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실 문에 손잡이로 달아 놓은 노루발.정용국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문고리가 쇠로 되어 있어서 대원들이 추운 날에 문을 열 때마다 고리가 손에 붙어서 고생하는 것을 보시고 노루의 발을 달아 주시었습니다. 노루발은 털이 있어서 추운 날에도 손이 달라붙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루발에서는 일종의 향과 함께 독을 제거해 주는 성분이 나와 대원들의 손을 깨끗하게 해 주는데 이러한 작은 일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무한하신 부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하겠습니다."
안내원은 거의 여성들이었는데 그녀들의 입에서는 몇 번씩의 같은 수식어가 반복되어 나온다. 김일성 주석의 이름 앞앞에는 ‘위대한 수령’ 김정일 위원장 이름 앞에는 ‘경애하는 지도자’가 빠짐없이 붙어 있고 객관적 서술이나 설명을 하는 신문이나 방송의 내용도 문구 안에서 조차 극존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김일성 주석이 이곳에서 한일무장투쟁을 전개할 당시 이곳은 춥고 여름이 짧아서 거의 주식을 귀리나 옥수수로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의 어려움에 대해서 설명하는 말을 들었다.
사실 우리들이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시기에는 모든 언론과 방송까지도 김일성 주석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하기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김일성 주석의 무장 항일 투쟁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사실을 한국에서 교육받거나 알아들을 만한 지식을 공급받지 못했다. 그 지식의 일부는 비공식적이고 전설 같은 말을 바람처럼 전해 들었을 뿐 국정 또는 검인정 교과서를 통해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지금 조선과 한국 안에는 엄연히 헌법과 각종 법률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니 울지도 웃지도 못할 판이 아닌가.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현행법을 무시하고 또는 범죄행위를 하고 있는 꼴이 되고 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평론가들과 시인들은 고려호텔 서점에서 많게는 몇 십 권씩 책을 사가지고 왔다.
이를 고려해서 작가회의 측에서 출판물이나 각종 인쇄물에 대하여 단체로 통일부에 신고서를 쓰게 하였지만 이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에 지나지 않았다. 입국장에서 몇 명은 책과 테이프나 신문류 등을 압류당하기는 하였지만 나중에 연구 목적의 이유를 들어 돌려받았다고 했다. 이미 나의 가방 속이나 디지털 카메라 칩과 캠코더 안에는 노동신문과 평양시민과의 대화와 많은 정보가 반출되었으니 국가는 나를 어찌할꼬? 국정원은 내 머리를 압류할 것인가?
우리가 베개봉 호텔에 도착하여 1진과 합류하였을 때에는 이미 거의 저녁 때가 다 되었다. 마치 알프스의 산 속에 들어온 느낌이 드는 아담한 이 호텔은 고급스럽지는 않은 중급의 숙소였다.
고려 호텔과는 달리 여러 가지 비품이나 시설물에 있어 차이가 많이 났으며 낮에는 한 때 전기가 나가서 화장실 사용이 곤란하기도 하였다. 날씨가 춥기 때문인지 방에 에어컨이 없었지만 창을 열어 놓으니 덥지는 않았고 밤에는 창문을 꼭 닫고 잘 정도였다.
베개봉 호텔에서는 또 다른 한 군의 한국 사람들과 조우하게 되어서 깜짝 놀랐다. 거의 중국 국경을 통해서 백두산을 오를 수밖에 없었고 조선을 통해서는 불가능 한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외에도 꽤나 많은 인원들이 이 코스로 백두산을 다녀간 것이다.
그 일행들은 연세대와 서원대의 역사문화 국제학술 대회에 온 교수들이었다. 인원도 거의 30명 되는 것으로 보였고 그들은 이제 평양으로 간다는 것이니 우리가 타고 온 그 프로펠러 여객기로 갈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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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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