로 재직하다 홍보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장 팀장은 모두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첫 업무를 시작한 뒤 현재의 위치로 이동했다. 일종의 '신분세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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