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광주드림 안현주·글 오마이뉴스 강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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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자 웃음이 나오네" 근심이 사라진 탓인지 2년 전보다 훨씬 젊어지신 심복순(73) 할머니. 할머니는 헤어스타일을 짧은 단발로 바꿔 멋있어 지셨습니다. 2년전(아래) 이 맘때 만난 심복순 할머니는 복받힌 설움에 끝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 광주드림 안현주
할머니의 주름 살이 활짝 펴졌습니다. 2년전 눈물만 글썽이던 심복순(73) 할머니는 카메라가 다가서자 "아이구 뭣을..."이라며 손사래까지 치시며 환화게 웃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심복순 할머니는 더 젊어진 것 같습니다. 헤어스타일도 더 멋져보입니다. 마음이 부자가 되서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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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곡동 산31-2번지 한국전쟁의 상흔이 드리워졌던 피난민촌에는 구청서 달아준 주소 표지만 빼면 멀쩡한 살림살이가 별로 없었습니다. ⓒ 안현주
하늘 높은 여느 가을 날, 2년여 만에 다시 찾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산3-21번지에서는 '막걸리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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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후에 벌어진 막걸리 잔치 2005년 늦 가을, 스산하기만 했던 피난민촌에 웃음 꽃이 피고, 온동네 막걸리 잔치가 벌여졌습니다. 어려움을 함께 하면서 주민들은 한 식구가 됐습니다. ⓒ 광주드림 안현주
'산3-21번지'에는 지난 50년 한국전쟁의 또 다른 상흔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이 마을은 이른바 '피난민촌'입니다.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세월따라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룬 곳입니다.
사람이 떠나고 들어오면서 8가구만이 모여 살고있는 주민들은, 어느 순간 '남의 땅에 무허가'로 들어와 살고 있는 '부랑민' 신세가 된 듯 했습니다. 당장에 먹을 것도 걱정인데 언젠가는 쫓겨나야 한다는 불안감이 주민들을 눈물짓게 해 왔습니다.
피난민촌의 아리랑
사연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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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어디로 가나 주민들은 정부가 민간인에게 땅을 팔아버린 사실을 뒤 늦게알고 정부에 건의문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도 얻지못했습니다. 심복순 할머니 댁 누렁이는 외지인을 만나 즐거웠는지 꼬리를 흔들어댔었는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새 집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 안현주
한국전쟁이 끝난 후 월남 피난민들이 이 마을에 모여든 것은 1954년. 당시 이승만 정부는 피난민 구호대책으로 국유지에 초가집 한 칸씩을 마련해줬습니다.
그러던 중 박정희 정권 초기 부족한 국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는 국유지를 민간인들에게 매각하기 시작하면서 피난민촌도 어느날 팔려버렸습니다.
산3-21번지 역시 민간인 소유로 넘어간 것 입니다. 주민들은 땅 소유주가 여러 번 바뀌고 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정부가 피난민촌 주민들에게 한 마디 통보도 없이 땅을 넘겨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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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햇살은 따스했지만... 하늘은 높고 햇살이 참 좋았던 2003년 가을, 피난민촌 주민들의 마음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사연을 듣기 위해 왔다는 말에 동네 사람들이 마을 앞 공터에 모였습니다. 박진규(오른쪽)씨는 눈물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안현주
영문도 모른 채 불법건축물에서 살게 돼버린 주민들은, 비가 새는 양철지붕 하나도 땅 주인의 허락 없이는 손도 대지 못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들의 걱정이 더 심해진 것은 2001년부터 였습니다.
