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역 뒷길에서 만난 평양의 아가씨. 양산을 든 여성들이 많이 보인다.정용국
평양에서 하룻밤을 자고 종일 빡빡한 일정을 거의 ‘주체사상 교육’ 수준의 관광으로 파김치가 된 대표단은 저녁을 먹으며 들기 시작한 소주로 인하여 슬슬 주당으로서의 면모를 발동하기 시작했다. 우리 6조 조원으로는 김원일 선생님과 홍상화 선생, 남송우 교수, 김성수 교수, 은희경, 김인숙 소설가와 오인태 시인이 조장을 맡고 있었는데 밤 10시 30분부터 3층 바에서 술 한잔씩을 할 테니 내려오라는 전갈이 있었다. 3층의 바에는 우리 조 외에도 신경림 선생과 안도현 시인 등이 벌써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술자리에는 김원일 선생, 오인태 시인, 김인숙, 은희경 소설가, 김성수 교수와 내가 합석을 했다.
백두산 들쭉술과 송악 소주, 대동강 맥주를 시켜 놓고 어느 것이 우리들 입맛에 적당한지 조금씩 마셔 보았다. 조선의 소주들이 대부분 한국의 달짝지근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라기보다는 달지 않고 쓴맛이 강해서 마시기 힘들었다. 그래도 김원일 선생님은 소주를 드셨고 나와 오인태 시인은 들쭉술을 그리고 여자들은 하이네켄 맥주를 마셨다.
나는 나중에 발동이 걸려 송악소주에 대동강 맥주를 섞어 '통일 폭탄주'라 이름을 붙여 마셨다. 바의 접대원으로 있는 여성 동무는 얼마나 붙임성이 있고 입담이 좋은지 아주 활달한 여성이었다. 별도의 안주를 찾는 이들에게는 밖에 나가서 구해다 주는 열성을 보였다. 그것은 바에서 준비할 수 있는 안주가 마른안주 수준이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정말 적극적인 자세를 가진 접대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에도 재치있게 답했고 농담은 농담대로 적절히 받아 넘기는 재주가 뛰어났다.
그런데 한국의 술집이라면 술보다는 안주 값에서 이문을 남기고 바가지를 씌우는 것에 비해 이곳의 바는 있는 술만 파는 정도였다. 아마 개인 가게가 아니라서 그럴 것이라는 추측만 할 수 있었다. 나는 술기운을 빌어 접대원 아가씨에게 집에 바래다 주겠다고 했더니 배꼽을 잡으며 자기는 내일 아침에 교대를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밤샘근무를 한다고 해서 웃고 말았다.
술판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정도상 실장이 내려왔다. 그는 이번 대표단 회의를 성사시키느라 조선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다같이 그 공로를 치하하며 술을 돌렸다. 각자의 방으로 돌아온 것이 아마 새벽 한 시 반이었으니 꽤 마셔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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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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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소주와 대동강 맥주로 만든 '통일 폭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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