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에서 다시 묻다, "조국은 하나인가?"

평양 북남작가대회 참가기(17) 사람아, 이 사람들아

등록 2005.08.21 16:11수정 2005.08.2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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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이미 병사봉 뒤에서 떠오른 지 한참이나 되었는데도 장군봉 위에 있는 보름달은 사라지지 않고 해와 달이 함께 하는 묘한 시간이 한 시간여 계속 되었다.

안도현 시인은 '사랑을 노래함'을 낭송하였고 '청춘송가' '통일연가' 등으로 조선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대표적인 소설가 남대현은 인사말을 통해 6·15 공동선언의 실천만이 우리들의 갈 길이라고 말했다.

안도현 시인이 '사랑을 노래함' 을 낭송하고 있다.
안도현 시인이 '사랑을 노래함' 을 낭송하고 있다.정용국
남대현 소설가는 경북 안동 태생으로 서울 경복중학교 3학년 재학시 부친이 계시는 일본으로 밀항한 뒤, 1963년 고등학교 3학년 때 북송선을 타고 조선으로 간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나중에 서울로 돌아와서 <경향신문> 기사를 읽고 안 사실인데 한국의 소설가 김훈 선생과 남대현 소설가는 서울의 돈암초등학교 동창인 것이 확인되어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세 명의 동창이 어울릴 수 있었을텐데 행사가 워낙 주석단 위주로 진행되고 기자들도 몇 사람에게만 집중하게 되니까 졸병인 나는 감히 그 언저리에 다가가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시대적으로는 한참 뒤의 일이긴 했지만 나도 돈암초등학교 27회 졸업생이었으니까 하는 말이다.

'조국은 하나다'를 낭송하는 정지아
'조국은 하나다'를 낭송하는 정지아정용국
소설가 정지아가 나와서 김남주 시인의 '조국은 하나다'를 애절하게 낭송했다. 김남주가 살아 있었을 때 그가 낭송하는 그 시에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곤 했는데 이 시를 천지에서 다시 듣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김남주가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니었겠는가. 다시 들어보자. 김남주의 육성을 기억하며 눈을 감는다.

조국은 하나다
- 김남주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 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양키 점령군의 탱크 앞에서
자본과 권력의 총구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제 나는 쓰리라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언어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탄생의 말 응아응아로 시작하여
죽음의 말 아이고아이고에 이르기까지
조국은 하나다 라고
갓난아기가 엄마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말
엄마 엄마 위에도 쓰고
어린아이가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행동
아장아장 걸음마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눠 가지는 인간의 길
오르막길 위에도 쓰고
내리막길 위에도 스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도 쓰고
파도로 사나운 뱃길 위에도 쓰고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오 조국이여
가장 아름다운 꽃이여 이름이여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의 눈길이 닿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눈을 뜨면 아침에
당신이 맨 먼저 보게 되는 천정 위에도 쓰고
눈을 감으면 한밤에
맨 나중까지 떠 있는 샛별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축복처럼
만인의 배에서 차오르는 겨레의 양식이여
나는 쓰리라 쌀밥 위에도 쓰고 보리밥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바다에 가서 쓰리라 모래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파도가 와서 지워버리면 그 이름
산에 가서 쓰리라 바위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세월이 와서 지워버리면 그 이름
가슴에 내 가슴에 수 놓으리라
아무리 사나운 자연의 폭력도
아무리 사나운 인간의 폭력도
감히 어쩌지 못하도록
누이의 붉은 마음의 실로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아메리카 카우보이와 자본가의 국경
삼팔선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식민지 낮과 밤이 쌓아올린
분단의 벽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압제와 착취가 날조해낸 허위의 벽
반공이데올로기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내걸리라
지상에 깃대를 세워 하늘 높이에
나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키가 장대 같다는 양키의 손가락 끝도
가난의 등에 주춧돌을 올려놓고 그 위에
거재를 쌓아 올린 부자들의 빌딩도
언제고 끝내는 가진 자들의 형제였던 교회의 첨탑도
감히 범접을 못하도록
최후의 깃발처럼 내걸리라
자유를 사랑하고 민족의 해방을 꿈꾸는
식민지 모든 인민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
남과 북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그랬다. 조선에서 보았던 어느 공연이고 거의 맨 마지막은 '조국은 하나'라는 노래로 끝이 나는데 우리는 일어서서 손뼉을 치며 눈물을 글썽거릴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김남주가 쌀밥 위에도 쓰고 보리쌀 위에도 쓰고 싶어 했던 하나의 조국, 목숨을 걸고 외치다가 시퍼런 목숨이 죽어 나간 그 이름이 아닌가?

