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에서 홍석중 선생과 함께 한 황석영, 이시영 선생.정용국
통일의 새벽 행사를 끝내고 내려오는 길에 바람이 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몸을 가누기가 어려울 정도여서 나는 한국에서 참가한 최고령자인 이기형 선생님을 부축해서 내려왔다.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정상에서 약 두 시간 가까이 바람을 맞서가며 진행된 행사여서 나이가 드신 작가들에게는 힘든 여정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남정현 선생님은 고문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터라 간신히 행사만 참석하시고 버스에서 기다리고 계셨는데도 힘들어 하셨다. 남 선생님은 나중에 베개봉 호텔에 돌아오셔서 링거 주사를 맞고 휴식을 취하신 후에야 순안행 비행기에 오르실 수 있었다.
6시 40분부터 하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미 날은 아침인데도 대낮 같았다. 우리가 일찍 일어나 움직인 것을 생각하면 벌써 네 시간이 넘게 지났으니 그럴 것도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아침 식사 전이었고 감동과 격정에서 평상심으로 돌아온 터라 졸음과 시장기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바람에 다들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버스는 어둠 속을 헤쳐 온 반대로 환한 아침 길을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길 양 옆은 밤보다 훨씬 잘 보였고 쏟아지는 햇살로 눈부셨다. 나도 졸음으로 눈꺼풀이 천근같았지만 다시 보기 힘든 이 장관의 경치를 놓칠세라 차마 눈을 감고 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 차 안내원 중에는 고은혜 여성 동무가 있었는데 키가 크고 몸집도 튼실한 여장부감이었다. 그녀는 김일성 종합대학 동양어문학부를 졸업하고 현재는 민화협에 재직한다고 하니 출신성분과 능력이 고루 뛰어난, 조선에서는 보기 드문 인재임이 틀림이 없다. 그녀는 대화도 화통하고 씩씩해 보여서 여러 사람들이 말을 걸고 농담도 하였는데 구김살없이 잘 받아 주었다.
그녀는 창규형이나 김영현 형과도 벌써 친해져서 백두산 가는 길에 창규형은 자기 시를 노래로 만든 것이라며 CD를 한 장 건네기도 하였다. 다들 멍하니 정신이 없는지 아무 말이 없자 그녀가 김영현 형에게 왜 말이 없느냐고 물었는데 그 대답이 걸작이었다. "백두산 천지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와서 그럽니다."
7시 50분경 베개봉 호텔로 돌아와보니 바로 아침식사를 할 시간이었다. 역시 산중이라 곰취나물과 된장찌개로 아침을 먹고 나니 그만 잠이 쏟아졌다. 1진이 먼저 비행기를 타고 가야했는데 평양의 안개 때문에 아직 출발하지 못하였다고 하는 소식이 전해져 기내에서 도시락으로 먹어야 할 곽밥을 식당에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1조는 식사를 하고 대기하였고 2조인 우리들은 객실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전기가 나가버리는 바람에 지하수를 쓰는 호텔에 물이 끊어져서 세수는커녕 양치질도 못하고 누워 있으려니 백두산 천지가 눈에 어른거려서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 보니 1진은 이미 평양으로 향했고 우리 2진은 대기념비 및 삼지연 관람을 위해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사실 대기념비 관람에 대해서는 서울에서부터 시시비비가 있었다. 조선에서는 이곳의 관람(조선의 표현은 참배라고 해야 옳다)을 필수 조건으로 요청했을 뿐 아니라 은근히 헌화나 동참 정도까지 바라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으로서는 곤란한 일이라고 전달했고 결국은 현장에는 가되 김일성 주석 동상은 그냥 지나친다는 것으로 남과 북이 합의를 본 상태였다.
아직 우리 현실에서 상대방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다. 이번에 서울에서 열렸던 8·15 광복 60주년 축전에 조선의 대표단이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보수 단체들이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현충원을 참배하는 것은 순국선열에 대한 모독이다' 라면 거칠게 항의하였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반공전선에 나서 이 나라를 지켰고 그 결과로 남쪽만이라도 민주국가를 세웠다고 자부하는 분들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북은 어떤가? '1948년 김일성 주석의 주도 하에 열린 남북연석회의를 거부하고 남쪽에만 친미세력들이 국가를 세웠으니 남은 미 제국주의의 치하에 있다. 그래서 민족을 구하기 위해 민족해방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아직도 미국 때문에 조선은 반쪽이다'라는 생각이 그네들의 굳은 신념이다.
한국의 상황만 보더라도 아직 법적으로는 북은 우리가 통일해야 할 대상이고, 우리의 영토요, 그렇기 때문에 아직은 적인 것이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헌법상 우리의 국토로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정서에는 법으로 되어 있는 것들이 현실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국제적으로도 우리는 각각 독립된 나라로 유엔에 가입해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적인 활동을 서로 인정해오고 있는데 어찌 북이 우리 땅이고 남이 자기네 국가란 말인가?
북의 인민들도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서울에는 거지들이 북적대고 배고파 우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러냈고 자기들보다 훨씬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쌀과 비료를 얻어다 쓰는 형편이라는 것도 안다.
남의 국민들도 더 많은 것을 안다. 북에도 우리와 같은 민족들이 어렵게 살고 있으며 전쟁이 아닌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합해져야 하며 그것을 위해 경제력이 앞선 남쪽이 돕는 것이 옳다는 것도 동감하고 있다.
사람끼리도 한 때 싸운 적이 있을 경우 대개 쌍방과실이 있게 마련인 것인데 화해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잘잘못을 꼬치꼬치 캐묻고 따진다고 될 일이 아니다. 서로 싸움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던 부분에 대해 오해와 잘못된 것에 대한 사과를 통해서만 화해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