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안공항 가는 버스에서 필자 옆자리에 앉은 박경심 시인정용국
내가 먼저 본인 소개를 하자 상대방도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는 김형직 사범대학 어문학부를 졸업하고 현재 시인으로 창작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경심 시인이라고 했다. 나이는 서른 일곱이니까 69년생으로 나와는 같은 닭띠인 셈이었다. 내가 띠동갑이라고 하자 그녀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남쪽에서는 같은 띠를 가진 사람들끼리 이런 말을 쓴다고 했더니 재미있어 했다.
박 시인은 키가 작달만하고 통통한 삼십 세 후반의 전형적인 중년 티가 나는 여자의 몸매를 하고 있었다. 말과 행동이 활달한 편이어서 질문에도 솔직하고 시원스럽게 답해 주었다. 평양 시내에는 윗옷을 벗고 런닝셔츠 바람이거나 단추를 열어놓고 다니는 남자들의 옷차림이 많이 보였다.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더우니까 아예 웃통을 벗은 이들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박 시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남성 동무들 팔뚝도 울퉁불퉁 하고 보기 좋지 않습니까?"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얼마나 웃었던지.
서울은 여자들의 심한 노출이 문제가 되지만 평양의 여자 옷차림은 아주 단정하고 반듯했다. 민소매도 없었고 무릎 위로 올라가는 치마도 찾아 볼 수 없었으니 아직 유교적인 관습이 상당 부분 한국보다 정연하게 지켜지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평양의 남편들은 집안일 잘 도와주느냐는 질문에는 짧게 망설이더니 잘 도와준다고 대답했는데 거짓부렁 같았다. 웃는 것도 그랬고 자신감이 모자란 대답이었다. 그녀도 내게 평양에 온 소감을 물었다. 순간 나는 서영채 교수와 나누었던 대화처럼 솔직히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헷갈리고 있어서 이런 대답을 주고 말았는데 그녀가 다 이해했는지는 미지수였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무지무지 기쁘다. 그리고 반갑고 너무 좋다. 그런데 심란하다."
이렇게만 대답해 주었는데 그 '심란' 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그녀도 시를 쓰는 사람이므로 나의 그 복합적 심란의 의미를 대강 알아들었으리라. 공항까지 20분 정도 밖에 안 걸리는 거리인데도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위의 대화 외에도 박 시인이 남쪽은 너무 미국에 경도되어 있다는 의견을 말했고, 우리 어머니가 원산 명태를 좋아하셨는데 평양에서도 그것이 유명하냐고 물었다.
또 전승기념행사와 당 창건 60돌 기념 준비로 바쁘다는 말, 더 나아가 한국에서의 고부 간의 갈등에 대한 내 말을 듣더니 '부모는 당연히 봉양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되물어 나를 당혹케 했다.
광복 60주년 기념식에 북쪽에서도 오기로 했다는 소식도 말해 주었으니 20분간의 대화는 알뜰하고도 쉴 새 없이 이어졌던 모양이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면서 내 시집 한 권과 스타킹을 선물로 그녀에게 주었다. 그리고 시집 속에 미국이 조선을 '악의 축' 이라고 비난한 것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 로 비유한 시구를 찾아서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