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한복으로 멋을 낸 북측 가수들의 공연.정용국
식사가 끝날 무렵 인민문화궁전에 배속된 예술단의 공연이 있었다. 화려한 한복을 입은 여가수들은 배우만큼 인물이 출중했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들은 예의 그 억양으로 높고 고운 음을 소화해 내는 창법은 신기했다. 먼저 우리 귀에 익은 '반갑습니다'를 공연했다. 이 노래는 북이 재일 조총련 가족들의 북한 방문을 기념해서 지은 노래인데 가사에도 한 민족으로서의 반가움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남자 가수들은 세련된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북에서는 이상하게 남자가 한복을 입은 것은 보지 못했다. 남측에서는 사회자가 남녀일 경우 둘 다 한복으로 통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여성들이 길에서도 한복을 입고 다니는 것에 비해 남자가 한복을 안 입는 것은 이상했다. 아마 많은 남성들이 군에서 일하고 그들의 편의를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고 짐작하기만 했는데 그래도 정답은 잘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작가대회의 성격을 고려하여 우리도 잘 아는 민요를 불렀고 북의 노래 중에서도 주체사상이나 북의 체제에 관한 작품들을 피해서 민족이나 통일에 관해 서로가 동감할 수 있는 부분에서 공연은 진행되었다. 연습량이 많은 듯 어느 가수 어느 연주자 하나도 아주 세련되고 능란하며 발랄한 동작과 목소리를 보여 주었다.
연회가 거의 끝날 무렵, 우리 원탁에 같이 자리했던 남과 북의 문인들은 서로 친해져 손을 잡고 60년만에 만난 감회와 자주통일에의 열의로 금방 뜨거워졌다. 어깨동무도 해보고 새로운 이름을 달아 건배도 하고 사진도 어울려 찍었다.
그렇다, 어디 사람 사는 곳에 팍팍함만이 있으랴 주의와 사상의 빡빡함 속에도 언제나 감성의 물꼬가 흐르고 있고 사람의 본연으로 돌아가 이야기 하는데 그깟 사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연회가 다 끝나고 나는 리철식 시인과 통로를 천천히 걸어 나오면서 말했다.
"자주적 열정으로 서로 통일을 향해 열심히 힘써야 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입네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는 자주적으로 통일해야 합네다!"
리 시인은 '자주적'이란 말에 공감했던지 내 손을 덥석 잡고 조금 세게 흔들어 화답했다.
오늘 본회의 일정이 늦어짐에 따라 연회도 자정이 되어서야 끝났다. 늦게 한 식사가 부담은 되었지만 내일 일정을 소화하려면 잠을 자 두어야 했다. 실로 평양에 와 있다는 긴장감과 호기심등이 무사히 마친 본대회와 연회장에서의 술과 열의로 이완되어 피로감이 심하게 몰려왔다.
집에 전화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답답했고 이것이 우리가 처한 숨막히는 현실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그 답답함은 또 나의 심사를 꼬이게 만들었다. 이 지척인 거리를 오갈 수 없게 한 그 힘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남아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음에 나는 짧은 여름밤을 오래도록 뒤척여야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7월20일 부터 25일까지 평양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작가대회'를 참가하고 쓴 글입니다. 정용국 기자는 <내 마음속 게릴라>를 쓴 시인이며,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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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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