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호텔 정문에 선 김원일 선생과 필자.정용국
물론 분단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소재를 다룬 소설가가 많기는 했어도 내가 김원일 소설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불행한 가족 이력의 당사자여서 절실함이 묻어 있다는 것과 풍부한 진실성, 그리고 장쾌한 상상력으로 분단을 극복하려는 신선함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국문학과의 졸업 논문은 그저 이광수, 염상섭, 서정주 하는 식으로 이미 논문의 자료가 풍부해서 참고할 문헌과 인용할 논문들이 수두룩한 사람을 고르는 것에 비해 김원일에 관한 자료는 그들에 비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어서 조금은 고생한 기억은 있지만 상당히 보람 있는 일이었다.
아침 식사임에도 향산호텔의 식단은 확실히 평양보다 북쪽이어서인지 기름지고 중국식이 많이 포함된 것이 많았다. 야채 왕만두와 돼지고기찌개는 아침에 먹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송기숙, 현기영, 김종철 선생과 김형수 총장이 함께한 식탁에서 식사를 했는데 다들 명태찜에 손이 많이 가셨다.
나는 토란대 나물과 오이무침이 맛있어서 든든히 속을 채웠다. 홍차로 입가심을 하고 있는데 김종철 선생이 북에서는 말끝에 "말입니다"를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경우에 쓰는 것인지를 옆의 접대원에게 물었다. 그런데 리윤희라는 명찰을 단 그녀는 아주 당돌하게 대답해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고 '말입니다'는 아무데나 붙이면 안 됩니다. 붙일 데가 있고 붙이면 안 될 때가 있는데 질문에 대답하거나 설명이 끝난 뒤에만 붙인단 말입니다. 김종철 선생님은 시인이신데 고런 것도 잘 모르신단 말입니까?"
"그런 부담스런 장소를 왜 가느냐?"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공연장에서 임시 교육을 한다는 전갈이 와서 모였다. 먼저 정도상 실장이 지금까지 행사가 탈 없이 잘 진행되게 협조해 준 것에 대하여 사의를 표했고 행사를 주관하는 입장에서 보면 마치 순간순간이 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남은 이틀 동안에도 아무 탈 없이 행사가 마무리 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한다는 요지의 발언이었다.
이 시간이 마련된 배경에는 아마 우리들의 일정에 있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느껴졌다. 그 자리에서도 "그런 부담스런 장소를 왜 가느냐?" "꼭 가기 싫은 사람들은 빠지면 안 되느냐" 등의 질문과 불만이 표출되었다. 정 실장은 다소 얼굴이 붉어지며 말을 이었다.
"지금 이런 질문이나 불만을 하시면 저희로서는 정말 곤란한 입장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답사한 코스는 우리가 외국의 입국장을 통과할 때 거쳐야 하는 심사대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 일정에 대해서 더 이상의 이의는 불가능합니다."
정 실장은 급하게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아마 이런 종류의 질문이 나오자 그 동안 동분서주했던 노력에 대해 감정이 격해진 모양이었다. 이를 빠르게 눈치 챈 방현석 의전 담당이 마이크를 잡고 분위기를 다잡았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이해를 하는 터라 몇몇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도 수그러들었고 이후 일정은 그런 애매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금방 회합은 끝났다. 우리 대표단에는 문인들 외에도 일부 방송사 기자와 보수적 관점을 표하는 신문사의 기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부담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남북의 갈등 못지 않게 남남 간의 갈등과 이해 부족도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쟁을 장난쯤으로 이해한다던지 막연하게 통일을 경제적 난관을 들어 반대하는 세력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남과 북도 그 살벌했던 적대적 관계를 풀고 협력과 화해의 장으로 나서는 판에 우리끼리 내부에서 마찰음이 난다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다. 그만큼 남쪽의 생각이 더 개방적이고 개인의 인식의 폭이 훨씬 더 넓다고 보면 착각일까?
안내원의 설명,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