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는 저랑 부부안내원해도 되갔습네다"

평양 북남작가대회 참가기(20) 사람아, 이 사람들아

등록 2005.08.29 16:26수정 2005.08.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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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조선에 온 지 닷새가 되었는데 한 몇 년 쯤 후딱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한꺼번에 많은 것들을 보았고 그것에 대한 엄청난 생각의 부침에서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온 50년에 가까운 조선에 대한 허구와 진실들이 순식간에 뒤섞여 혼재하는 아찔하고도 즐겁고 한편으로는 매우 우울한, 그야말로 다양한 형태의 의식이 이어지는 데 걸린 시간이 닷새만이니 얼마나 어지러운 일이겠는가.

대학 졸업논문에서 다룬 김원일 선생을 만나다

6시 20분쯤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는데 옆방의 김원일 선생님은 벌써 여러 대째의 아침 담배를 태우고 계신다. 나는 대학에서 졸업 논문으로 '김원일 소설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에 관한 소고'라는 논문을 쓴 적이 있어서 김원일 선생님이 우리 조에 계신 것에 속으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랐다. '노을'과 '겨울골짜기' '불의 제전' 그리고 '도요새에 관한 명상' '환멸을 찾아서' 등은 내가 한국의 현대소설에서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단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한 최전방에 서 있던 소설들이었다.

고려호텔 정문에 선 김원일 선생과 필자.
고려호텔 정문에 선 김원일 선생과 필자.정용국
물론 분단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소재를 다룬 소설가가 많기는 했어도 내가 김원일 소설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불행한 가족 이력의 당사자여서 절실함이 묻어 있다는 것과 풍부한 진실성, 그리고 장쾌한 상상력으로 분단을 극복하려는 신선함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국문학과의 졸업 논문은 그저 이광수, 염상섭, 서정주 하는 식으로 이미 논문의 자료가 풍부해서 참고할 문헌과 인용할 논문들이 수두룩한 사람을 고르는 것에 비해 김원일에 관한 자료는 그들에 비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어서 조금은 고생한 기억은 있지만 상당히 보람 있는 일이었다.

아침 식사임에도 향산호텔의 식단은 확실히 평양보다 북쪽이어서인지 기름지고 중국식이 많이 포함된 것이 많았다. 야채 왕만두와 돼지고기찌개는 아침에 먹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송기숙, 현기영, 김종철 선생과 김형수 총장이 함께한 식탁에서 식사를 했는데 다들 명태찜에 손이 많이 가셨다.

나는 토란대 나물과 오이무침이 맛있어서 든든히 속을 채웠다. 홍차로 입가심을 하고 있는데 김종철 선생이 북에서는 말끝에 "말입니다"를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경우에 쓰는 것인지를 옆의 접대원에게 물었다. 그런데 리윤희라는 명찰을 단 그녀는 아주 당돌하게 대답해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고 '말입니다'는 아무데나 붙이면 안 됩니다. 붙일 데가 있고 붙이면 안 될 때가 있는데 질문에 대답하거나 설명이 끝난 뒤에만 붙인단 말입니다. 김종철 선생님은 시인이신데 고런 것도 잘 모르신단 말입니까?"

"그런 부담스런 장소를 왜 가느냐?"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공연장에서 임시 교육을 한다는 전갈이 와서 모였다. 먼저 정도상 실장이 지금까지 행사가 탈 없이 잘 진행되게 협조해 준 것에 대하여 사의를 표했고 행사를 주관하는 입장에서 보면 마치 순간순간이 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남은 이틀 동안에도 아무 탈 없이 행사가 마무리 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한다는 요지의 발언이었다.

이 시간이 마련된 배경에는 아마 우리들의 일정에 있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느껴졌다. 그 자리에서도 "그런 부담스런 장소를 왜 가느냐?" "꼭 가기 싫은 사람들은 빠지면 안 되느냐" 등의 질문과 불만이 표출되었다. 정 실장은 다소 얼굴이 붉어지며 말을 이었다.

"지금 이런 질문이나 불만을 하시면 저희로서는 정말 곤란한 입장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답사한 코스는 우리가 외국의 입국장을 통과할 때 거쳐야 하는 심사대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 일정에 대해서 더 이상의 이의는 불가능합니다."

