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막바지 비탈길을 오르는 버스 위로 보름달이 떠있다.정용국
원래의 일정표로는 2시 30분에 일어나서 3시에 호텔을 출발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상황실에서도 시간을 일출 전 도착에 맞추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2시 10분에 각 방의 문을 두드리고 다니며 수선을 피웠다.
우당탕 쿵탕 하며 갑자기 떠드는 소리와 함께 백두산 천지를 찾아가는 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른 일행들도 잠을 설치고 있었던 모양인지 일찍 깨운 것을 나무라는 사람은 없는 대신 정말로 칼 같이 짐을 꾸려서 호텔 앞 주차장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삼지연 비행장에서 버스를 타고 베개봉 호텔로 이동한 조별로 승합차를 사용하게 되어서 우리 조는 또 김창규 시인의 재담을 만끽하며 백두산에 오를 수 있었다. 모든 참가자들은 눈을 뜨자마자 창문부터 열고 날씨를 확인하였는데 다행히 보름달이 휘영청 걸려 있어서 안도의 한숨을 놓았지만 어제 일기의 변화무쌍을 경험한 터라 아주 마음을 놓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베개봉 호텔이 해발 1300m에 있었으니 우리가 더 올라갈 그 높이에는 엄청난 변수가 들어 있을 수 있었다. 또한 짙은 안개나 운무가 끼어도 일출을 잘 관망하기는 어려운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다행히 오른쪽 운전대가 있는 운전수의 바로 뒷자리에 앉았고 김창규형은 아주 일찍부터 운전석 옆자리에 올라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승합차는 어둠을 뚫고 붉은 황톳길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백두산이 우리 나라에서 최고로 높은 산으로 배워서 인지 차로 꼭대기까지 올라간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제 삼지연에서 베개봉 호텔로 오면서 그 길을 보니 과연 백두산은 완만한 경사를 가진 엄청 큰 규모를 가진 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헤드라이트가 끝없는 삼림 속으로 난 길을 비추며 가다가 커브를 틀 때면 우거진 이깔나무의 빽빽하게 들어찬 속을 조금씩 보여주곤 하였다. 보름이 이틀 지난 달은 아직도 완연하게 그 둥근 자태로 우리 머리 위로 따라오며 남북의 문인들이 함께 오르는 백두산 길을 비춰주는 것이었다.
'아, 감미롭고 숨이 차는구나 이 길을 진정 우리가 갈 수 있다니 행복하고도 행복하여라.' 나는 감정에 푹 사로잡혀 거의 숨이 넘어가고 있는 창규형의 독백을 들으며 나도 같은 감정의 출렁거림을 공유하고 있었다. '저 달 좀 봐라, 죽인다.' 창규 형 옆자리를 비집고 앉은 김영현 형도 가끔씩 창규형의 말에 추임새를 넣어 주며 분위를 살렸다.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며 숲 속 길을 내달린 길을 한 시간여 달려 나가자 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는 드넓은 초원 위로 서서히 경사가 심해지는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들꽃이 무리를 지어 피어 있는 초원의 전경이 끝없이 펼쳐졌다. 벌써 동쪽 하늘은 동이 트기 전이었지만 훤하게 밝아오고 있는 게 보였고 밑으로는 운해가 넓게 퍼져 있어서 우리는 구름 위를 날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승합차의 미등이 아득하게 보이는 위로 보름달이 걸려 있는 비탈길을 20여분 올라가니 눈을 의심할 정도로 우리는 백두산 꼭대기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우리를 뜨겁게 휘감던 백두산의 바람은 정녕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려는 듯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행사를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