소유주가 집을 뜯어내라며 마을을 둘러 울타리를 치는가 하면, 2003년 경매로 이 땅을 인수하게 된 새 주인은 주민들을 상대로 점유이전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습니다. "남이 이 땅을 차지했다는 것을 알고 피난민들이 (정부에) 진정서를 올렸지만"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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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양반! 잘 좀 부탁드립니다" 2년전 취재를 마친 기자가 발걸음을 돌리자, 주민들은 마을 입구까지 쫓아나와 '잘 부탁한다'는 인사말을 몇 번이나 건넸습니다(아래). 피난민촌 한 켠에 환하게 피었던 봉숭아(위). ⓒ 안현주
2003년 10월 그 날, 마을 어귀에는 그렇게도 이쁜 봉숭아가 활짝 피었지만 심복순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거릴 뿐이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자가 만능해결사나 되는 것처럼 생각했는지 주민들은 마을 입구까지 배웅하며 "잘 좀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건넸습니다.
피난민촌 사라진다... 새 집 지를 땅이 생긴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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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난민촌의 아리랑 주민들의 사연이 알려지자, 그 해 12월 5.18기념문화회관에서 문화단체들이 '피난민촌 아리랑'이란 주제로 아카이브 전시회를 마련했습니다. 버리진 땅, '진곡동 산31-2번지'가 관심의 땅이 된 것입니다. ⓒ 안현주
주민들의 사정이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지면서, 이 곳은 관심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 해 12월에는 문화단체들이 '피난민촌 아리랑'이란 주제로 아카이브 전시회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이들의 사정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 2년.
2년전 마을 입구에 화사하게 피어있던 그 봉숭화처럼, 2005년 11월 심복순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피난민촌은 이제 사라질 처지입니다. 그러나 이들 8가구의 주민들은 크게 걱정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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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냥 즐거운 주민들 2년전과는 사뭇 달라진 주민들의 표정에서 흐뭇함이 느껴집니다.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남은 피난민 가족인 문수복(60)씨네 가족(위). 문씨는 요즘 손주들 재롱에 시간가는 줄 모릅답니다. ⓒ 광주드림 안현주
이들에게 새 집을 지어서 살 수 있는 '자기 땅'이 생긴 것입니다. 주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살펴준 소유주 김윤섭씨, 관할 구청과 주변의 도움으로 피난민촌 바로 옆 '산 323-9~20번지'가 주민들의 땅이 된 것입니다. 김윤섭씨가 산31-2번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대신 자신의 땅인 이 곳을 무상으로 제공해 준 겁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이 땅에 주민들은 새 집을 지을 겁니다. 날씨가 추워지는 12월부터 집을 짓기 시작하겠답니다. 날씨가 추울텐데 좀 걱정스럽습니다. 그래도 "그런 것이 문제겠냐". 세상을 다 가진 듯 마냥 미소가 머금어 집니다.
물론 피난민촌 주민들에게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생활이 넉넉치 못한 탓에 새 집을 지을 비용이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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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도 지내고... 주민들은 새로 집을 지를 터에서 고사를 지냈답니다. 고사를 지내던 날, 땅을 무상으로 기증해준 김윤섭씨가 일어서자 주민들이 감사를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위). 2년전에는 모이면 한 숨만 내 쉬던 이들이 이제는, 그냥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는 모양입니다. ⓒ 광주드림 안현주
하지만 서러웠던 세월을 생각하면 이제는 행복한 걱정거리가 됐습니다. 주민들은 지난 11월 10일 새 집을 지를 터에서 고사도 지냈답니다. 그리고 막걸리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다음 날도 주민들은 남은 음식을 핑계삼아 한 상 차렸습니다. 2년전 처음으로 자신들의 사연을 세상에 알린 <오마이뉴스>가 고마웠던지 당시 취재진을 자신들의 잔치 상에 초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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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만 같았으면... 주민들에게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빠듯한 살림에 집을 지를 여유 돈이 걱정스럽기는 합니다. 이들에게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광주드림 안현주
이 분들의 활짝 핀 미소가 너무 좋아보입니다. 피난민촌 주민들의 삶이 오늘만 같지는 않겠지만, '눈물만 글썽거려야 하는' 세월이 이제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안현주 기자는 광주드림 사진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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