정 실장은 급하게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아마 이런 종류의 질문이 나오자 그 동안 동분서주했던 노력에 대해 감정이 격해진 모양이었다. 이를 빠르게 눈치 챈 방현석 의전 담당이 마이크를 잡고 분위기를 다잡았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이해를 하는 터라 몇몇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도 수그러들었고 이후 일정은 그런 애매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금방 회합은 끝났다. 우리 대표단에는 문인들 외에도 일부 방송사 기자와 보수적 관점을 표하는 신문사의 기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부담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남북의 갈등 못지 않게 남남 간의 갈등과 이해 부족도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쟁을 장난쯤으로 이해한다던지 막연하게 통일을 경제적 난관을 들어 반대하는 세력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남과 북도 그 살벌했던 적대적 관계를 풀고 협력과 화해의 장으로 나서는 판에 우리끼리 내부에서 마찰음이 난다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다. 그만큼 남쪽의 생각이 더 개방적이고 개인의 인식의 폭이 훨씬 더 넓다고 보면 착각일까?

안내원의 설명,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6조 조원들이 국제친선관람관 앞에 섰다. 좌로부터 남송우, 필자, 김인숙, 김원일, 은희경, 홍상화, 김혜영 안내원, 오종우, 오인태.
6조 조원들이 국제친선관람관 앞에 섰다. 좌로부터 남송우, 필자, 김인숙, 김원일, 은희경, 홍상화, 김혜영 안내원, 오종우, 오인태.정용국
오전 일정은 국제친선 관람관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먼저 이곳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세계 여러 나라의 국가수반이나 외교사절 등 다양한 사람이나 국가로부터 받은 선물을 전시하고 있는 곳인데 그 명칭이 약간은 의아할 뿐 아니라 그 의도도 다분히 속이 들여다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와 계속해서 같이 움직이는 황원철 안내원은 주의 사항을 말했는데 국보급의 전시물들이니 만지거나 사진을 찍어서도 안 되고 안내원의 설명을 방해해서도 안 되는 행위라고 말해 주었다.

군인이 총을 들고 정문을 지키고 서 있어서 이상했고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것쯤은 이해가 갔지만 덧신을 신게 하거나 모자를 아예 두고 들어가게 하는 등 웃지 못 할 그곳의 엄숙한 분위기는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두 개의 건물이 따로 떨어져서 전시실을 이루고 있었는데 겉으로 보이는 입구와는 달리 엄청난 내부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수만 점에 달하는 전시물도 그러하거니와 안내원의 설명도 '심각한' 정도를 넘어서 우리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따름이었다.

김정일 위원장 전시실에는 오만 점의 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한 점당 일 분씩 보려면 일년 육 개월이 걸린다고 김혜영 안내원은 말했다. 대리석으로 치장된 아주 반듯하고 정형적인 규모의 방들이 수십 개 정도 있는 모양인데 우리는 드문드문 그녀가 안내하는 방을 따라다니며 선물들을 보았다. 조선의 안내원들은 다들 언변이 좋고 인물도 못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배치되어 있었지만 친선관의 김혜영 동무의 재치는 제일 뛰어났다.

안내원들의 설명은 거의 통일된 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말하는 과정에서의 감정과 재치에 따라 듣는 사람의 반응은 다르게 마련이다. 이동하는 사이사이에 아주 재미있는 말을 해 준다든지 혹시 배꼽 잡는 이야기로 웃긴다든지 하는 것은 다 개인차가 있다.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올브라이트가 가져온 선물은 이상하게도 미국 자본주의의 징표인 프로 농구 선수 조던의 사인이 넣어진 윌슨 농구공이었다. 그러나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면 그 징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불과해 진다.

"요것은 미국의 국무장관 올브라이트가 우리 경애하는 장군님께 올린 선물입니다. 여러분도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올브라이트를 잘 아시죠? 올브라이트 장관이 이 선물을 경애하는 장군님께 올렸다는 것은 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농구공은 경기 중에 들고 있는 사람이 누구에게 주든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이 우리 경애하는 장군님께 모든 권한을 드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숨이 넘어갈 만한 해석이었다. 이러한 설명의 행간에서 우리는 조선의 자존심과 대인민 선전의 기법을 볼 수 있다. 그들이 60년 동안 인민들에게 선전하고 교육한 모든 분야에서 조선의 당위성을 지키고 싶은 것이다.

