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하고 부식된 마음에 환한 등불을...

파울로 코엘료 신작 <오 자히르>

등록 2005.07.19 11:57수정 2005.07.1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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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히르> 책 표지
<오자히르> 책 표지문학동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떠났다.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줬던 아내, 있는 존재만으로 행복함을 줬던 아내,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줄 거라 믿었던 아내가 떠난 것이다. 그것도 다른 남자와 함께, 한마디 말도 없이.

아내가 떠난 시간을 견뎌야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명작가인지라 스캔들에도 휘둘려 사람들의 이상한 눈초리를 견뎌내야 하며, 삶의 나침반이 사라져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날을 보내야 하기도 하며, 아내가 떠난 이유를 알 수 없어 분노와 같은 답답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이겨내기 위해, 아니 이겨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남편은 책을 써서 세상에 발표한다. 그 책은 예의 그렇듯이 다시 한번 세상에 주목을 받게 된다. 아내 덕분에 글을 썼지만 아내가 없어도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에 남편은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니었다. 사인회 중에 본능적으로 아내와 함께 사라졌다는 남자를 알아보고 그 남자로부터 아내의 소식을 들을 때 남편의 모든 신경은 다시 아내를 향해 발기하게 된다. 그리고 아내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된다. 아주 머나먼 여정의 길을.

파울로 코엘료의 <오 자히르>는 잃었던 아내를 찾아가는 남편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인간 세상에 대한 영적인 '반역'을 노래하고 있다. 작품은 자석의 두 극처럼 너무나 다른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첫 번째는 남편이다. 남편의 존재는 세상이 기대하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전형적인 육체적인 인간이다. 육체적인 인간이란 무엇인가? 정신은 없고 육체만 있는 인간이다.

육체적인 남편의 몸짓은 남들이 바라는 그것이다. 또한 남들의 시선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그것이고 남편은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설사 옳지 않다 하더라도 최소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최고의 방법 중 하나라고 믿고 있다.

이런 경우의 사람은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삶이라는 길에서 길을 잃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눈에 보이는 환각의 장면들로 그것을 부정한다. 사실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애써 현실적인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기만적인 행로를 이어간다.

<오 자히르>를 이끌어가는 두 번째는 아내이자 미하일과 같은 정신적인 인간이다. 이들은 육체보다 정신을 중요시한다. 정신을 중요시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것은 남들의 시선보다 자신의 시선을,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중히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아내 혹은 미하일의 몸짓은 남편과 전혀 다르다. 또한 이 세상에서 현실적으로 산다고 평가받는 이들의 그것과도 너무나 다르다.


아내는 환각의 장면들이 말 그대로 환각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길을 잃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편과의 사이도 그렇고 세상을 대하는 자신의 모습도 그렇다고 여긴다. 아내는 그것을 참을 수 없어 죽음이 눈앞에 보이는 전쟁터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답을 얻어 보려 하지만 그것으로는 만족스럽지가 않다. 진실한 것도, 치열한 것도 부족하다. 그래서 그녀는 떠난다. 산다는 것은 길을 잃어버렸음을 자각하고 겸허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문명의 인간 세상을 외면하고 세상 깊은 곳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자석의 두 극처럼, 혹은 평행선을 유지하는 철로처럼 영원히 만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를 '사랑'한다. 또한 자신 또한 길을 잃었음을 알고 있다. 그것은 실낱같은 가능성으로 남편에게 희망을 빛을 던져준다. 남편은 가능성을 기반으로 소유하려는 사랑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랑의 의미를 배우고, 또한 자신이 길을 잃어버렸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래서 길을 찾으려 한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길을 잃어버렸다고 자각하는 것은 자신의 많은 부분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남편은 하기로 한다. 길을 잃었다는 현실을 발견하고 겸허하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듯이 남편도 다시 길을 찾아 나선다. 순례자의 같은 마음으로, 혹은 연인의 집을 향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마침내 미하일의 도움을 받아서 기만적인 어제를 뒤로 하고 충만한 오늘을 맞이할 기회를 얻게 된다.

<오 자히르>는 표면적으로 남편이 아내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육체에서 정신으로의 길 떠나기이자 진정으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길 떠나기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을 넘어 세계의 구원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 저자는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오 자히르>에서도 여전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여전히 영적인 노래로 무수한 오염물질들로 찌들어 있는 육체를 정화시키고 부패되어가는, 그리고 피폐해지고 부식되어가는 '마음' 속에 환한 등불을 비춰준다.

목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충분히 그럴 수 있을 테다. 저자는 소설로 영적인 복음을 전파하는 목자와도 같다. 그 목자가 <오 자히르>에서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있다. 솔직하게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그래야만 방황을 끝낼 수 있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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