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다시 하나 되기 위하여!

평양 북남작가대회 참가기(9) 사람아, 이사람들아

등록 2005.08.07 10:57수정 2005.08.07 15:47
0
원고료로 응원
새벽 한 시가 넘어 잠들었지만 눈을 떠보니 아침 5시 30분이었다. 대표단의 일정표대로라면 오늘 우리의 일정은 평양시내 관광과 옥류관에서의 점심 그리고 학생소년궁전을 관람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북을 관광 또는 회의나 행사 등의 목적으로 방문할 경우 모든 절차는 안내원이 동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개인적으로 묵고 있는 호텔 밖을 마음대로 돌아다닌다거나 평양 시민들과 접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나의 호기심 많은 성격은 답답증과 궁금증을 더해 자리에 누워있지 못하고 일어났다. 집에서 뉴스를 듣는 버릇처럼 텔레비전을 틀었지만 아침방송은 없는 듯 조용했다. 창가로 가서 나는 천천히 그리움의 시선으로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며 상상으로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어서 오래도록 그렇게 앉아 오가는 무궤도 버스며 서둘러 종종걸음 치며 일터로 가는 이들, 청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아련히 보고 있었다.

그들 속으로 뛰어 들어가 많은 이야기와 수다도 떨어보고 손잡아 보고 싶은 마음이 넘치고 또 넘쳐나서 나는 슬리퍼 바람으로 이름표를 떼어버린 채 호텔 밖으로 뛰어 나가고 싶은 강한 충동을 참아야 했다. 그런 마음은 그들에 대한 일종의 애처로움이나 위로의 차원이 아니고 더구나 우리 체제를 자랑하거나 선전하고 싶어서가 절대 아닌, 같은 피붙이 민족으로서 60년 넘게 쌓아두었던 일반인으로서의 소회를 나눠보고 싶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점점 오가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나는 내 시야에 들어온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으며 창가에서 한 시간 넘게 앉아 있었다.

어제 저녁 연회가 끝나고 11시 30분경 인민문화궁전을 나왔을 때 사방은 어두웠다. 아파트나 상가는 거의 불을 끈 상태였고 통행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와 김성수 교수는 호텔로 돌아온 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치 초등학교 저학년의 순진한 학생들처럼 화장실 불도 나오면 꼭 끄고 수돗물도 아껴 쓰는 등 착실하게 에너지 절약에 앞장서서 전기스위치를 끄거나 켤 때마다 서로 보며 웃었다. 이 얼마나 순수한 민족애의 발현(?)이란 말인가. 정말 조그만 실천이었지만 그것이 여기에서 필요한 것들이라면 착하게 지켜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서울에서 예비소집에서나 유인물을 통해 물휴지나 세면도구 등도 조금 챙겨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러나 막상 고려호텔에 잘 비치된 각종 세면도구를 보면서 우리가 조금 '오바' 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고려호텔 화장실에는 물비누와 휴지 그리고 여자들이 세수할 때 뒤집어쓰는 머리싸개며 면봉까지 다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행을 시작하면 어느 곳에서나 왕성한 식욕이 발동하는 것은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어제 저녁을 그렇게 배불리 먹었지만 아침은 또 아침대로 내켰다. 3층 뷔페식당에 차려진 아침은 참 간결하면서도 아침에 제대로 맞는 식단이었다. 녹두죽, 명태전, 고사리나물, 상추와 쑥갓, 김치, 물김치 등은 아침에 맞추어 가벼웠고 어제 저녁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식단이어서 여독을 풀기에도 제격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오다가 마침 식당 건너편에 있는 서점에 가보았다. 김일성주석 일대기와 주체사상서들로 빼곡한 매대에는(북에서는 어느 곳이든 물건을 파는 곳은 매대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서 길거리에도 간식거리나 얼음보숭이를 파는 매대를 쉽게 볼 수 있다) 평양지도와 어린이 그림책도 보였다.