기념품 구입,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개방의 밀물 앞에서 그것이 조금씩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이 북의 가장 큰 고민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대화하고 설득하며 그들을 이끌어 가려면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에서는 당분간 그들이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데 빠른 세상의 시간 앞에서 북의 시간은 더욱 급해질 것이고 따라서 북의 태도도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 자명한 일이다.

우리 일행은 말없이 그 옆에 놓여 있는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보냈다는 다이너스티 승용차만 바라보았다. 선물은 이루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가지 수와 규모를 자랑하고 있어서 철도 차량을 통째로 옮겨다 놓은 것에서부터 반지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도 천차만별이었다. 신영복 교수의 유명해진 서체로 '더불어숲'이라고 쓴 서예 작품이 있어서 다소 의아해 했는데 신 교수가 사상범으로 20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사람이란 것을 생각하면 그 의도도 확연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김일성 주석의 전시관은 김정일 위원장의 선물관에 비해 더 많은 전시물을 가지고 있어서 약 20만 점이라고 했다. 그곳에는 여기저기에 배의 키를 운전하는 조타기가 많이 눈에 보였는데 김혜영 안내원은 그것에도 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설명을 해 주었다. 배의 조타기는 차로 말하면 운전대인데 그 뜻은 우리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 모든 것을 다 맡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서 우리들의 김을 쑥 빼놓고 말았다.

중간에 한 번 쉬는 곳이 있어서 맥주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며 선물도 살 수 있는 매대가 있어서 대표단들은 내일이면 떠날 것을 고려하여 많은 선물들을 구입했다. 주로 산나물과 버섯 그리고 나무로 깍아서 만든 물건과 건강보조 식품 등이었으니 값이 많이 눅어서 수십 달러면 한 보따리씩이나 되는 물건들을 샀다.

나는 적목나무 젓가락과 꿀을 샀는데 우리 조의 은희경 소설가는 "돈 내고 사는 것이 아닌 것 같아서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매대의 선물들은 동이 나게 잘 팔렸다.

"동무는 저랑 부부안내원 해도 되갔습네다"

김혜영 안내원의 재치는 발군이었다. 필자와 함께 선 뒤로 보이는 건물이 김정일 위원장 선물관이다.
김혜영 안내원의 재치는 발군이었다. 필자와 함께 선 뒤로 보이는 건물이 김정일 위원장 선물관이다.정용국
우리 6조가 이동하는 동안 김혜영 안내원은 우리를 많이 웃겼다. 특히 그녀는 오인태 시인이 개인적으로 호감이 간다면서 그런데 너무 인상을 쓰고 있어서 이곳에 남겨 두고 한 달만 교육을 시키면 확 바꿔 줄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오종우 선생께는 이성으로 제일 끌리는 형인데 인상이 너무 굳어 있다고 하면서 오 선생님의 부채에 메모와 함께 사인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말고 혼자만 보시라요" 해서 좌중을 넘어가게 했다.

내가 매대에서 이것저것을 고르는데 김 안내원은 내가 매대의 아가씨와 하는 말을 듣더니 "정 선생님은 여기 남아서 저와 부부 안내원 해도 되갔습네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만하면 그녀의 말재주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을 할 것이었다. 참으로 사람에게 있어서 말 한마디는 중요하고 깊은 인상을 남기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우리 6조 조원들은 오래도록 그녀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으니까 말이다.

우리 대표단 일행이 승차해 대열이 선도차와 함께 광장을 빠져나가자 안내원 일동은 길가에 서서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어떤 이는 창으로 손을 내밀어 잡기도 하여서 마치 이산가족이 이별하는 장면을 보는 것 같이 금방 끈끈한 정이 감돌았다. 그러자 이경자 선생이 "벌써 정들었네, 정들었어!"하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정말 뭇사람들의 감정은 단순한 것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들의 머리에 들어있는 그놈의 생각과 이념과 정치적 이익을 더 먼저 따지는 지도자들이 더 문제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감히 말하건대 남과 북의 정권은 누구 앞에서도 당당한 정권이어야만 민족의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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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민족작가대회 참관기는 20회로 마감할 계획이었는데 진행상 다음회(21)로 마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민족작가대회 참관기는 20회로 마감할 계획이었는데 진행상 다음회(21)로 마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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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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