한국 최고령 참가자 이기형 시인과 강진이 고향인 오영재 시인
한국 최고령 참가자 이기형 시인과 강진이 고향인 오영재 시인정용국
이 긴 시를 옮겨 적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키와 점령군과 그 외의 거친 단어들은 제쳐두고라도 우리는 지금 새로운 눈으로 과연 조국은 하나인가를 봐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한신대 윤평중 교수의 말에 귀기울여 보자.

"남의 시민들과 북의 인민들 사이에서는 정치 이념뿐만 아니라 생활방식이나 가치관에서 더 이상 공통 접점을 찾기 어렵다. 통일신라 이후 오랜 과거의 역사를 공유하고 같은 핏줄이며 동일한 말을 쓰지만 우리가 더 이상 하나가 아니라는 고통스러운 사실은 이산가족 화상상봉 현장의 눈물바다에서 상징적으로 재확인된다.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과 경애하는 지도자의 교시'를 말끝마다 되뇌는 인민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당연시하는 시민 사이의 심연을 가족이라는 이름만으로 메울 수는 없다.

같은 민족이라는 감성적 구호만으로는 눈물과 감동의 짧은 잔치가 끝난 후에 비로소 시작될 엄혹한 현실의 벽을 넘기 어렵다. (중략) 한국 시민들이 민족통일을 위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양보할 수 있을까? 또는 북한 인민들이 통일을 위해 주체 사회주의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남과 북이 서로 양보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주체사상 사이의 상호수렴을 지향할 수 있을까? (중략) 우리가 진정으로 통일을 원한다면 통일이라는 레토릭의 과잉을 삼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민족통일의 지상명제는 과연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아직 하나가 아니라는 엄정한 사실 인식을 동반할 때만 유의미하다."


벽초의 손자 홍석중 소설가와 천지에 선 필자
벽초의 손자 홍석중 소설가와 천지에 선 필자정용국
어떤 이는 민족 공조의 불을 피우기도 전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옳지 못한 짓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말로만 '우리는 하나다'라고 외치는 것은 허무한 구호가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을 떠난 남주 형의 간절함이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구호를 구체적 현실로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경제적, 국제적인 다양한 근거와 배경을 마련하여야 할 시기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김남주를 비롯해서 칠흑 같은 시기에 '우리는 하나'를 외쳤던 분들의 구호에 우리가 정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바른 답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직도 우리들의 기념일에 인공기를 불태우고 성조기를 앞세우며 우리의 동맹 미국과 그들의 대통령 부시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는 기독교인들이 시퍼렇게 살아 날뛰는 이 혼돈의 시기에 우리는 자칫하면 남과 북의 친화는커녕 남남 갈등의 구렁텅이에 빠져 화를 자초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보수 언론들이 우리 나라의 이익보다는 미국의 안일을 내세워 자신의 실리와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국민을 우롱하는 변명에 골몰하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병사봉 옆에 새겨진 김정일 위원장의 글씨
병사봉 옆에 새겨진 김정일 위원장의 글씨정용국
백두산 천지의 열망이 들끓는 현장에서조차 피가 멈추는 이 냉정한 현실의 일들을 생각하게 되다니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날 현장은 열의와 환호로 가득했다. 다함께 '조국통일만세'를 삼창할 때에는 그야말로 천지가 요동치는 것 같았다.

고은 선생은 조선작가동맹 김병훈 위원장을 뜨겁게 끌어안았고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누구든 옆의 사람들과 손을 잡거나 부둥켜안고 말았다. 이제는 더 이상 남과 북의 지도자라면 누구라도 이 열정을 악용하지 못하며 이것을 빌미로 우리의 하나 되기를 거부하거나 지연시킬 수도 없고 그런 자는 더 이상 우리들의 지도자가 되어서도 안될 것이라고 단언하고 싶었다.

남과 북의 대표단들은 단체로 사진촬영을 하고 나서도 삼삼오오 다른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나도 여러분들의 사진을 찍어드렸고 짬을 내어 벽초의 손자 홍석중 선생과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새벽 두 시에 일어나 천지에서 진행된 통일 문학의 새벽은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손잡고 맹세한 많은 일들을 천지는 똑똑히 기억하여 증명해 줄 것을 빌었다.

덧붙이는 글 | 정용국 기자는 시인이며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다. 시집 '내 마음 속 게릴라' 가 있다.

덧붙이는 글 정용국 기자는 시인이며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다. 시집 '내 마음 속 게릴라'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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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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