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난사와 김일병, 생물지표와 정신지표

등록 2005.06.24 11:22수정 2005.06.2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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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난사 사건을 볼 때 정신적인 부분을 이상과 비이상,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다시 참극을 재현할 소지를 주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같은 말이나 행동은 각자에게 상대적인 경중을 지니고 조직 구조와 운영이 다수에게 무리가 없어도 소수에게는 견딜수 없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그 소수자, 개인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는 것은 다른 참극을 불러올 수 있다. 이때 아무리 좋은 조직이라도 처음부터 그 조직이나 환경에 맞지 않는 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이 중요해 보인다.

생물은 자신의 생리에 맞는 환경에서 스스로 유지하며 살아가는데 어떤 생물은 이 환경에 맞지만 다른 생물은 맞지 않아 견디지 못한다. 이를 통해 거꾸로 환경의 상태와 수준을 알 수 있는데 이른바 생물지표다.

생물지표(生物指標, biological indicator)는 기준이 되는 생물을 활용해 환경상태와 구성요소 등을 측정하는 지표다. 측정 생물이 식물이면 지표식물이고 동물은 지표동물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들깨는 이산화황이나 오존에 닿으면 잎 가장자리부터 연한 흑색 반점이 나타나고 점차 잎 전체로 번져나가 흑갈색으로 바뀐다.

지표동물의 경우 수중 생물이 많이 이용된다. 예를 들어 버들치 ·금강모치·열목어 등이 살고, 바닥의 돌에 하루 살이류 애벌레가 많으면 1급수다. 피라미·갈겨니가 있고 냄새가 없고 물이 맑으면 2급수이고, 붕어·미꾸라지·뱀장어·메기 등이 살고 물이 황갈색을 띠면 3급수라고 지표 된다. 금강모치에게 3급수의 물에서 미꾸라지와 함께 살아가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당장에는 살긴 살 수 있겠지만 비정상적인 생을 유지하다고 점차 멸종해 갈 것이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술을 조금만 먹어도 정신을 잃은 사람이 있고 MSG같은 화학조미료를 조금만 먹어도 이상 반응이 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산화황을 조금만 접촉해도 기관지 이상이 오는 사람도 있다.

반면 술을 많이 먹어도 화학조미료나 이산화황에 많이 노출되어도 끄떡없는 사람이 있다. 만약 술을 즐기고 화학조미료가 든 음식을 즐겨먹으며 이산화황에 노출되어 있는 집에 하숙생들이 산다고 하자. 이중에 한 사람만 이상이 있으면 하숙생들은 ‘다른 사람은 괜찮은데 너만 왜 그러냐?, 견뎌!’라고 할 수 있을까?’

그곳은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견딜만한 공간이겠지만 다른 이에게는 지옥일 수 있다. 그 한 사람을 비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육체적인 부분에만 한정되어 있지만 미묘한 부분이 정신적인 민감성이다.


정신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람이 있고, 약간 둔감하고 무덤덤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정신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무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도 대단히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갇혀 있다는 자체를 독립성을 훼손하고 자율적인 판단까지 침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벼운 농담이나 비판도 매우 심각한 인격침해나 인격모독으로 느끼게 한다. 또한 너무 민감하기 때문에 강제적인 조직 생활에서 상처를 많이 받고 인간관계에 서툴게 마련이다.


즉 이러한 급수의 사람은 군대 같은 강제적이고 획일적인 조직에는 맞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같은 부대원이 잘해주려고 해도 그 사람에게는 별로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맑은 물을 약간 타주는 것과 같을 뿐이지 물 자체를 바꾸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유형의 사람이 견디지 못하는 5급수에 1급수를 요구하는 이들을 보내면 시한폭탄을 보내는 것과 같다.

짐작하건대, 이번에 총기난사로 내무반원들을 사살한 김일병은 군대에 가지 말았어야 하는 정신 급수를 가지고 있다. 이는 정신이상이나 인성의 결핍보다는 정신의 민감성이라는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부대원이나 국방부, 유가족들이 김일병의 정신적인 결함을 원인으로 들지만 정신과 전문의들이 정신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는 상반된 주장은 이 지점에서 비롯한다.

이상/비이상으로 보면 핵심에서 벗어난다. 아무리 보통 사람들이 자신들은 문제가 없다고 해도 매우 민감한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보통 사람들이 문제로 보인다. 언어 폭력 유무와 원인 논쟁에 대한 상반된 주장도 여기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김일병은 정신적으로 매우 민감한 급수이므로 강제적인 조직 생활이나 형식적인 인간관계의 틀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5급수에 1급수의 환경에서 살아야 할 사람이 들어간 셈으로 애초에 군대에 가지 말았어야 한다. 여기에서 5급수를 요구한다고 해서 지저분하거나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의미는 아니다. 상대적이라는 뜻이다.

군복무자에는 약 10만 명 정도의 정신 민감자들이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문제는 실제로 군복무 생활을 한 경험자들이 인식하다시피 아무에게도 이들이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본인은 괴롭고 같은 다른 부대원들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군대 차원에서 보자면 갈등과 반목이 일어나므로 전투력과 부대 업무의 비효율성이 드러난다. 또한 많은 경우 사건 사고를 발생시키고 이번과 같은 참극을 빚기도 한다.

무엇보다 정신이 민감한 사람들은 자아 내부 지향성이 강하므로 성찰이나 예술적인 감수성은 풍부하지만 자아 고수의 성향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자신을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다른 이들의 행동이나 사고, 말 때문에 자신이 고통을 당하는 것만을 크게 생각하지 자신의 언행이나 표정, 몸짓에 다른 사람들이 고생하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다. 그래서 큰일을 저지르고도 김일병처럼 잘못에 대해 침착하다.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그가 냉혹한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정신을 이상/비이상으로만 구분하고, 민감과 보통, 둔감의 기준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민감한 사람을 정신병 혹은 이상자로 몰아붙이고 둔감한 사람을 훌륭하고 남자다운 이로 극찬해왔다. 특히 남자들에 대한 ‘남자다움의 이데올로기’는 민감자들의 상태를 더욱 무시하게 했다. ‘남자가 그쯤이야’, ‘남자가 군대도 못 견뎌서 험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래!’ 하는 인식은 본인도 고통스럽고 구성원이나, 군대 조직 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김일병이 저지른 참극도 여기에 닿아 있다.

지금이라도 생물 지표와 같은 ‘지표 사람’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혹은 사전에 ‘정신 지표 급수’를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징집 신체검사 때 일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체계적인 검사와 관리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각자 맞는 환경 급수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징집제이기 때문이 이 같은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자원입대나 모병제에서도 정신적 민감성 문제는 근무지나 보직, 병과 배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육체적인 급수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급수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대책의 모색이다. 정신적으로 민감한 수많은 사람들이 5급수의 물에 강제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이들은 견뎌도 화학 반응을 일으켜 폭발물이 되는 이를 억지로 들여 보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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