고려호텔 서점 매대에 놓인 책자 옆에 인공기가 선명하게 꽃혀 있다.
고려호텔 서점 매대에 놓인 책자 옆에 인공기가 선명하게 꽃혀 있다.정용국
얇고 투박한 종이와 커버가 재미있는 어린이 그림동화를 아이들 보여줄 요량으로 몇 권 사기로 했다. 김성수 교수와 강영주 교수같이 북의 문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은 이것저것 들춰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분단 60년이 되어서 이젠 북의 문학을 별도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게 생겼다니 이것도 웃을 수 없는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문학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의 각 분야가 이제는 둘에서 다시 하나 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간신히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처지가 된 것이다.

대표단이 오늘의 여정인 평양시내 괸광을 하기위해 삼삼오오 호텔 로비에 나와 담배를 피고 담소하며 일정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문 밖에 나가 길 건너를 기웃거렸다. 호텔에 주차해 있는 차량이나 돌아다니는 차들은 다 외제차들이었다.


차량이 적기는 해도 접대용 관용차인 듯 승용차는 특히 벤츠가 많았고 아우디나 볼보 같은 독일차의 비중이 크고 일본의 닛산과 도요다도 상당수 있었다. 그리고 버스는 일제가 대부분인데 승합차로는 현대의 스타렉스도 많이 눈에 띠었다. 체류기간 6일 동안 북의 평화자동차에서 만든 '휘파람' 은 몇 대밖에 보지 못했다.

대표단이 탄 버스는 아홉 시에 출발해 붉은 구호와 선전탑들이 많은 거리를 지나갔다. 거리마다 차를 기다리는지 담소를 하는지 거리에 쭈그리고 앉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활기차다기보다는 느슨한 사회주의적 분위기였다. 살펴보니 해가 질 때까지 거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어제 대표단을 안내했던 황선생이 마이크를 잡고 일정을 설명했다. 우리는 그저 평양시내 관광이라서 을밀대나 대동문, 부벽루 같은 유서 깊은 문화유산을 보는 줄 알았는데 조금은 황당하고 예상 밖의 장소였으니 황선생이 소개한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은 상황이 많이 급박합네다. 볼 것도 많구 시간 일정이 늦어지기 시작하면 어제처럼 힘드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에 복종해야 하겠습니다. 일들이 어긋나면 평양에 와서 위병만 났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만경대 혁명 유적지와 통일선전탑을 돌아보시고 옥류관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됩니다. 오후에도 많이 바쁜 데 개선문과 지하철 승차 그리고 학생소년궁전을 돌아보도록 되어 있습니다. "

평양관광 첫 목적지로 돌아본 만경대 혁명 유적지인 김일성 주석 생가
평양관광 첫 목적지로 돌아본 만경대 혁명 유적지인 김일성 주석 생가정용국
복종해야 한다는 말에는 웃고 말았지만 만경대 혁명 유적지는 뭐고 통일선전탑은 또 뭐지?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아차, 싶었다. 나중에 정도상 실장이 말한 대로 북에서 정한 일정은 우리들이 일반인들이 아니라 특정집단이고 민족의 이름이 붙은 작가대회였으므로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을 조금 무리해서 강조한 듯했다. 아마 이 일정은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만 될 일종의 '교육' 코스인 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었다.

이제 곧 평양관광 길이 일반인에게도 열릴 모양이지만 우리들에게 돌아보게 한 이 정도의 코스는 일반 관광객들이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는 버드나무가 많은 거리를 돌아 금방 만경대 혁명 유적지에 도착했다. 평양은 옛날부터 버드나무가 많아서 류경(柳京)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한다. 평양에 현대그룹에서 지은 체육관 이름이 '류경 정주영 체육관'인 것도 여기서 가져다 붙인 이름인 것이다. 대표단이 버스에서 다 내리자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단정하게 입은 여성 안내원들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